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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 · 3
일러두기 · 7

창작시 ― 11

《민요시집》에서 · 13
명주딸기(1) | 명주딸기(2) | 물레 | 세월아 네월아 | 장산곧이 | 삼수갑산 | 새라 새봄 | 여름 바다 | 동로방천 | 넝쿨타령 | 그래 옳소 누나님 | 삼팔선 | 서관 아가씨 | 무심 | 사공의 아내 | 꿈길 | 갈매기 | 내 고향

《안서시집》에서 · 32
황해의 첫 봄 | 여봅소 서관 아가씨 | 오다가다 | 비 | 물결 | 눈 | 별 | 지는 몸 | 산고개 | 곽산 노을 | 봄비 | 야화 | 거울 | 포도 | 무심 | 해당꽃 | 봄바람 | 송경세 어느 친우에게 I춘향이와 이도령 | 꿈 | 좁은 잠자리 | 장미꽃

《해파리의 노래》에서 · 55
피리 | 가을 | 눈 | 별 낚으기 | 고적 | 눈 | 하품론 | 입 | 탄식 | 새빨간 피빛의 진달래꽃이 질 때 | 황포의 바다 | 참살구 | 죽음 | 언제 오셔요 | 삼월에도 삼짇날 | 별후 | 설은 희극 | 기도 | 탈춤 | 실제 | 사랑의 때 | 때 | 전원의 황혼 | 북방의 따님 | 나의 이상

번역시 ― 87

【서구시 번역】

《오뇌의 무도》에서 · 89
베르렌의 시 ― 가을의 노래 | 흰달 | 작시법 | 도시에 나리는 비
구르몽의 시 ― 흰 눈 | 낙엽
싸멘의 시 ― 반주 | 가을
뽀드레르의 시 ― 죽음의 즐거움 | 구적
이예츠 시 ― 낙엽 | 꿈
모레쓰의 시 ― 가을은 또다시 와서
시몬즈의 시 ― 사랑과 잠
쁘렉크의 시 ― 장미꽃은 병들었어라
왓손의 시 새
《기탄자리》에서 · 112

《신월》에서 · 121
해안 | 어린 아기의 버릇 | 천문학자 | 종이 배 | 꽃 학교 | 선물 | 나의 노래

《원정》에서 · 130
2. 아아 시인이예 | 6. 길든 새는 | 37. 그대는 내 목에 | 142. 오오! 광객이여 | 62. 꿈의 어스렷한 길로 | 85. 독자여 이로부터

《잃어진 진주》에서 · 139
아편쟁이 | 자비 | 밤과 바람 | 해변 | 가을 | 밤에게 | 회색의 늑대

【한시 번역】

《망우초》에서 · 147
춘효 | 자견 | 절구 | 잡시 | 봉설숙부용산 | 조문산중하소유부시이답 | 자야오가 | 매화 | 등관작루 | 회향우서 | 과정산인소거 | 야박진회 | 석별 | 촌야 | 대동강 | 위성곡 | 춘야

《동심초》에서 · 164
동심초 | 꽃은 피고 지고 | 봄밤 | 집을 팔고 | 지는 봄 | 비 | 촛불 | 나비 | 전원풍경

《꽃다발》에서 · 170
송별 | 시와 술 | 꿈 | 반달 | 고향을 돌아보며 | 가을은 깊어가고 | 봄바람 | 아기를 잃고

시집 서문 ― 179
《해파리의 노래》서문(1)
《해파리의 노래》서문(2)
《민요시집》서문
《오뇌의 무도》서문
《기탄자리》서문
《원정》서문
《신월》서문
《잃어진 진주》서문
《망우초 서문》
《동심초》서문
《꽃다발》서문

사론 및 기타 산문 ― 229
시형의 운율과 호흡
현시단
역시론
김소월의 추억

해설 | 시인의 발자취와 공적, 김억 론 ― 270

작가 연보 ― 299
작품 연보 ― 302
연구 논문 ― 310

저자 소개 2

金億, 희권熙權, 안서岸曙

1896년 본관 경주, 음력 10월 30일 평안북도 정주군 관주면 관섭리 1798번지에서 아버지 김기범金基範과 어머니 김준金俊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서는 이곳에서 10대의 중반까지 살다가 오산학교에 진학하면서 거주지를 옮겼다고 전한다. 본명은 희권熙權인데 후에 ‘억億’으로 개명, 아호는 안서岸曙. 1910년대 후반 낭만주의 성향의 [폐허]와 [창조]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창조(創造)], [폐허(廢墟)], [영대(靈臺)], [개벽(開闢)], [조선문단(朝鮮文壇)],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시·역시(譯詩)·평론·수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연
1896년 본관 경주, 음력 10월 30일 평안북도 정주군 관주면 관섭리 1798번지에서 아버지 김기범金基範과 어머니 김준金俊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서는 이곳에서 10대의 중반까지 살다가 오산학교에 진학하면서 거주지를 옮겼다고 전한다. 본명은 희권熙權인데 후에 ‘억億’으로 개명, 아호는 안서岸曙.

1910년대 후반 낭만주의 성향의 [폐허]와 [창조]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창조(創造)], [폐허(廢墟)], [영대(靈臺)], [개벽(開闢)], [조선문단(朝鮮文壇)],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시·역시(譯詩)·평론·수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연구에서도 선편(先鞭)을 잡고 그 보급을 위하여 강습소를 열기도 하였으며, 『개벽』에 「에스페란토 자습실」을 연재하여, 뒤에 간행된 『에스페란토 단기강좌(Esperanto Kurso Ramida)』라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가 되었다.

또한, 김소월(金素月)의 스승으로서 김소월을 민요시인으로 길러냈고, 자신도 뒤에 민요조의 시를 주로 많이 썼다. 김억은 1924년에는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 당시까지 낯설었던 해외 문학 이론을 처음 소개함과 동시에 개인의 정감을 자유롭게 노래하는 한국 자유시의 지평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된다. 서구의 상징시를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여 1920년대 초반 상징시풍이 문단에 정착하는 계기를 열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한시의 번역이나 민요 발굴 등 전통적인 정서에 대한 관심으로 방향을 돌렸다.

1930년대 말에는 김포몽(金浦夢)이라는 예명으로 대중가요 작사 활동도 벌였다. 작사가가 된 것은 생활고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생소한 예명을 사용한 이유는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서 문단에서의 지위가 남달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작사한 노래 가운데 선우일선의 「꽃을 잡고」는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의 「아아 야마모토 원수」(1943) 등 친일 시를 발표했다. 친일 저작물 수는 시 4편을 포함하여 총 6편이 밝혀져 있다. 국민총력조선연맹과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고, 북한으로 간 유력 인사들이 1956년 평양에서 결성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을 지낸 뒤로 행적이 불분명하다. 1958년 평북 철산군의 협동농장으로 강제 이주되었다는 설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월북 작가들과 함께 언급이 금기시되다가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다시 조명을 받았다.

저서로는 『기탄자리』, 『해파리의 노래』, 『오뇌의 무도』(개정판), 『신월』, 『잃어진 진주』, 『원정』, 『금모래』, 『봄의 노래』, 『안서시집』, 『사상만필』, 『모범서한문』, 『망우초』, 『소월시초』, 『안서시초』, 『동심초』, 『꽃다발』, 『지나명시선 백낙천집』, 『애국백인일수』, (일본단가 번역), 『야광주』, 『먼동이 틀 제』, 『금잔디』, 『민요시집』, 『옥잠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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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경북 안동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한국현대문학을 전공하였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교수, 한국비교문학회, 한국현대문학회, 한국시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문학번역원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한국근대시사』(상·하), 『한국현대시사』(상·하), 『해방기 시문학사』, 『현대시원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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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10쪽 | 153*225*30mm
ISBN13
9788963654157

출판사 리뷰

한국 초기 시단을 이끈 대표적인 시인
《김억 작품집》


이 책은 한국 문학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근대시를 발표한 시인이자 최초의 근대적인 개인 시집을 출판한 김억의 시집 《민요시집》 《안서시집》 《해파리의 노래》 등에 실린 창작시와 서구시와 한시 등의 번역시, 시집 서문 그리고 시론 및 기타 산문을 한 권으로 엮었다. 김억이 가장 크게 비중은 둔 것은 창작시였다. 그의 창작시에 드러나는 양상은 한국 시의 질적 향상과 연계시켜 생각해볼 수 있다.
김억은 1918년 이후 활발하게 창작시를 발표하고 또한 그 토대가 되는 시론을 발표하며 초창기 한국 근대시의 한 방향 설정을 가능케 했으며, 1921년 《오뇌의 무도》의 출간 이후 자작시와 번역시 등 모두 20여 권의 시화집을 출간했다. 또한 오산五山과 숭덕崇德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은 것을 필두로 《폐허》 《창조》 《영대》 《조선문단》 《개벽》 《동광》 등에 관여하여 문단 저널리즘 정착에 기여했으며, 직간접적으로 시 창작을 지도하여 다수의 문인들을 길러냈다.
그는 개성적인 리듬과 자유율, 시어의 아어체(雅語體) 문투를 통해 사적인 정감을 노래함으로써 한국 자유시의 지평을 연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번역에 있어서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해외시의 수입과 수용에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며, 시론을 중심으로 한 해외문학이론의 수입과 소개에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신념 아래 어감 등 우리말 특징에 맞게 번역함으로써 번역을 통한 한국어의 가능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한편, 김소월과 나도향 등의 작가를 한국 문단에 소개한 공로자로서 그가 한국 초기 시단과 근대 한국시에 끼친 공적은 실체로 남아 있다.
김억에 대한 평가는 공적과 한계로 나뉘지만, 이 책 《김억 작품집》을 통해서 한국 초기 시단을 이끈 대표적 시인 김억의 창작시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과 문단 저널리즘 정착에 기여한 그의 시론 및 기타 산문 또한 두루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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