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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철
이하록 서지유 하아랑 서지유 이하록 하아랑 문이철, 서지유, 이하록 그리고 하아랑 마침내 다 함께 에필로그: 따로 또 같이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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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천꽃밭에 도착한 문이철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세 사람의 환생꽃이 탐스러운 봉오리를 맺은 것이다. 환생꽃은 봉오리를 맺기까지가 힘들지, 봉오리만 맺으면 꽃이 피는 건 금방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지금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봤자 또 지겨운 공부 지옥이잖아! 절대 싫어.” 문이철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삼도고에 처음 왔던 날을 떠올렸다. 눈을 뜨자 새빨간 얼굴에 입술 밖으로 송곳니가 호랑이처럼 튀어나온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남자가 ‘나는 도깨비고 너는 오늘부터 삼도고의 학생이다’라고 말했을 때 문이철은 비로소 자신이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 도깨비는 삼도고가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문이철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곳에서는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기뻤다. 죽음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인지 슬프진 않았다. 아쉬운 거라면 딱 하나, 오락기가 있는 골목에 다시는 갈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건 그 아이를 만날 수 없다는 의미였으니까. --- pp.13-14 학원 앞 큰길에서 어지간히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좁은 샛길 안쪽에 자리 잡은 감자탕집은 늘 문이 닫혀 있었고 간판의 ‘탕’ 자가 흐려져 ‘감자집’으로 읽혔다. 그 골목에서 멀쩡한 건 오직 하나, 감자탕집 앞에 놓인 노란 오락기뿐이었다. 하아랑은 빠듯한 집안 사정이나 대학 진학이 걱정될 때면 그 오락기를 찾았다. 백 원짜리를 넣고 신나게 레이저를 쏘고 있노라면 마법에 걸린 듯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가끔 오락기에 기록을 남기는 다른 사람들도 그 마법을 느꼈을지 궁금했다. 순위 기록에 흔적을 남기는 아이디는 넷뿐이었다. 자신의 아이디인 A, 문이철의 Moon, 2위와 3위를 오가는 You와 G. 하아랑은 가끔 얼굴도 모르는 You와 G를 학교 친구들보다 더 친밀하게 느꼈다. --- p.68 엄마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왜 그랬을까. 다 내 오기고 고집이었어.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을걸……. 미안했다, 내 새끼 너무 가여운데 나도 무서워서 지켜주지 못했다, 앞으로는 잘할게, 사랑한다……. 그렇게 다 솔직하게 말할걸.” 싱크대 서랍을 연 엄마의 어깨가 조금 더 크게 들썩거렸다. 서지유는 다시 방문을 닫고 제자리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있는 힘을 다해 코를 움켜쥐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서 숨어 있는 걸 들켰다가는 영락없이 도둑 취급을 받을 테고, 소동이 커지면 제시간에 아지트에 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지트에 가야지. 꽈배기를 한 봉지 가득 사 가서 다 같이 먹을 거다.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 나갈 것 같은 말을 꾹 눌렀다. 축하해. 엄마. 진짜 진짜 축하해.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다시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밖을 살피니 엄마는 사라지고 없었다. 킁, 세게 코를 풀고 눈가를 박박 문질렀다. “어, 눈이 왜 이러지?” --- p.149 “내 이름은 이하록이야.” 툭. 맑은 빗방울 하나가 정수리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번쩍 정신을 깨운 시원함에 하아랑의 손끝이 움직였다. 하아랑은 허공을 헤매는 손과 그 손에서 흘러 떨어지는 피를 봤다. 얼음을 잡아 뜯느라 새빨개진 손바닥이 자신의 것과 한 쌍처럼 느껴졌다. [어리석구나. 남의 힘을 빌려 이런 위세를 부려봤자 네가 갚을 빚이 늘어날 뿐이다! 이 아이를 위해 그리 희생해서 네가 얻는 게 무엇이냐!] “희생이 아냐! 내가 하아랑을 구하고 싶으니까 구하는 거야. 하아랑, 들려? 나는, 나를 위해 너를 구할 거야!” 하아랑의 팔이 힘겹게 천천히 위로 움직였다. 정수리에 떨어진 말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점점 더 많은 물방울이 되어 하아랑의 몸을 휘감은 절망을 씻어내렸다. ……왜냐면, 문이철에게 사과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구름을 닮은 소년을 만나고 싶어서도 아니다. 하아랑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소리쳤다. “살고 싶어.” 짓눌렸던 진심이 하아랑의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살고 싶어! 포기하기 싫어!” --- pp.214-215 하아랑이 장난스럽게 팔을 쓰다듬는 시늉을 하다가 좀 더 작게 속삭였다. “네가 나한테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할까?” “아니. 나는 잊지 않을 거야.” “왜?” “나의 저주는 이제 능력이 되었거든.” 열. 아홉. 여덟……. 카운트다운이 빠르게 끝을 향했다. 네 사람은 한 번씩 시선을 교환했다. 아무도 ‘안녕’이라고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다. 문이철과 서지유, 이하록의 몸이 점점 투명해졌다. 일곱. 여섯. 다섯. 넷.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하아랑은 애써 웃었다. “마음은 남으니까.” 그것이 인사였다. 세 사람은 사라졌다. 셋. 둘. 하나.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옥상에는 정적만이 남았다. 이상하리만치 아찔한 정적이었다. --- p.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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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봤자 또 공부 지옥이잖아? 다음 생은 거절합니다!”
저승을 누비는 유명한 말썽쟁이 ‘환생 거부 삼총사’의 흥미진진한 모험담 주어진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저승사자에게 이름을 불리어야 했던 어린 영혼들. 환생에 필요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삼도천을 하염없이 헤매는 영혼들을 가엾게 여긴 지장보살은 어린 혼의 환생을 돕는 ‘삼도천 고등학교’를 세웠다. 『삼도천 환생 고등학교』는 이곳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모험과 가슴 아픈 비밀, 눈부신 용기를 그린 작품이다. 『삼도천 환생 고등학교』에는 망자의 옷으로 죄의 무게를 재는 탈의파, 죽음의 기억이 잠든 삼도천, 서천꽃밭의 관리자 할락궁이와 저승사자 등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들이 등장하지만, 저승을 배경으로 하는 흔한 소설로만 머물지는 않는다. 환생하려면 반드시 피워야 하는 ‘환생꽃’, 삼키면 잊었던 죽음의 기억이 떠오르는 ‘기억돌’처럼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면서 작품만의 독특한 무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곳에 머무는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죽음과 가장 맞닿아 있는 세계인데도 낯설고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살아 있는 이들이 떠난 자리를 보듬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삼도천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전생의 미련을 내려놓은 채 환생을 준비하지만 모두가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죽음의 기억을 잃고 삼도천 고등학교에서 만난 문이철, 서지유, 이하록은 환생을 바라지 않아서 어딜 가나 말썽쟁이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세 사람에게는 어렵게 얻어야 하는 환생의 기회보다 지금의 일상이 더 소중하다. 세 사람은 환생꽃이 피지 않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학교의 금기를 깨고 금지된 장소를 드나들며 저승 곳곳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삼도천 깊은 강 아래 잠들어 있는 ‘기억돌’의 조각을 실수로 삼킨 서지유는 잊고 있던 죽음에 관한 충격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신비로운 저승 학교를 탐험하는 모험담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을 비추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죽음 너머에서도 끝내 놓지 못했던 소망을 붙잡으려 애쓰는 세 아이의 여정은, 마침내 새로운 삶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용기의 순간을 그려낸다. “보물을 찾아오거라. 그대들이 이승에 남기고 온 슬프고도 아름다운 보물을.” 환생이 아니라 다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웠던 날들 세 사람이 환생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전생에 있다. 삼도천 고등학교에 오면 전생은 흐릿하게 기억하지만 죽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억은 깨끗하게 잊어버린다. 문이철은 다시 공부하고 경쟁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까 봐 두려워하고, 이하록은 귀문을 지닌 탓에 살아생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삶을 반복할까 봐 불안해한다. 서지유 역시 아버지의 가정폭력 때문에 받은 상처를 안고 있다. 세 사람은 환생꽃을 시들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정말 피하고 싶었던 것은 환생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거이다. 견디기 힘들었던 날들, 전생에 저지른 끔찍한 잘못,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그리운 인연까지, 세 사람에겐 아직도 미련이 가득하다. 미련을 떨치기 위해 보물찾기 행사가 열리자 학생들은 모두 이승에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과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 차마 용서할 수 없었던 마음을 마주하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전생에 괴로운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잊어서는 안 됐던 슬프고도 아름다운 ‘보물’이 바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범유진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저승 판타지라는 독특한 설정 속에 성장의 본질적인 순간을 담아낸다.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바라보는 것,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 보물찾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아이들은 더 이상 죽음에 머무르지 않는다. 상처에 얽매여 움직이지 않으면 영원히 묶이고 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상처를 끌어안고 앞으로 걸어가면 된다. 문이철, 서지유, 이하록은 마침내 아픔을 껴안고 나아가길 택한다. 이로써 『삼도천 환생 고등학교』는 끝난 줄 알았던 삶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아이들의 눈부신 성장담으로 완성된다. “나는 잊지 않을 거야. 마음은 남으니까.” 결국 우리를 구하는 것은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다정함이다 『삼도천 환생 고등학교』는 결국 누군가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골목 깊숙한 곳에 놓인 오락기 앞에는 울고 싶은 아이들이 모인다. 문이철, 서지유, 이하록, 그리고 하아랑까지, 그들은 서로의 상처 뒤편에 있는 외로움과 후회를 알아본다. 오락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보스를 깨기 위해 버튼을 연타하고 스틱을 움직이는 아이들의 등은 사실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 어린 소망을 품고 있지만, 아무도 그 등을 제대로 봐주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은 그들을 상처 주기 바쁘다. 학원 승합차 사고로 아들을 잃은 문이철의 엄마의 분노는 운전자에서 운전자의 딸인 하아랑에게 향하고 하아랑은 아빠의 잘못까지 뒤집어쓴다. 서지유는 집에서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이하록은 귀문을 가지고 태어나 가족에게 걸림돌 취급을 당하고 주변에서는 귀신 보는 아이라고 수근거린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손을 뻗는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어른은 없다. 유일하게 그들에게 오락기라는 아지트를 내주었던 감자탕집 할머니는 떠나버렸다. 남겨진 아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서로의 상처 입은 손을 맞잡기로 한다. 이승과 저승을 가로지르는 경계에서도 끝끝내 놓지 않았던 그 손들은, 마침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커져 버린 거대한 절망 속에서 서로를 구해낸다. 소설은 끊임없이 묻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 『삼도천 환생 고등학교』가 내놓는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누군가를 끝까지 기억해 주는 마음과 손을 내밀어 주는 용기,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다정함이다. 상처 입은 사람이 다른 이의 상처를 보듬고, 그 손길로 얻은 용기 덕분에 외면했던 마음을 마주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죽은 아이들의 저승 모험담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