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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교수가 들려주는 변방의 역사 1
낮의 히히히스토리
김준혁
가갸날 20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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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망국의 날에 죽는 선비 하나 없어서야
오늘의 땅투기와 조선시대의 땅 빼앗기
조선의 진짜 무사들 이야기
법의 적용은 임금의 가까운 신하에서부터
조선시대에도 사법개혁이 있었다
서울 함락 직후 맥아더와 이승만 수원에서 만났다
영조의 광기와 사도세자의 죽음
불순한 음모 인조반정과 쿠데타
강화도령 철종은 개혁군주가 되고 싶었다
여인천하와 외척의 싸움
조선 사헌부의 난잡했던 신고식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꿈꾸었던 나라
쇼킹한 원조 친일파 이근택
친일의 역사에서 시작된 유치원의 뿌리
의병,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하다
조선시대의 신종 코로나 괴질
여성이 지켜온 세시풍속 문화
조선 최대의 정치공작 정여립 사건
조선시대의 사문난적 마녀사냥
정조 죽음의 미스테리
명나라 향한 사대주의의 말로
백성을 품어준 포용의 리더십
단종의 사면, 유성룡의 사면
소서노가 선택한 도시, 천박한 서울

저자 소개1

수원에서 자란 수원인이다. 수원에서 초, 중, 고교를 나오고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다녔다. 돌아가신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하여 역사책을 많이 읽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 백령도로 전학을 갔을 때 학교 안에 있는 우리나라 설화집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삶에 대해 어렴풋이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듯하다. 대학을 다니며 그 당시 대학생들의 고민과 실천에 참여했다. 학생운동의 지도부에 있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누구 못지않게 싸웠다. 6월 항쟁 당시 오랫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스팔트 위에서 살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대학 졸업 후 통일운동 단체에
수원에서 자란 수원인이다. 수원에서 초, 중, 고교를 나오고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다녔다. 돌아가신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하여 역사책을 많이 읽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 백령도로 전학을 갔을 때 학교 안에 있는 우리나라 설화집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삶에 대해 어렴풋이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듯하다. 대학을 다니며 그 당시 대학생들의 고민과 실천에 참여했다. 학생운동의 지도부에 있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누구 못지않게 싸웠다. 6월 항쟁 당시 오랫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스팔트 위에서 살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대학 졸업 후 통일운동 단체에서 일하다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29살의 늦은 나이에 중앙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운명적으로 정조(正祖)를 만났다. 박사학위 취득 후 강단에 서면서 학계와 대중들에게 인정받아 정조의 개혁사상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도 출연하였고, 저서 《리더라면 정조처럼》이 2020년 문재인 대통령 추천도서로 선정되는 영광도 얻었다.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를 통해 이재명의 지도자론을 세상에 알렸다.
수원화성박물관 학예팀장과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한신대학교 교수이다. 학자로서의 활동과 함께 거리에서 시민들과 촛불을 들어 올리는 일에도 열심이다. 시민들이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남북화해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평등과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한 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얻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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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58쪽 | 422g | 140*210*20mm
ISBN13
9791187949855

책 속으로

나는 정치와 역사를 동시에 담은 유튜브를 하고 싶었다. 역사를 통해 오늘의 정치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의 정치와 과거 우리 역사 속의 정치를 비교하고, 지금의 잘못된 악인들을 과거의 악인들과 대비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다. 온갖 권력을 누리는 악인들을 반드시 하늘이 응징할 것이라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주고 싶었다. …

팟캐스트에서 100만 명을 넘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내가 한 방송 중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김용민 PD가 감격해서 전화를 준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후 김PD는 김용민TV를 만들면서 내게 제안을 했다. 팟캐스트에서 방송하던 것을 유튜브에서 흥미롭게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목을 이야기했다. 바로 ‘히히히스토리’였다. 즐겁게 웃는 ‘히히히’와 역사를 말하는 ‘히스토리’를 합친 것이다.
--- p.7

황현은 절망했어요. 더 지켜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결심을 하죠. 자신이라도 죽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거예요. 나라를 빼앗겼는데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이는 나라를 되찾을 힘이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생각한 거였죠. 죽기로 결심을 한 황현은 음력 8월 3일 밤에 마음을 가다듬고 〈절명시〉를 썼어요. 짧은 유서도 작성했죠. 그리고 조용히 앉아 아편을 탄 술을 마셨어요.
--- p.19

이홍경이 사귀던 통감부 서기관이 일본으로 발령이 났어요. 그 사람과 이홍경은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거든요. 송별회가 열리게 됐어요. 두 사람이 갑자기 송별회 자리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진한 키스를 나눈 거예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랐죠. 속으로 혀를 끌끌 찼겠죠. 이홍경이 하세가와 요시미치 사령관과 특별한 관계라는 소문이 온 나라에 자자했거든요. 하지만 이들은 풍문에 전혀 개의치 않고 이런 만인이 손가락질할 일탈행위를 벌인 거예요. 당시 친일파들의 매국 행위가 얼마나 상상을 초월했는지 알 수 있죠.
--- p.22

김체건은 초량 왜관에 잠입하기로 결심합니다. … 김체건은 눈에 불을 켜고 일본 무사들이 검법을 지켜봤죠. 몰래 지켜보며 눈에 익힌 다음 한밤중에 그 동작들을 시연하면서 배워나간 거죠. 하나라도 더 가까이에서 찬찬히 지켜보기 위해서 훈련장 건물 마루 밑에 토굴을 파고 그 속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고 해요. 그러기를 3년 가까이 했어요. 왜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웠죠. 그래도 만족스럽지가 못한 거예요. 김체건은 일본으로 건너갈 결심을 합니다. 숙종 초에 일본으로 떠나는 조선통신사가 있었어요. … 일본에 건너간 다음 최고의 고수를 만나기 위해 일본 무도관으로 잠입하기도 했죠.

일본어를 배웠다 해도 낯선 땅에 가서 신분과 목적을 숨긴 채 남의 나라 무예의 정수를 배워 온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어요. 힘든 노력 끝에 김체건은 일본 정통 검법을 완전히 터득하게 되었죠. 일본 검법을 제대로 배움으로써 조선 검법을 통해 일본 검법을 이길 수 있는 방법까지 깨우치게 된 거예요. 마침내 조선으로 돌아왔죠. 김체건이 돌아오자 숙종은 일본 검법을 시연해 보라고 했어요. 숙종은 김체건의 진짜 무예 실력을 보기 위해 바닥에 재를 뿌리라고 했어요. 김체건은 두 발의 엄지발가락만으로 바닥을 디디며 붕붕 날아다녔다는 거예요. 시연이 끝났을 때 재 위에는 발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고 해요. 사람들은 김체건을 가리켜 ‘조선제일검’이라고 부르게 됐죠.
--- p.44

영조가 노론의 지지에 의해 왕이 되었거든요. 아무리 신하들의 힘이 세다고 해도 왕의 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자기 정치를 하고 싶은 의지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영조가 자신의 철학대로 밀고 나가려고 하잖아요. 그때 신하들이 영조한테 말했다죠. “전하가 어떻게 국왕이 되었는지 기억을 못하십니까? 전하 혼자 왕이 된 줄 아십니까?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전하가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권력이라는 건 제도 속에서 나오는 거죠. 강고한 제도를 틀어쥐고 있으면 왕이라도 신하에게 함부로 못하는 거죠. 지금의 대한민국 검찰은 전 세계에서 검찰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센 기능을 다 가지고 있어요. 이런 검찰 권력은 어디에도 없어요. 일제가 조선인을 탄압하기 위해서 사상 유례 없는 검찰 권력을 만든 거예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잖습니까? 전혀 견제를 받지 않다 보니까 권력 자체가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기소권 행사가 아주 자의적이에요.
--- p.60

사헌부는 아주 큰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평상시에 할 일이 많은 게 아니에요. 노는 게 일이었어요. 출근해서도 하루종일 술을 마시는 거죠. 술을 마실 때는 거위 알 모양의 아란배鵝卵杯에 술을 부어 마셨다고 해요. 붓 100개쯤 들어가는 큰 술잔이었죠. 그 많은 양의 술이 다 어디서 나왔을까요? 이들은 한창 흥이 오르면 자기들 조직의 노래를 불렀어요.

〈상대별곡〉이란 경기체가로 정종 때 대사헌을 지낸 권근이 지었죠. 조선시대의 수많은 기구 중에 자기 조직의 노래가 있던 기관은 사헌부밖에 없었죠. ‘영웅호걸 일시인재, 영웅호걸 일시인재, 나까지 몇 사람인고’ 하는 가사가 지금도 전해 와요. 백성을 위해 헌신하고 사회를 맑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짜 영웅일 텐데, 백성의 고혈을 빨아 하루종일 술이나 마시면서 이런 겉과 속이 다른 내용의 노래를 부른 거죠.
--- p.144

이근택이 고종한테는 측근 중의 측근이었거든요. 고종을 호위하며 신변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보니까 고종과 왕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장 잘 알지 않겠어요? 활용가치가 크다고 판단한 일본이 이근택을 매수해요. … 친일파로 변신한 다음에는 노골적으로 일본의 합병정책에 동조하고 앞장서죠. 불명예스럽게도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 된 거죠.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 집에 돌아온 이근택은 자신의 전 가족을 모아놓고 자랑스레 떠벌였다고 해요.

내가 오늘 중요한 조약에 도장을 찍었다. 우리 집은 억만금을 얻었다. 영원히 부자가 될 거다. 그때 갑자기 부엌에서 쾅, 쾅하고 칼자루 내리치는 소리가 났어요. 그러더니 여종이 칼을 들고 나타나서 이근택한테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내가 비록 이 집에서 일을 하는 천한 종이지만 너 같은 천하의 역적 밑에 있는 것이 부끄럽다, 너는 참으로 개, 돼지보다도 못하다고 하면서 칼을 집어던지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해요.
--- p.166

자기들 생각하고 다른 말을 했다고 마녀사냥으로 몰아붙여 사문난적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렸지요. 3년상을 주장했다고 사문난적이라고 몰아세웠고, 국정 운영에 간섭하면 안되는 대비의 행동을 지적했다고 불효자라는 낙인을 찍은 거예요. 그마저 부족했던지 마지막에는 남인들이 임금을 능욕하는 쿠데타를 준비했다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요.

이 가짜 뉴스에 숙종이 완전히 넘어간 거예요. 갑자기 영의정 허적과 병조판서 유혁연이 사형에 처해진 거예요. 이 사람들에게 덧씌운 죄목은 역적죄였어요. 그런데 윤휴만큼은 달랐어요. 윤휴는 사문난적 사상범으로 몰아서 죽인 거예요. … 사문난적이란 말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는 천형과 같은 것이었어요. 윤휴의 죽음을 본 사대부들은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 p.241

다산이 쓴 글 중에 〈솔피의 노래〉라는 게 있어요. 솔피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인데, 이빨을 지니고 있거든요. 솔피떼 수백 마리가 큰 고래한테 달려들어 물어뜯어서 죽였다는 내용이에요. 솔피는 노론, 큰 고래는 정조로 해석될 수 있어요. 다산은 〈솔피의 노래〉를 통해 아주 은유적으로 정조가 독살되었다고 쓴 거죠. 직설적으로 쓰면 곧바로 체포되어 참형에 처해질 테니 그렇게 하기는 어려웠죠. 다산은 아주 명백하게 정조가 독살되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 p.257

출판사 리뷰

역사가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어떤 이들은 역사를 고리타분하다고 폄훼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너무도 재미있고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국왕의 제왕학 교육의 80%는 역사교육이다. 중국의 역사에서부터 우리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역사교육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지도자들 교육의 필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 중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역사는 미래를 예언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역사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운영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도구의 발달로 인하여 문명의 편리가 시대에 따라 다를 뿐 인간의 희로애락과 권력과 금력에 대한 의지는 과거나 현재나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역사 속의 인간의 모습과 지금 우리의 모습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넘어 미래의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를 공부하고 그것을 토대로 설계하면 된다. 이처럼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만이 아니라 실제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그래서 나는 역사를 실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를 많은 이들이 편안하게 공부하고 이해하는 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이른바 역사의 대중화이다. 지금은 역사의 대중화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근 20여 년 전만 하다라도 역사를 대중화하자는 역사학자들이 매도되기도 하였다. 연구자가 연구실 안에서 연구만 하면 되지 사람들 앞에 나가 오락 프로그램 운영하듯 떠드냐는 비아냥이 있었다. 역사학자들의 연구 중에는 매우 의미있는 성과도 있지만 같은 연구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논문도 적지 않다. 연구실 안에서 연구만 하고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것인가?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고 그들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도록 도움되는 일을 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도 역사를 교육하는 방송 콘텐츠가 엄청나게 늘었다. KBS의 ‘역사스페셜’에서부터 ‘역사저널 그날’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은 역사 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매우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종편에서도 ‘벌거벗은 세계사’ 등 한국사의 영역을 넘어 세계사까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바로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국민들의 욕구가 넘치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를 방송사에서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치자면 역사는 실용의 학문, 즉 실학으로 볼 수 있다. 나 역시 KBS의 ‘역사스페셜’에 다수 출연하고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에 2회 출연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역사학자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 역시 역사를 원하는 대중들 때문인 것이다.

20세기의 마지막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방송 형식이 유튜브다. 유튜브에서 모든 것을 배우고 유튜브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크리에이터라고 하고, 이들은 2030 세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튜브에는 너무도 많은 분야의 방송이 있는데 그중 가장 선호되는 분야가 정치와 역사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정치평론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지역감정과 계층갈등에 더해 진보와 보수로 크게 나뉘어 있어서 정치 분야에 대한 유튜브 방송이 넘쳐난다. 역사를 대중화하는 유튜브 방송도 엄청나다. 강남의 유명학원 강사들이 학원을 박차고 나와 독자적으로 연구소를 만들고 수능 유튜브를 만들어 엄청난 인기와 부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아직 대학 교수들이 독자적인 유튜브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은 역사 유튜브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정치와 역사를 동시에 담은 유튜브를 하고 싶었다. 역사를 통해 오늘의 정치현실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지금의 정치와 과거 우리 역사 속의 정치를 비교하고, 지금의 잘못된 악인들을 과거의 악인들과 대비하여 이야기 하고 싶었다. 온갖 권력을 누리는 악인들에게 반드시 하늘이 응징할 것이라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주고 싶었다.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동지가 바로 김용민 PD였다. 김용민 PD는 ‘나는 꼼수다’로 유명한 분이다. 김어준, 주진우, 정봉주라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배치하여 이명박과 싸운 ‘나는 꼼수다’를 기획한 PD이니 그는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와의 인연은 독특하다. 국민들의 자본으로 만든 국민라디오에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그때 김용민 PD를 처음 만났다. 김PD가 나의 방송을 듣고 내 팬이 되었다고 했다. 영광이었다. 이 엄청난 사람이 나의 팬이라니! 그 뒤 그와 깊은 인연을 맺으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유튜브 전 단계인 팟캐스트를 같이 방송하기도 했다. 나는 전철 안에서도 거리에서도 그의 전화를 받고 역사의 눈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이야기해주었다. 팟캐스트에서 100만 명을 넘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내가 한 방송 중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김용민 PD가 감격해서 전화를 준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후 김PD는 김용민TV를 만들면서 내게 제안을 했다. 팟캐스트에서 방송하던 것을 유튜브에서 흥미롭게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목을 이야기했다. 바로 ‘히히히스토리’였다. 즐겁게 웃는 ’히히히‘와 역사를 말하는 ’히스토리‘를 합친 것이다. 포복절도하듯 웃으면서 강력한 철퇴로 악의 무리들을 내리치는 방송, 뒤로 쓰러지며 웃다가도 눈물 흘리며 감동 받는 역사 방송을 만들자는 의도였다. 나는 그의 제안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2년여 기간 동안 매주 서울로 올라가 방송을 하였다.

처음에는 한국 진보계의 여신이라 불리게 된 박지희 아나운서와 함께 방송을 진행하고, 나중에는 대중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는 오윤혜 방송인과 같이 진행하였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들이다. 이 자리를 빌어 김용민 PD와 박지희, 오윤혜 세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방송에서 들려준 이야기들은 거의가 정사正史에 기록된 것들이다.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자세히 찾아내어 이야기하느라 숨은 이야기처럼 되어 버렸다. 나의 말솜씨 때문에 재미있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야사野史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분명히 이야기하건데 나는 기록에 없는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는다. 그러니 야사처럼 들렸더라도 단연코 정확한 그 시대의 역사이고, 그에 대한 나의 역사 해석이다.

역사를 대중화하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정의가 다시 자리잡게 하겠다는 나의 마음은 늘 한결같다. 나의 이 한결 같은 마음이 방송을 통해, 그리고 다시 이 책을 통해 보여질 것이다. 조선시대의 노론에서 시작한 권력이 일제강점기에 친일파로, 해방 이후 다시 친미파로 변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 비극의 역사를 청산하고, 이제 진짜 민초들이 권력을 갖고 그들의 창의와 지혜 그리고 정의로 운영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이 책이 그런 나라를 만드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정말 많은 국민들이 이 책을 읽고 단순히 흥미로운 역사의 뒷이야기가 아니라 그 뒷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진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민초들의 열망을 함께 느끼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는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임인년이 시작되는 첫달! 호시우행虎視牛行! 즉, 호랑이의 눈으로 소처럼 걸어가면 우리는 반드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낼 것이다. 신영복 교수님의 말씀처럼 역사의 승리는 변방이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뒷담화가 변방이라면 이 변방의 역사가 중심으로 들어가 혁명의 시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저자의 말, 2022년 새해 첫달 수원 일보헌一步軒에서 김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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