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이신주 「난세의 미꾸라지」
정진영 「시간을 되돌리면」 박상호 「벽 너머의 소리」 범유진 「플라이 플라이어」 강혜림 「미세한 문제」 강민지 「쓸모 있는 것들」 |
이신주의 다른 상품
정진영의 다른 상품
박상호의 다른 상품
범유진의 다른 상품
강혜림의 다른 상품
|
“전형적인 인재였죠.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고.”
경선이 내게 말해준 사고 경위는 참담했다. 사고 당일, 내가 탄 버스가 정류장에 멈춘 사이에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 작업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했다. 해당 사고로 나를 포함해 사상자 19명이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부실한 관리와 감독, 뒷돈이 오간 불법 재하도급 계약, 재개발조합 비리 등 차고 넘쳤다. 건물 잔해에 깔린 채 발견된 나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뒤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사망 선고와 동시에 내 머리에서 뇌가 적출돼 한국뇌은행으로 옮겨졌다. 뇌은행 연구진은 내 뇌의 세포와 주변 신경계를 급속 동결한 뒤 레이저로 미세하게 잘랐다. 연구진은 절편화한 뇌를 전자현미경 등 고해상도 장치로 스캔해 방대한 데이터를 남겼다. 데이터는 인간의 뇌를 구현한 인공지능의 기반이 됐다. “설마, 제가 인공지능이라는 말인가요?” 경선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되돌리면」중에서 “찬, 찬, 윤경찬!” 찬, 찬, 찬! 순간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버지가 술잔을 부딪치며 즐겨듣던 찬, 찬, 찬! 잠깐, 이게 아니다. 아내의 부재를 은근히 바랐던 남편처럼 오해 사기 딱 좋았다. 율, 미안해. 뭔지 모르게 미안해서 건넸던 낮은 사과는 청소기 소음에 묻혀버렸다. 대충 거실을 밀며 주방으로 이동했다. “윤경찬! 소파 밑은 봤어?” 제법 큰 소리였다. 나는 재빨리 거실로 돌아와 소파 밑을 봤다. 율이 숨어 있기에 너무 얕고 좁은 그곳에는 먼지들만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율의 목소리였다. 율의 목소리를 자세히 듣기 위해 청소기 전원을 껐다. 율을 불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소심하게 청소기 전원을 눌렀다. “찬, 나 율이야. 청소기 안에 있어.”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많다. 외계인이나 유령을 봤다는 목격담은 종종 있으니 그렇다 치자. 동물이 인간이 되고, 인간이 벌레가 되는 이야기도 익히 들어왔으니 그러려니 하자. 그런데 청소기에 산 사람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미세한 문제」중에서 |
|
한국 단편 장르소설의 혁신
다채로운 여섯 가지 이야기를 만난다 이번 『이달의 장르소설3』은 시대극과 공상과학적인 판타지를 섞은 「난세의 미꾸라지」로 이야기의 장을 연다.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평민들에게 어느 날 손만 문지르면 금화부터 동화까지 무작위로 제공되는 기계가 나타난다는 독특한 설정이 이목을 끈다. 하루 벌어 하루 넘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재능과 자질이란 금전 몇 푼으로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일까? 이야기가 독자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그제야 제목의 진정한 의미가 와닿게 된다. 두 번째 「시간을 되돌리면」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인공지능이 되어버린 남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맵핑해 인간처럼 사고하도록 인공지능, 데이터를 구성한다면 그것은 과연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만약 사람이라고 인정한다면, 과연 어떤 부분에서 그것을 사람이라고 정의하게 될까. 과학적인 관점으로 시작해 ‘한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는 이 SF 드라마는 마지막 문장을 보았을 때 큰 감동으로 밀려들 것이다. 「벽 너머의 소리」는 용기를 내고픈 한 여고생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성장기를 담는다.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건 대부분 겪어봤을 경험이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용기 있는 타인을 향한 동경, 변하고 싶은 갈망과 그런데도 한 걸음 내딛는 게 어려운 망설임 등을 작가는 한창 섬세할 여고생의 모습으로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여고생 주인공이 가진 특별하면서도 작고 사소한 ‘실 전화’를 통해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플라이 플라이어」는 1인칭 시점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장으로 풀어나간다. 오로지 주인공의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하면서도 시간을 뛰어넘는 ‘플라이어’라는 타임리프 소재는 물론, 그보다 더 넓은 우주 세계관 또한 짧은 이야기 속에 견고하게 구성해두어 이야기뿐 아니라 배경 세계에까지 흥미를 일으킨다. 동시에 일반적인 편견을 자연스럽게 깨는 작은 반전도 담겨있으니, 이토록 고밀도의 단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미세한 문제」는 청소기에 빨려 들어간 아내를 되찾기 위한 남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날 사라진 아내, 그리고 청소기를 켤 때마다 청소기 안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착각인지 확신할 수 없게 하면서 과연 이 부부의 진짜 ‘문제’는 어떤 것이었을지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든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놓치고 있을 아주 미세한 문제, 그리고 그 미세한 문제가 어떤 결말을 낳는지는 작품을 직접 보아야 깨달을 수 있다. 마지막 「쓸모 있는 것들」은 더운 여름날,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한 번은 떠오를 만한 호러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저 잡동사니처럼 보이는 물건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서 ‘다 쓸모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 이야기는 대체 그 물건들은 어디에 ‘쓸모’가 있는 걸까, 하는 상상에서 시작해 목덜미를 서늘하게 하는 오싹한 결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이토록 매력적인 장르소설이라니! 독자들이 매달 기다리게 될 또 하나의 즐거움 ‘이달에 선정되면 다음 달에 출간된다’는 전무후무한 장르소설 공모전이 발표되자, 반신반의하는 시선들도 적지 않았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말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번갯불로 구운 콩 맛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창간호부터 시작해 이번에 『이달의 장르소설3』이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번갯불에 구운 콩 맛을 보듯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장르소설의 상찬을 맛보게 되었다. 여기 담긴 여섯 편의 단편소설은 제각각 다른 토양에서 자란 콩나무들이다. 콩나무가 줄기를 뻗어 잭을 상상도 못 한 놀라운 세계로 유혹했듯, 이 각양각색의 콩나무들이 독자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달의 장르소설』이 매달 만나는 즐거운 모험이자, 한 달에 한 번 점심값으로 책식을 하는 또 다른 식사 한 끼가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이달의 장르소설』은 더 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이 만나는 광장이 되기도 할 것이다. 연말에는 광장에 모인 독자들이 『이달의 장르소설』 중 최애 장르소설을 선정하고, 뽑힌 작품들을 『올해의 장르소설』로 출간해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