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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예 「엔젤아줄」
조은성 「구구를 찾아서」 김성준 「지옥 호텔」 노네임 「늑대 사냥꾼」 김은선 「엄마의 광대」 김채은 「자비로운 군주의 뜻대로 나를 만드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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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상태로 천장이 무너지면, 바닥이 꺼져 그대로 몸뚱이가 스러지면, 형체가 남지 않은 연기가 되어 홀연히 공중으로 흩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녀는 자주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습한 기운이 그녀를 옭아매면 그 이상하고 서늘한 느낌이 붉은 혈관을 타고 들어가 온몸의 구석구석을 바싹 말렸다. 숨통을 끊어낼 것처럼, 무언가 발끝부터 목덜미까지 밀고 올라오는 그 순간이 치달을 때면 몸서리가 났다.
그럴 때면 그녀는 볕이 드는 창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기를 반복했다. 햇빛이 식물의 싹을 틔워내듯 그녀도 볕을 쬐면 습한 기운에 질척이고 있는 몸뚱이에 연하고 싱그러운 잎을 틔워낼 몽우리를 움틀 수 있을까. ---「엄마의 광대」중에서 관묵은 ‘무’가 대단한 것인 양 말했지만 사실 그건 보리에게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보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으면 시체가 되고, 그 시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악취를 풍기며 점점 흉물스러워진다. 하지만 보리는 그렇지 않았다. 보리는 그저 전원이 꺼지면 너무나도 쉽게 무의 존재가 될 수 있다. 누군가 보리를 다시 충전하지 않는다면, 보리의 데이터를 백업해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보리는 그렇게 죽음 이후 아무것도 없게 된다. 보리에게 그걸 죽음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게 언제든 누군가 보리의 전원을 켜면 다시 보리는 유의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그건 보리에게 다음 생이 주어진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자비로운 군주의 뜻대로 나를 만드소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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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편 장르소설의 혁신
다채로운 여섯 가지 이야기를 만난다 회를 거듭할수록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져가는 『이달의 장르소설』 시리즈. 겨울의 끝자락에 인사를 건네는 『이달의 장르소설 8』에는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의 서늘함과 곧 다가올 봄의 따뜻함이 공존하는 여섯 작품이 독자를 반긴다. 「엔젤아줄」은 철저한 계급 사회인 퍼시픽 시티의 모습을 그린다. 퍼시픽 시티의 가난한 극빈층인 해인들은 매일 깊은 바다에 뛰어든다. 100년 전에 발견된 심해 광물 엔젤아줄이 그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다 깊은 곳에는 악마가 살고, 그들은 매일 살기 위해 죽음에 뛰어들거나, 죽은 것과 다름없이 비루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 이 끔찍한 삶의 종착지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구구를 찾아서」는 세차장을 운영하는 지영의 일상을 다룬다. 의문의 사내에게 큰일을 당할 뻔한 지영은 그 이후 자신이 기르던 개와 닭들까지 피해를 입자 범인이 어디선가 자신을 노리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큰일을 당하지 않은 지영의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럴수록 지영의 불안감은 커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범인으로 의심 가는 사람을 알게 된 지영은 결국 홀로 그를 만나러 간다. 「지옥 호텔」의 천사 교도관 김문식은 특별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바로 범죄자를 처단하는 한 비밀 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병적으로 범죄자를 혐오하고, 그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의 과거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늑대 사냥꾼」은 가해자는 늑대로, 피해자는 약한 짐승으로 다시 태어나는 세계를 그린다. 늑대 사냥꾼인 그레이는 양을 채간 늑대 무리를 추적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 속에서 헤매며 여러 상념에 침잠한다. 섬세한 문장이 눈밭의 발자국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설산의 한복판에 선 듯한 몰입감과 자상처럼 깊게 남는 여운을 선사한다. 「엄마의 광대」는 엄마로 인한 상처를 간직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말하지 못할 상처를 안고 마당에 대추나무가 있는 이층집에 세 들어 사는 그녀. 그녀는 잎새를 틔우는 햇살처럼 따스한 노부부의 배려에 점차 상처를 치유해가며 상처와 마주 볼 용기를 얻는다. 「자비로운 군주의 뜻대로 나를 만드소서」의 주인공 보리는 혜주 스님을 본떠 만든 종교 안드로이드다. 보리를 혜주 스님의 현신이라 여기는 사람들과 달리, 보리는 자신을 별개의 존재라 주장해 사람들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겨준다. 각자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화는 예상치 못한 웃음을 선사하다가도 선문답에서 깨달음을 얻듯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오래도록 곱씹게 한다. 이토록 매력적인 장르소설이라니! 독자들이 매달 기다리게 될 또 하나의 즐거움 ‘이달에 선정되면 다음 달에 출간된다’는 전무후무한 장르소설 공모전이 발표되자, 반신반의하는 시선들이 많았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고, 괜히 서두르느라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할 거라며 혀를 차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공모전은 꾸준히 순항하고 있고, 아무도 도전하지 않은 길이기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작품집이 달마다 탄생하고 있다. 빠른 출간 루틴은 단순히 많이 출간하기 위함이 아니다. 고즈넉이엔티는 『이달의 장르소설』 시리즈가 작가에게는 보다 쉽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장이, 독자들에게는 장르적 재미를 해갈하며 장르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두가 어우러져 장르라는 이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이 되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