향기가 떠오르는 책이 있다. 어떤 책에서는 숲속의 싱그러운 향이, 또 어떤 책에서는 상큼한 과일 향이 떠오른다. 『설탕실』을 덮고 난 뒤, 한동안 좋은 버터를 태웠을 때의 고소한 너티 향이 코끝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 미도와 가호가 함께 피낭시에를 만들던 장면 때문인지, 아니면 털실아이에 가면 어떤 냄새가 날지를 상상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다.
오래 묵은 울 털실에서는 묵직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난다. 버터를 태울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향이다. 울은 양털이고, 양털에는 라놀린(Lanolin)이라는 천연 기름기가 배어 있는다. 이 기름기가 실에 남은 채로 오래 묵히면 그런 향이 난다.
버터와 털실. 전혀 다른 두 소재가 의외의 향기를 공유하듯, 『설탕실』의 인물들 역시 개성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흔들리고 불안해하면서도 진득하게 내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점이다. 부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겨 내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세상에 드러낸 미도, 학교에 가기 힘들 정도로 마음의 허리를 다쳤지만 조리 고등학교에 도전하는 가호, 다디단 마카롱의 힘을 빌려 쓰디쓴 우울감을 떨쳐 내려고 애쓰는 혜지 씨, 도려내진 유년을 기억하면서도 또 다른 구멍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미주까지. 인물들의 불안은 무척이나 현실적이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플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다. 언젠가 나 역시 품고 있던, 그 서툰 고민의 조각을 하나씩 안은 채 허우적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훗날 미도가 쓴 또 다른 동화를 읽고 싶어졌고, 가호가 다쿠아즈를 더 맛있게 구워 낼 수 있기를 응원하게 되었다.
버터를 잘 태우려면 중불에서, 버터 전체에 열이 고르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천천히 저어 주어야 한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버터를 잘 살피며 적당한 색이 나왔는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 불안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일상을 버티고 있는 친구들에게 『설탕실』은 소설 속에 나오는 동화 내용처럼, 작은 우산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