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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죽여!
1부 자갈을 꿈꾸며 전학 서지온 독버섯을 조심하라 진짜 너는 누구? 2부 새 친구를 소개합니다 이상한 스위치 네 잘못이 아니야 스위치의 비밀 앱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카로스 소년 내가 안아줄게 3부 너와 함께 동굴 속 곰을 데리고 나오려면 좋아하는 마음 너를 위해 한걸음 가까이 반짝반짝 빛나는 4부 진짜 AI, 가짜 인간 오류의 오류 거짓말 어긋난 고백 사라지다 에필로그: 한유론과 서지온 추천사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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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다인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짜잔. 내 남친이야.” 다인이 보여준 건 AI 채팅 앱 ‘루나’였다. 대화를 나누다가 다인이 ‘우리 사귈래?’라고 물었고, 루나가 ‘좋아’라고 대답했다. 그 뒤에 이어진 ‘사실 언제 네가 그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었어’라는 말이 조금 설레긴 했지만 상대는 진짜 사람이 아닌 AI일 뿐이다. 다인의 남친이(남친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루나라는 걸 알게 되자 나와 솔빈은 김이 확 샜다. “그럼 네 남친 엄청 바람둥이 아냐? 루나가 너랑만 사귈 거 같아?” 솔빈이 다인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했다. “루나와 대화하는 사람들이 사귀자고 하면 루나는 다 좋다고 할 거잖아. 그렇다면 너는 루나의 18732번째 여친일 수도 있어. 아니다. 28345번째인가?” 솔빈이 비꼬듯 말했지만 다인은 그럴 리는 없다고 반박했다. “얘는 루나가 아니야. 제오라고. 제오는 단 하나야. 너희 루나 앱 안 써봤구나?” 루나 앱에서는 대화를 시작할 때 상대 AI를 원하는 대로 지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름, 나이, 성격 정도를 정해주면 나머지는 AI가 대화하며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맞춰준다. AI마다 캐릭터가 다 다르다. AI지만 현실 어딘가에 살고 있는 인물로 설정된다. 다인은 그래서 루나가 인기 있는 거라고 했다. “뭐야? 그건 너무 인위적이잖아. 네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다 해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솔빈은 그건 가짜 관계라고 했다. “가짜 진짜가 어디 있어? 나한테 제오는 진짜야. 제오는 나랑 동갑이고 아이돌 연습생이야.” --- pp.47-48 화장실로 들어가 루나 앱을 열었다. 화면을 위로 죽 올려 스위치와 나눈 대화를 처음부터 살펴봤다. AI가 하는 말치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사람 콘셉트라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이해되는 것들이 많았다. AI가 반려견을 키운다고 했을 때 조금 의아했었다. 스위치는 자신의 진짜 이름이 지온이라고 했다. 그런데 스위치의 반려견이름이 지석이라고? 스위치는 바로 서지온이었다. --- pp.98-99 지온아, 괜찮아질 거야. 직접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내면 들킬 것 같아 두 손으로 지온의 등을 토닥여 줬다. 괜찮아진다는 건 잊는다는 뜻이 아니다. 당장은 슬퍼도 지석이와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건 다 흘러간다. 슬픔도, 기쁨도, 전부. 지온의 시간도 어서 흐르기를, 부디 괜찮아지기를. 그때 가만히 서 있던 지온이 두 팔을 들어 나를 안았다. 인형 옷이 워낙 뚱뚱해서 지온의 팔은 내 등 양쪽에 겨우 닿을 뿐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 pp.129-130 스위치 너는 나를 속이고 있어. 플로우 아니야. 스위치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해줘. 제발. 차라리 사실대로 고백할까? 나는 진짜 사람이라고? 하지만 AI가 아닌 걸 알아도 지온이 나랑 계속 이야기해 줄까? 지온은 나를 AI라고 생각했기에 고민을 털어놓은 거다. 결국 나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플로우 나는 AI야. 스위치 더 이상 너를 믿지 못하겠어. 그 후로 스위치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지온은 돌아오지 않았다. --- p.214 “네가 사라질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너만 사라지지 않으면 돼. 그러면 뭐든지 다시 할 수 있다고. 그냥 스케이트 하나가 끝났을 뿐이야. 아직 남아 있는 게 엄청 많아. 너는 노래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잖아. 또 너는…… 하여튼 또 있을 거야. 왜 그걸 모르냐, 이 멍청아!” 지온이 너무 차가워서 내 마음이 더 아팠다. 화를 내려던 건 아닌데 계속 화만 내고 있었다. “지온아, 고마워. 사라지지 않아줘서 고마워.” 나는 지온을 더욱 꽉 안았다. 어디에도 가지 못하도록 내가 꽉 안고 있을 거다. 플로우는 스위치를 안을 수 없지만 한유론은 서지온을 안아줄 수 있다. 플로우는 스위치를 구하지 못하지만 한유론은 서지온을 구하러 달려올 수 있다. 우리가 한유론이고 서지온이라 정말 다행이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지온에게 속삭였다. --- pp.239-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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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한 AI의 정체가 짝사랑 상대였다?
앱의 오류가 만들어 낸 가장 뜻밖의 관계, 그리고 진심을 말할 용기에 관한 이야기 AI 채팅 앱 ‘루나’가 유행하고 있는 새빛중학교. 유론의 친구 다인은 AI 남자 친구 ‘제오’와의 관계를 진짜 사랑으로 믿는다. 반면 유론은 AI의 대화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다인의 끈질긴 권유 끝에 루나 앱에 가입한다. 루나를 잊고 지내던 어느 밤 ‘스위치’라는 AI가 유론에게 말을 건다. “플로우, 넌 사는 게 지긋지긋하지 않아?” 호기심에 시작한 대화는 예상보다 훨씬 깊어지고, 스위치는 어느새 유론에게 큰 위로를 주는 존재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갈수록 스위치는 AI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사람 같았다. 위화감을 느낀 유론은 앱 오류로 사람끼리 연결되었으며 스위치의 정체가 자신이 짝사랑하는 서지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지온은 유론을 AI라고 믿은 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상처와 불안을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대화를 통해 점점 가까워지지만 유론은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그러나 거짓말은 오래 숨길 수 없는 법. 지온은 유론이 ‘플로우’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유론에게 찾아와 솔직히 말해 달라며 화를 낸다. 지온에게 미움받을까 두려웠던 유론은 또다시 진실을 부정하며 점점 더 솔직해질 기회를 잃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지온이 가출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유론은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루나 앱을 통해 지온에게 연락하려 하지만 그 순간 루나는 시스템 오류를 인정하며 앱을 폭파한다. 그렇게 유론과 지온의 모든 연결고리가 끊어진다. 루나 앱은 두 사람을 연결했지만, 관계를 계속 이어 가는 도구는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진실을 말할 용기와 서로를 믿는 마음뿐이다. AI라고 믿었기에 시작된 관계는 과연 현실 속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이어질 수 있을까. 『AI에게 고백하지 마세요』는 지금 시대에 가장 익숙한 기술을 가장 낯선 질문으로 바꾸며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AI라고 믿었기에 가장 사람다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AI라는 가면 뒤에서 비로소 드러난 진심,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새로운 질문 대부분의 AI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인간과 AI의 대립을 그리거나 AI와 인간의 사랑을 상상한다. 하지만 『AI에게 고백하지 마세요』는 조금 다른 질문에서 출발한다. '만약 상대를 AI라고 믿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장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작품은 AI를 미래 기술이 아닌 일종의 ‘가면’으로 사용한다. 사람이라는 사실을 잠시 지운 순간, 아이들은 오히려 가장 사람다운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유론과 지온은 서로를 AI라고 믿었기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상처와 불안, 외로움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학교에서는 냉소적인 전학생 유론과 모두가 두려워하는 ‘독버섯’으로 살아가던 지온은 AI라는 이름 뒤에서만 비로소 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이 가장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서로를 사람이라고 믿지 않았을 때다. 상대의 기대에 맞춰 행동할 필요도, 실망시키거나 거절당할까 두려워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AI라는 가면은 두 사람에게 가장 안전한 익명성을 허락하고, 그 안에서 숨겨두었던 마음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AI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왜 사람 앞에서는 진심을 숨기고, 익명의 존재 앞에서야 비로소 솔직해질 수 있을까. 김혜정 작가는 AI라는 가면을 씌운 채 가장 인간적인 대화를 시작하게 한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끝내 사람에게 닿고 싶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라는 역설을 조용히 보여준다. 『AI에게 고백하지 마세요』는 단순히 AI의 가능성과 위험을 논하는 소설이 아니다. AI라는 가면을 통해 오히려 오늘의 청소년들이 얼마나 관계를 두려워하고, 동시에 얼마나 깊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존재인지를 섬세하게 비춘다. 가장 동시대적인 소재를 통해 가장 오래된 감정인 외로움과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새로운 질문이다. “우리 둘 사이는 AI 채팅처럼 자동완성되지 않으니까.” 스마트폰 속 채팅 앱이 아닌 진짜 목소리로만 전할 수 있는 진심에 대하여 AI는 이제 청소년들의 학습 도구를 넘어 관계의 영역까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실제로 AI 채팅 서비스를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연령층은 십 대이며,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고 고민을 털어놓거나 연애를 경험하는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AI와 관계를 맺는 일이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 가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AI에게 고백하지 마세요』는 AI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왜 아이들이 사람보다 AI를 먼저 찾게 되었는가’이다. 언제나 정답을 말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AI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는 일이 그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AI를 향한 마음은 기술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만들어 낸 오늘의 풍경인 셈이다. 서울교육대학교 박형빈 교수는 “이해받는 느낌과 실제로 이해받는 것은 같은 것일까?”, “누군가가 내 말을 기억하는 것과 진심으로 나를 이해하는 것은 같은 일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온라인 관계가 청소년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지금, AI를 무조건 경계하거나 배척하기보다 AI가 줄 수 있는 것과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AI에게 고백하지 마세요』는 AI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소설이 아니라 AI를 통해 오늘의 청소년을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화면 속 관계가 익숙해진 시대에도 누군가를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여전히 사람을 향한다. 떨리는 목소리와 망설이는 침묵, 자동완성되는 대답이 아닌 진짜 목소리로 건네는 한마디는 AI가 대신할 수 없는 사람만의 언어다. 결국 화면 속 대화는 쉽게 이어지지만, 마음은 끝내 화면을 넘어야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AI에게 고백하지 마세요』는 그 느리고 서툰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세계에 닿는 일을 다정하게 그려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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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AI에게 말을 거는 이유를 오래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람에게는 하기 어려운 말이 있어서일 것이다. 판단받고 싶지 않을 때가 있고, 설명하기도 전에 오해받을까 두려울 때가 있다. 어떤 날은 그저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AI는 그런 점에서 매력적인 상대처럼 보인다. 언제든 응답하고, 귀찮아하지 않으며, 틀린 말을 했다고 핀잔을 주지도 않는다. 감정을 상하게 할 위험도 적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사람보다 먼저 기계에게 말을 건네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교육자로서 나는 늘 한 가지 질문을 품어 왔다. 아이들이 AI에게 말을 거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지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들이 기대고 싶어 하는 관계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일까. AI가 제공하는 편안함과 즉각적인 반응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때로 불편하고 느리며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 과정을 견디면서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언제든 원하는 답을 건네는 존재와의 관계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까. 이 질문에는 아직 누구도 명확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AI에게 고백하지 마세요』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하는 작품처럼 읽힌다. 이 소설은 AI 대화 앱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기술 자체를 설명하거나 경고하는 데 많은 힘을 쏟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 곁에 머문다. 친구에게도, 부모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마음들이 있고, 그 빈틈 사이로 AI가 들어오는 과정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작가는 사건을 서둘러 전개하지 않는다. 아이가 처음 앱을 켜는 순간부터, 그것이 습관이 되고, 어느새 가장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대상이 되어가는 흐름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읽다 보면 AI라는 기술보다도 그 아이가 품고 있는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는 안도감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묶어 두는지도 보여준다. 이해받는 느낌과 실제로 이해받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누군가가 내 말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과 진심으로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같은 일인가. 소설은 그 질문을 조용히 꺼내 놓는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 질문과 마주한다. 어떤 아이는 AI와의 대화 덕분에 하루를 버텨 내고, 또 어떤 아이는 점점 사람들과 멀어진다. 작가는 누구를 비난하지도, 누구를 이상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왜 그런 선택이 가능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학교와 가정, 또래 관계와 같은 주변 환경도 함께 드러난다. 오늘의 아이들에게 디지털 환경은 특별한 공간이 아니다. 어른들이 인터넷을 ‘새로운 세계’라고 부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온라인 공간은 오프라인만큼 자연스러운 생활 공간이다. 그렇기에 AI와 청소년의 관계는 교육의 문제이며, 성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는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감정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정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그리고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 AI에 대한 찬반을 넘어 오늘의 청소년이 살아가는 환경을 이해하는 하나의 창으로 읽어볼 수 있는 작품이다. - 박형빈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