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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姓
돈 집 성性 일 피 연緣 밥 욕 독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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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았든 안 낳았든, 젊든 나이 들었든, 성적 욕망의 크기와 양상은 여자마다 다를 터. 갈래갈래 복잡하게 펼쳐지고 저마다 다르게 생긴 성기 모양처럼 여자들이 자신의 성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발휘하기를. 각자 자신에게 맞는 징검다리를 만들어 성큼성큼 뜨거운 욕정을 향해 달려 가기를!
---「성性」중에서 집에서는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해야 하고, 회사에는 당연히 월급 값을 해야 한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여자인 것이, 엄마인 것이 다 비난으로 돌아오고 ‘월급 루팡’으로 찍히게 된다. 루팡은 ‘대도’라도 되지, 엄마인 여자는 퇴근을 일찍 하거나 육휴(육아휴가)라도 낼라치면 쉽사리 ‘월급 도둑’ 취급을 받는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여자들의 월급은 루팡의 절도 수준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일」중에서 엄마는 나를 낳고 떠났다. 나는 내 딸을 낳았고 언젠가 죽을 것이다. 엄마와 딸 사이에만 연결되는 줄, 때로는 생명선이, 때로는 올가미가 되는 그 줄.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연緣」중에서 음식점 이름은 거의 다 엄마 역할을 했던 여자 사람을 전면에 세운다. 여자 얼굴은 다 밥그릇이다. 실제로 식당 주방에서 요리하는 사람은 남자이더라도 마찬가지다. ---「밥」중에서 ‘오조오억’ ‘웅앵웅’이라는 말에도 남성 혐오라며 난리를 치는 남성들이 남자들 사이에 흔하게 퍼져 있는 욕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저 엄마 관련 욕이야말로 저급하기 이를 데 없는 혐오의 결정체 아닌가. ---「욕」중에서 이 집 주인이 나이 오십이 넘어 혼자가 되는 집을 지은 것처럼 나에게도 나만의 집이 있었으면. 택시를 기다리는데 이곳에 처음 도착한 날처럼 또 뭔가가 쿵 떨어져 내렸다. 왜 이렇게 자꾸 마음이 떨어지는 거지. 바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독獨」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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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姓, 돈, 집,성性, 일, 피, 연緣, 밥, 욕, 독獨…
이 세상에 ‘엄마’가 주제이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 “엄마가 되려고 태어나는 여자는 없지만, 어떤 여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어느 날 엄마가 된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엄마로 태어난다. 두 사람의 탄생. 온 우주를 떠도는 수억의 이야기들이 그날 동시에, 피와 함께 흘러나온다. 엄마에게서 나오지 않은 생명은 없듯, 이 세상에 엄마가 주제이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 ‘엄마’들은 세 번 태어난다 여자아이에서 엄마에서 인간으로 저자 권혁란은 여자아이, 딸, 엄마, 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자들 삶의 경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동안 딸과 엄마가 어떻게 겹쳐지고 또 멀어지는지에 관한 책들을 써 왔다. 모든 엄마는 딸이기도 하므로, 딸로서 바라본 엄마와 엄마의 눈으로 본 세상, 그 두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 책의 ‘한 글자’ 목차가 탄생했다, 성姓, 돈, 집, 성性, 일, 피, 연緣, 밥, 욕, 독獨… 다채로운 주제를 관통하며 여자아이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힘겨운 분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엄마들은 세 번 태어난다. 여자아이라는 젠더로, 엄마라는 사회적 역할로, 그리고 차별과 혐오를 온몸으로 겪으며 젠더와 사회적 역할에 저항하는 인간 그 자체로. 이 책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는 엄마가 되어서야 체감하게 된 여성을 향한 또 다른 혐오와 이중 기준에 관한 신랄하고 통쾌한 보고서이다. 아이를 둘이나 낳고도 이 집에서 나 홀로 다른 성이었다 저자는 “아버지가 아들들을 낳았다는 기나긴 기록”으로 이루어진 성경의 창세기 구절을 꼬집는 최영미 시인의 시 어떤 족보를 인용하며 책을 연다. “남자가 남자를 낳았다”는 언명은 동서양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신다”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부장 문인은 하늘은 만물을 만들어 내고 땅은 그것을 기른다는 음양오행까지 불러와 기어이 ‘낳다’라는 동사를 남자의 것으로 가져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가부장 중심주의는 ‘성(姓)’이라는 가계도를 만들어 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아버지 성을 붙인 이름으로 호적에 올랐고, 그 성과 이름으로 태어나 숨을 받은 삶을 살기 시작했다. 여자인 사람은 낳기만 하고 족보에 기록되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 의식과 악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는 비판 끝에 호주제가 폐지된 것이 2008년, 그 이후 엄마 성을 쓸 수 있는 제도가 생겼다. 하지만 엄마 성을 물려주는 일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아빠 성을 부여하는 건 절차조차 필요 없는 ‘원칙’이지만, 엄마 성을 물려주는 일은 여전히 ‘예외’가 된다. “아이를 둘이나 낳고도 이 집에서 나 홀로 권씨, 그나마 나의 성도 부계 내림”이라는 현실을 작가는 엄마가 되어 새롭게 체감하면서, 딸들의 성에 자신이 지워졌듯이 자신의 성에 엄마의 성이, 엄마의 성에 외할머니가… 그렇게 위로 갈수록 지워진 여자들의 흔적을 거슬러 헤아린다. 집과 밥, 그 앞에서 엄마들은 유독 복잡한 심경이 된다 한국 여성들에게 ‘집’과 ‘밥’처럼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또 있을까. 엄마들에게 집과 밥은 은근한 자부심이기도, 도무지 털어지지 않는 죄책감이기도 하다. 가족 중심주의가 유독 강한 우리 사회에서 ‘집’은 가정이라는 혈연 공동체 그 자체이며, 인사가 “밥은 먹었냐”이고 ‘식구’라는 단어가 이미 ‘밥’을 품고 있는 한국에서 먹는 문제는 고스란히 엄마들의 주요한 가치이자 의무로 부과된다. 작가는 “특히나 엄마가 된 여자들은 스스로 장소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면서 “집사람”은 될 수 있어도 “집주인”은 되지 못하는 엄마들의 현실을 지적한다. 한편, 예나 지금이나 “엄마의 역할을 밥상 차리는 것”으로 여기는 시선을 비판하면서도, “밥하는 게 지겨울 때”조차 식구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딜레마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엄마들이 집 안에서 집을 가꾸고 음식을 만들 땐 숭고하다는 말로 퉁치고, 집 밖에서 같은 일을 하면 보잘것없는 일로 치부하는 사회의 이중적 시선까지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숭고하다 칭송하는 일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돈 받고 하는 일엔 하찮다고 비난하니 무슨 일을 해도 유쾌하지도, 떳떳하지도 않다. 여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스스로 가격표를 붙이지 못한다.” 벌레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오랜 과거부터 수많은 욕설이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엄마’를 욕의 소재로 삼는 최근의 교실 풍경은 가벼이 넘기기가 어렵다. 반에서 서열이 낮은 아이를 엄마 이름으로 부르고, 누군가 실수하면 “애미 터졌냐”라고 말하는 등 십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드립”에 저자는 무력감을 호소한다. 표준어라고 여성을 비하하고 왜곡하는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요망한, 간사한, 간특한, 발칙한, 추잡한, 방정맞은, 부정 타는, 잡스런, 교활한, 경망한, 수다스런, 꼬리치는, 배시시, 게슴츠레, 알랑알랑, 비죽비죽 등이 들어가는 문장의 주어 자리에 주로 여성이 온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엄마와 관련된 충격적인 욕들이 많지만, 저자를 가장 서글프게 하는 욕은 ‘맘충’이다. 사람을 벌레로 비유해서라기보다는 “엄마의 노동을 완전히 무시라는 조어”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말대로라면 “여성은 장소를 더럽히는 존재로서만 사회 안에 현상할 수 있”으므로, ‘집구석’에 있어야 할 여성이 집밖으로 나오는 순간 ‘벌레’로 눈에 띄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정작 엄마가 진짜 짐승 같고 벌레 같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목숨 걸고 피를 쏟아 내며 아기를 출산할 때, 잠 못 자며 밤낮으로 수유할 때, 아이 똥 기저귀 갈고 먹이고 씻기고 업어 재우며 서성일 때.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짜 벌레처럼 고군분투할 때는 잠잠하다가, 바깥세상으로 나와 당신들 눈에 뜨이는 순간 ‘벌레’라고 손가락질한다.”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는 차별과 혐오가 우리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짚어가는 ‘페미니즘프레임’의 다섯 번째 책이다. 엄마인 여성은 물론 엄마가 아닌 여성, 그리고 남성들도 이 책을 통해 ‘엄마’라는 존재를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가장 극단적인 ‘신성’과 ‘혐오’의 대상으로서 ‘엄마’라는 사회적 기대를 넘어서기 위해 여성들이 어떤 분투를 하고 있는지도.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