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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민
자이언트북스 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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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종업식
언니가 돌아왔다
밍밍한 밀크티와 때아닌 추격전
각설탕의 쓸모
피낭시에 시식회
정상 영업합니다
오래된 가게의 비결

해피 엔딩이 될 수 없는 동화
파피용, 니농!
물 한 컵만큼의 오해
매일이 밸런타인데이
작가의 말
추천의 말

저자 소개 1

유연

2022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공방의 계절』, 『고양이를 산책시키던 날』, 『가을 방학』을 썼다. 2023년 출간한 장편소설 『공방의 계절』은 영미권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덴마크, 일본, 브라질, 이집트 등 전 세계 30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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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120*188*17mm
ISBN13
9791191824520

책 속으로

건너편 ‘털실아이’는 꼭 폐업한 가게 같았다. 한 달이 넘도록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조명도 꺼진 채였다. 아름다운 직물이 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실뭉치들 위에는 아마도 먼지가 두껍게 쌓였을 것이다. 과연 엄마의 가게는 다시 활기차게 문을 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물에 젖은 종이처럼 몸이 너절해졌다.
--- p.60~61

가호는 내가 무슨 부탁을 하든 들어줄 준비가 된 듯 사뭇 비장해 보였다. 그네에 앉은 채로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 순간 싱그러운 귤 향이 났다. 가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가호를 조금 더 알아 갈 기회를.
--- p.65~66

스스로 길을 선택하고, 그 선택의 몫에 꾀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가호는 어른스러워 보였다. 나는 일찍이 그런 성숙함을 지닌 친구들을 동경해 왔다. 그러나 정작 내 손에 그것을 쥐는 방법은 알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조금 더 중학생에 머무르고 싶기도 했다. 내 마음의 추가 두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 p.106

언니와의 대화 이후 나는 종종 교실에 앉아서 가지각색 표정을 짓고 있는 반 아이들을 훑어보곤 했다. 그럴 때면 마치 괴물이랑 싸우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괴물은 반 친구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알아 가는 과정을 두려워하는 나 말이다.
--- p.133

“미도야,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란다.”
할머니의 말에 나는 나와 이어져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전부 다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 p.189

“있잖아, 내가 구운 디저트들은 엄마 것처럼 완벽하지 않아. 덜 부풀거나 토핑이 망가진 게 많아. 그런데 네 덕에 용기를 냈고, 그 디저트들을 털실아이에 온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어. 놀랍게도 B급 디저트를 맛있게 먹어 주는 사람들이 있더라. 아주 행복한 표정을 하고서 말이야. 나조차 몰랐던 맛을 딱 짚어서 표현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만드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 디저트를 완성하는 건 결국 먹는 사람의 몫이더라.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작가가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써도, 그 결말을 완성하는 건 독자의 몫일 거야. 어떤 결말이든, 네가 선택한 그 결말에 웃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
나는 가호의 옆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가호의 얼굴선이 조금 더 굵어진 것 같기도, 어깨에 힘이 생긴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원래 강한 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
--- p.206

언니 안에는 열한 살의 언니가 사는 듯했다. 어떤 시절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고 단단해져 끝내 생명력을 얻는 걸까. 그렇게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 마음속을 들쑤시며 살아가는 걸까…… 지금 언니 마음에 살고 있는 열한 살의 언니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보다도 어린 열한 살의 언니에게, 지금 나는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 p.220

“너는 겨울이 얼른 끝나면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겨울이 좋았어. 봄이 오면 너희 가게 앞에 우뚝 서 있는 나무가 점점 무성해질 테고, 그러면 뛰어오는 미도 네가 잘 보이지 않을 테니까.”
--- p.251

기억하고 싶은 빛나는 순간들은 망망대해 안에 잠겨 있거나 잃어버린 게 아니라, 이미 내 손안에 있었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손에 쥐고 있어서, 몸에 새겨져 있어서 알아채기 어려운 것뿐이다. 그런 순간들은 그물을 펼칠 용기를 줘서 애써 피하고 싶던 기억도 마주 보게 만든다. 이 이야기를 언니에게 해 주면 어떤 말이 돌아올까. 아마도 그런 생각할 시간에 공부는 했냐는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언니다운 반응이었다.

--- p.252~253

출판사 리뷰

“사람에게도 긴 동면이 필요해지는 때가 있는 법이야.”
겨울은 움츠러드는 계절이 아니라,
무한의 가능성을 품은 시간이다

소설은 겨울 방학을 앞두고 마음이 복잡해진 열다섯 살 ‘미도’의 시선을 따라간다. 다큐멘터리 PD라는 분명한 꿈을 품고 국제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 윤아와 달리, 미도는 아직 자신의 앞날이 흐릿하게만 느껴진다. 여기에 교통사고로 입원한 엄마가 오랫동안 지켜 온 뜨개 가게 ‘털실아이’를 정리하겠다고 말하면서, 미도의 불안은 한층 더 깊어진다. 그러던 중 미도는 마카롱 가게인 ‘니농마카롱’에서 일하는 또래 소년 가호를 알게 되고,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던 두 사람은 자연스레 마음을 털어놓으며 엄마의 가게를 살리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하기 시작하는데…….

주인공 미도에게 겨울은 숨고만 싶은 시린 계절이다. 어느 고등학교를 가야 할지도,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 초조한 마음으로 몸을 한껏 웅크리는 시간. 친한 친구인 윤아에게조차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괜히 더 멀어질까 봐 눈치만 보는 시간. 가족 앞에서도 애써 괜찮은 얼굴을 한 채 집 안에 내려앉은 불안을 혼자 견뎌 보려는 시간. 가호와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시간이다.

친구들은 자기 몫으로 주어진 흙덩이를 이리저리 조각해 얼추 모양을 만들어 가는데, 내 것만 여전히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투박하고 밋밋한 흙덩이로 남아 있었다. 하고 싶은 일에 주저 없이 뛰어드는 친구들을 볼 때면 나는 한없이 초조해졌다. 그 초조함은 나를 쉽게 뒤흔들었다. 남을 부러워하게 만들었고 그 끝에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102~103쪽)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때를 지난다. 나만 뒤처진 것만 같고, 때로 내 마음조차 또렷이 알지 못해 답답한 나날을. 이런 순간에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다음 챕터는 없을 것 같은 무기력에 빠진다. 그러나 마음은 다소 무겁겠지만, 이 시기는 언젠가 지나기 마련이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듯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은 흙덩이는 다른 형태로 빚어질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없어 보일지라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니다. 잠시 동면을 하며 숨을 고르는 시간은 꼭 필요하니까.

“사람에게도 긴 동면이 필요해지는 때가 있는 법이야. 너무 길어지지만은 않길 바라는 수밖에.” (187쪽)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게 만들던 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분명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모양을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남들이 정해 놓은 결말의 공식을 따를 필요는 없어.”
희미한 미래 앞에 불안해하고 망설이면서도
나만의 엔딩을 향해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는 마음

미도는 엄마의 가게를 살리기 위해 친구와 가족들의 도움을 받는다. 가호는 디저트를 만들어 털실아이와 니농마카롱을 함께 알리고, 언니는 강좌를 열며 가게의 SNS를 맡아 운영한다. 윤아는 영상을 찍어 홍보에 나서고, 할머니는 입소문을 내 친구들을 가게로 이끈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힘을 보태고 있지만, 미도는 정작 자신만은 아직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가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멈춰 두었던 동화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가게의 앞날도, 자신의 진로도 마치 동화처럼 새드 엔딩일 것만 같다.
그렇다면 흔한 동화의 결말처럼 우리의 삶도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귀결되어야만 해피 엔딩일까. 그게 아니라면 모두 새드 엔딩인 걸까.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러한 질문 앞에 자연스레 멈춰 서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슬픈 동화가 필요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잔혹 동화가 필요할 수도 있지. 그리고 어느 정도 슬픔이 동반될 때 비로소 진정한 해피 엔딩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야. 미도의 동화가 어떤 결말이든 독자들은 그 속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어떻게든 찾아낼 거야. 아무리 비극적 결말이라고 해도 말이야. 그러니까 미도만의 엔딩을 보여 주면 돼. 남들이 정해 놓은 결말의 공식을 따를 필요는 없어. 분명 미도만이 쓸 수 있는 결말이 있을 거야.” (224~225쪽)

누군가에게는 밝은 결말이 위로로 다가오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품은 이야기가 더 진실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정해 놓은 결말의 모양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끝까지 써 내려가려는 마음이다.
작가는 “우리가 주춤거리고 망설일 때 시간은 절대 멈춰 주지 않지만, 꿈은 기다려 준다. 그 사실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니 실컷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전한다. 불안해하고, 머뭇대고, 때로는 새드 엔딩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고 있으면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 이것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나만의 엔딩을 향해 걸어가는 모든 청소년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추천평

향기가 떠오르는 책이 있다. 어떤 책에서는 숲속의 싱그러운 향이, 또 어떤 책에서는 상큼한 과일 향이 떠오른다. 『설탕실』을 덮고 난 뒤, 한동안 좋은 버터를 태웠을 때의 고소한 너티 향이 코끝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 미도와 가호가 함께 피낭시에를 만들던 장면 때문인지, 아니면 털실아이에 가면 어떤 냄새가 날지를 상상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다.
오래 묵은 울 털실에서는 묵직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난다. 버터를 태울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향이다. 울은 양털이고, 양털에는 라놀린(Lanolin)이라는 천연 기름기가 배어 있는다. 이 기름기가 실에 남은 채로 오래 묵히면 그런 향이 난다.

버터와 털실. 전혀 다른 두 소재가 의외의 향기를 공유하듯, 『설탕실』의 인물들 역시 개성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흔들리고 불안해하면서도 진득하게 내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점이다. 부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겨 내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세상에 드러낸 미도, 학교에 가기 힘들 정도로 마음의 허리를 다쳤지만 조리 고등학교에 도전하는 가호, 다디단 마카롱의 힘을 빌려 쓰디쓴 우울감을 떨쳐 내려고 애쓰는 혜지 씨, 도려내진 유년을 기억하면서도 또 다른 구멍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미주까지. 인물들의 불안은 무척이나 현실적이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플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다. 언젠가 나 역시 품고 있던, 그 서툰 고민의 조각을 하나씩 안은 채 허우적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훗날 미도가 쓴 또 다른 동화를 읽고 싶어졌고, 가호가 다쿠아즈를 더 맛있게 구워 낼 수 있기를 응원하게 되었다.

버터를 잘 태우려면 중불에서, 버터 전체에 열이 고르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천천히 저어 주어야 한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버터를 잘 살피며 적당한 색이 나왔는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 불안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일상을 버티고 있는 친구들에게 『설탕실』은 소설 속에 나오는 동화 내용처럼, 작은 우산이 되어 줄 것이다. - 범유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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