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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_ 모르면 인간의 진실에 무지하게 될 7개의 인문학 주제
1장 악마는 담론을 장악한다 사치는 신분 상승 욕구의 표출 / 권력은 ‘관계’에서 나온다 / 진실보다 강력한 ‘상징적 폭력’ / 시민의식 고양할 자유·우파 담론 투쟁을 2장 권력의 시선, 당신의 수술실을 엿본다 감시는 권력이다 / ‘앎-권력’부터 ‘생체권력’까지 / 당신의 수술실을 CCTV가 본다면 3장 노동이 된 여가, 특권이 된 일 ‘과시 소비’에서 과소(寡少)소비로 / 상류계급 따라 하기는 현대사회의 특징 / 오늘날의 상류층은 ‘무한(無閑)’계급 4장 인문학으로 풀어 보는 선물 줄 의무, 받을 의무, 답례할 의무 / 선물은 권력·지배·위세의 징표 / 공짜 점심은 없다 5장 당신의 생각을 지배하는 아비투스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 / 취향은 개인이 아니라 계급의 것 / 과거는 현재에 이력을 남긴다 6장 ‘아우라’가 사라진 정치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듯한 / 제의(祭儀)가치에서 전시가치로 / 아우라와 진정성 상실의 시대 7장 레이몽 아롱이 한국 좌파에 보내는 경고 마르크시즘에 경도된 지식인 사회 맹공 / 68 세대, 레이몽 아롱을 재발견하다 / 프랑스보다 40년 뒤처진 한국 / 젊은 미국의 ‘유쾌한 낙관론’ |
朴貞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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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에게 개인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가르칠 방법은 없을까,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런 데 더 힘을 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더 시야를 넓혀 우리 선배 세대가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화두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너희가 한 달에 돈 몇십만 원 받는 게 그렇게 좋으냐, 그렇게 해서 평생 노예로 살고 싶으냐? 평생 노예로 살겠는가, 아니면 자유인으로 살고 싶은가? 이런 데서 어떤 구호를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1. 악마는 담론을 장악한다」중에서 과거에는 감시가 지배 권력과 피지배자 사이의 일이었는데, 지금은 개인과 개인 간의 감시 체제가 됐어요. ‘수평적인 감시 사회’라고 할까요. 누가 물건을 훔치나, 폭력을 쓰나, 사람을 죽이나…. 심지어 누가 마스크를 안 썼나도 감시해서, 잠깐이라도 마스크 안 쓰고 있으면 모르는 누군가가 와서 마스크 쓰라고 하고. 벤담 시대의 감옥은 진짜 감옥 안만 감옥이었는데 현대사회, 그러니까 지금 빅테크의 시대, 디지털 시대에는 사회 전체가 감옥이 아닐까. CCTV의 감시도 받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도 계속해서 나를 감시하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사회가 됐지요. ---「2. 권력의 시선, 당신의 수술실을 엿본다」중에서 과거엔 여가는 상류층의 것이고 노동은 하층계급만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오늘날은 그 반대가 됐어요. 베블런은 일하지 않는 것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의 지표라고 역설적으로 말했는데, 이제는 노동이 사회적 평판과 명성을 얻는 주요한 참고사항이 됐습니다. 베블런의 유한계급은 힘든 일을 피하는 사람들인데, 이제는 여가가 오히려 중노동이 됐지요? 그럼 상류층답게 힘든 걸, 즉 여가를 기피해야죠. 또 계급이란 ‘차이’에 의해 정해지는 것인데, 아래 계층이 여가를 즐긴다면 상류층은 그와 차별화하기 위해 여가를 갖지 않는다, 그냥 노동을 하겠다고 결정했어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노동이 여가가 되고 여가는 노동이 됐습니다. 코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노동 그 자체가 소비되는 역설적인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3. 노동이 된 여가, 특권이 된 일」중에서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사심 없는 순수한 선물이라는 건 결코 있을 수 없죠. 정치인이나 고위 관리가 업자한테서 돈을 받았을 때,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대가성 없다, 순수하다 하고 얘기하잖아요.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그건 뇌물입니다. 지금 당장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더라도, 기한을 두고 언제고 나를 도와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돈을 주는 거죠. 그러니까 공적 생활에서 순수한 선물이라는 건 없어요. 뇌물과 선물의 차이가 없습니다. ---「4. 인문학으로 풀어 보는 선물」중에서 보통 사람이 몇 년이라는 기간 안에 큰돈을 모으는 것과 좋은 인맥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공부해서 교양을 쌓는 것?그중 어느 게 더 현실적일까요?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고 부르디외는 말합니다. 교육으로 그 차별을 잡아 줘야 돼요.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일수록 단순히 경제적인 요인보다는 교육 수준, 예술에 대한 이해, 소비성 레저, 이런 게 중요하잖아요. 이를테면 얼마나 고급 스포츠를 할 줄 아느냐도 다 문화적 자본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자본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분해요. 그전에는 돈만 많으면 상류층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돈만 많고 문화자본이나 사회자본이 하나도 없으면 상류층 대우를 받지 못해요. ---「5. 당신의 생각을 지배하는 아비투스」중에서 정치인들은 그렇게 가까이 갈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아우라가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워낙 기술이 발달해서 누구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유포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대중에게 너무나 많이 노출됩니다. 그리고 이제 정치인들 자신이 이것을 이용해서 자기 이미지를 높이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쓰죠. 정치인들이 전부 연예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기엔 진정성(authenticity)이 없어요. 진품이 아니에요. 윤석열 씨도 말했잖아요. “내가 이제는 배우의 역할만 하겠다.” 아우라의 상실과 딱 맞는 얘기 아닙니까? 이렇게 정치인들은 배우가 됐습니다. ---「6. ‘아우라’가 사라진 정치」중에서 제가 1982년에 처음 번역판을 낼 때는 10·26, 5·18 지나고 대학생들이 한창 데모 하던 시절이었죠. 그때 이 책을 번역하면서도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보니까 그때보다 훨씬 더 옳은 거예요. 이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 아니, 40년이나 지났으면 “그래, 참 옛날 얘기지” 이러는 게 맞는데,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 더 들어맞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 사회가 그동안 한 치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 아닙니까? ---「7. 레이몽 아롱이 한국 좌파에 보내는 경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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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설치가 2022년 대통령 선거 여당 후보의 공약으로까지 등장했다. 환자를 마취해 놓고 의료진과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거나, 휴대폰을 하거나, 심지어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 놓고 환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의 비행이 만연해서란다. 수술실에 의무적으로 CCTV를 설치하면 과연 의료진이 딴짓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CCTV가 찍고 있는, 거기 누운 환자가 당신이나 당신 가족이라도?
감시가 권력임을 망각한 시대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학문인 인문학은 원래부터 사회와 정치 문제까지 다루는 학문이었다. 공자와 맹자의 사상은 그대로 동아시아의 2천 년 통치이념이 되었고, 플라톤도 (옳든 그르든)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국가를 제안하지 않았던가. 『아비투스, 아우라가 뭐지?』(박정자 저, 최대현 대담. 기파랑, 2022)는 그 인문학의 눈으로 21세기 한국 사람들의 생각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사회와 정치의 이모저모를 읽어 주는 책이다. ‘아나운서와 불문학자의 대담’이라는 부제처럼, 2021년 여름 불문학자인 저자 박정자 교수가 펜앤드마이크TV의 최대현 아나운서와 매주 금요일에 나눈 대담이 책의 바탕이 되었다. 대통령 선거라는 굵직한 정치일정을 몇 달 앞둔 터라, 당시 당내 경선을 막 통과한 여야 후보들도 자연스럽게 자주 얘깃거리로 올랐다. 글머리의 수술실 CCTV는 당시 아직 대선과 상관없는 여당의 정책 제안이었는데, 이 책이 인쇄중일 때 이재명 후보가 정식 공약으로 내놓았다. 전신마취 수술을 받아 본 사람이나, 가족의 보호자로 회복실에 있어 본 사람은 백이면 백 “나는 찍지 마!”라고 말할 것이다. 잊을 만하면 올라오는 수술실의 비행 보도를 접하며 “CCTV 설치해야 돼!” 하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라는 것을 전제로 그러는 것이다. 미셸 푸코를 우리나라에 소개한 선구자이기도 한 저자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 그리고 그가 재발굴한 벤담의 ‘판옵티콘(panopticon)’을 가지고 ‘편재(遍在)하는, 감시하는 권력’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제2장 ‘권력의 시선, 당신의 수술실을 엿본다’). ‘앎-권력’, ‘생체권력’ 등, 푸코는 권력(power)의 외연을 삶 일반으로 확장한 ‘권력의 철학자’였다. 제1장(‘악마는 담론을 장악한다’)의 키워드 ‘담론(power)’ 역시 푸코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다. ‘토착왜구 대 반일종족주의’라는 담론 투쟁 얘기로 시작한 대담은, 권력은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 세월호·조국사태 등처럼 권력은 ‘상징적 폭력’을 통해 끊임없이 진실을 조작한다는 것 등 ‘지금, 여기’의 이슈들로 화제를 넓혀 간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데 비해 정신적으로 빈곤한 우리 사회에 ‘성숙한 시민의식’을 처방으로 내놓으면서, 자유주의·우파 담론 투쟁이 필요하다는 데 의기투합한다. 매시간 대담을 풀어 가는 실마리는 한편으로 방송 당시의 핫 이슈, 다른 한편 그와 관련된 저자의 근년작들이다.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이다』(2020)는 제1장에서 제안한 자유주의 담론 투쟁을 저자 스스로 실천한 저술이었다. ‘감시하는 권력’은 『시선은 권력이다』(2008)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다. ‘좌파의 바이블이었던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낡은 ‘경제자본’에만 주목한 것이고 부르디외가 이를 ‘사회자본’ ‘문화자본’으로 확장한 얘기를 비롯, 21세기의 달라진 자본과 노동의 풍경(제3장, ‘노동이 된 여가, 특권이 된 일’), 그리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선물 이론(제4장, ‘인문학으로 풀어 보는 선물’)은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다시읽기』(2021)의 다이제스트인 셈이다. 모르면 인간의 진실에 무지해진다 책의 제목에 쓰인 ‘아비투스(habitus)’는 부르디외(제5장, ‘당신의 생각을 지배하는 아비투스’), ‘아우라(Aura)’는 벤야민(제6장, ‘아우라가 사라진 정치’)에서 각각 나온 것이다. 아비투스란 “우리의 뇌 속에 이미 세팅돼 있는 CPU 같은 거다” 같은, 대담자가 수시로 치는 맞장구가 책읽기에 현장감을 더한다. 그런데 아비투스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니, 너무 결정론적이고 패배주의적인 건 아닐까? 천만에, 그런 줄을 알아야 인간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고, 대처할 수 있고, 권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 아비투스의 차이가 계급으로 나타나니, 계급의 수직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층계급 아동들의 예술교육과 무엇보다 영어교육이 필요하다는 대목에선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우라를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기술복제 아닌) ‘원본에만 존재하는 분위기’라 설명했다. 유서 깊고 나름의 역사와 아우라를 간직한 중앙청(옛 조선총독부)을 굳이 헐고 경복궁이며 불탄 남대문이며를 복원한다고 없는 아우라가 생기겠는가 대담자들은 묻는다. 기술복제가 일상화되며 아우라는 사라지고, 진품성(=진정성, authenticity)보다 ‘만들어진 이미지’가 중요해진 시대, 우리의 ‘연예인이 된 정치인’들은 ‘쇼통’ 말고 진정성과 아우라 있는 ‘진짜 소통’을 기대한다는 건 순진한 것일까? 어떤 자유주의자의 혜안 첫 번째부터 마지막 대담까지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키워드 하나가 ‘자유’다. 마지막 제7장(‘레이몽 아롱이 한국 좌파에 보내는 경고’)는 프랑스 철학자·정치학자·언론인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1905~1983)의 자유주의에 통째로 할애했다. 아롱은 좌파 일색의 프랑스 지성계에서 보기 드물게 자유와 보수의 가치를 견지한 사상가였다. 저자는 만년의 아롱이 68세대 젊은 두 학자와 나눈 대담이 책으로 나오자마자 『20세기의 증언』(1982)이라는 제목으로 국역판을 낸 바 있고, 최근 『자유주의자 레이몽 아롱』(2022)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을 냈다. 제7장은 번역판 서문에 못다 쓴 후기이자 아롱에게 바치는 헌사다. 이념의 차이로 고등학교 이래의 친구인 사르트르에게 절교당하는 등 좌파 지식인들로부터 왕따당하다시피 하면서도 자유주의의 필봉을 놓지 않은 아롱이다. 그도 사르트르도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을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지만, 역사는 사르트르 등의 조파가 정직하지 않았고 틀렸으며 아롱이 옳았고 정직했음을 증언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 대담에서, 오늘의 한국사회를 보는 저자의 안타까움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대목은 프랑스와 한국의 ‘40년 시차’다. (아롱과 대담한) 두 사람이 서문에서 “1968년에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던 우리 세대는 역사의 한옆에 서 있기만 한 세대다”라고 썼어요. (206쪽) 공무원 정원 얘기에선 소름이 다 돋더라고요. 당시 미테랑은 20만 명을 늘리겠다고 했어요. 레이몽 아롱은 이 공무원 증원 계획이 민중 선동(demagogie)이라고 직격탄을 날립니다. (210쪽) 정확히 586이 된 운동권 세대와 문재인 정권 공무원 증원의 미리보기 아닌가! 그래서 마지막 대담 제목이 ‘한국 좌파에 보내는 경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