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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의 글 / 스스로 충족되는 삶의 한가운데로 | 유영일
■ 저자 머리말 / 지금 여기에서, 걸림 없는 기쁨의 삶을 제1부 옳고 그름만 넘어서면 자연히 환해지리라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 생각이 경계다 | 희망 | 완전할 필요는 없다 | 상실(喪失)의 은혜 | 옳음이라는 병 | ‘모든’과 ‘어떤’ | 자기 부정 | 나누어 표현되는 세상 | 바르게 사는 길 | 염치없는 사람들 | 이름에 갇혀 사는 삶 | 자기 사랑 | 진실을 본다는 것 |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것 | 권위 | 받아들임 | 하지 말고 보라 |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 | 발자국 | 그럴 뿐 | 텅 빔 | 말(언어 유희) | 무상(無常) | 뻐꾸기 둥지 | 놓아 보내기 | 바보야, 돈이 아니야 | 인과(因果)와 인연(因緣) | 평화 제2부 마음의 초기화 생각에서 깨어나기 | 이 세상은 당신이 그려 놓은 그림 | 마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 전체와 부분이 하나로 녹아 있다 | 영(0)으로 살아가기 | 없는 마음 | 나는 없다 | 이해(理解)와 증지(證智) | 연기(緣起) | 잘 아는 “있음” | 놓아버림 | 속박 | 내 생각을 믿지 마라 | 자기를 놓아버려라 | 가난한 마음 | 이름 너머의 세계 | 공(空) | 지식 | 숙명 | 마음의 초기화 | 수행(修行) | 중도(中道) | 쓰임새 | 일 없는 사람 | 존재와 생각 | 신과의 관계 제3부 지금 이대로 아름다운 세상 깨달음 |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 | 지혜와 자비 | 사랑 | 합일의식 | 불이(不二) | 에고 사랑하기 | 세상 모두가 당신의 이야기 | 몸뚱아리 | 온누리에 사랑이 펼쳐져 있다 | 자유와 평등 | 홍익인간 | 아름다운 세상 | 자유 | 본질과 현상 | 동심(童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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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로 하여금 행복을 맛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들은 모두가 우리 스스로 덮어쓴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라는 대로 그들이 움직여주기를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어긋났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진실로 나 아닌 밖의 것은 나의 투사일 뿐, 내 안의 것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세상의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다. 관념의 세계를 벗어나 전 우주를 보면 나 아닌 것이 없다. 우리는 그렇게 거대한 무엇이다. 우리의 의식은 모든 것을 품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의식 속에 모든 것이 녹아 있다. 시공을 초월한 의식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다. 허공이 있기에 그 많은 별들이 있다. ‘없음’은 모든 것을 품는다. 아무것도 없으면 일체를 품는다. 컵 둘레의 ‘있음’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안의 ‘없음’이 기능하기 때문이요, 방의 사방 벽이 벽으로 기능하는 것은 그 안의 빈 곳이 있기 때문이다. 입속이 꽉 차 있다면 먹을 수 없듯이, 생각으로 꽉 차 있는 나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죽은 삶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래 마음은 언제든지 고요하고 사랑으로 꽉 들어차 있다. 그런데 마음 쓰기를 할 때는 이상하게도 모두가 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지 않고 밖에서 찾아 쓰려고 하기 때문에 괴롭고 허망하게 된다. 본래 자기 마음으로 돌아가면 애착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본래 자기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내 안에 차 있는, ‘밖을 보는 생각’을 다 비워낸 0이 되어야 가능해진다. ‘가장자리가 없는 나’를 어디에 가둘 수 있겠는가? 나의 무한함을 보면 세상은 동전보다 작아서 구할 것도 없고 원할 것도 없어서 그리도 자유로운 것이다. 얽매임이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해탈이다. ‘고요히 있음’이 전부다. 깨달음은 새로 얻어야 할 그 무엇도 아니며, 진아가 없는 순간도, 없는 곳도 없다. 자기를 에고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진아를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대가 이미 진아이다. ‘고요히 있음’이란 어떤 상태인가? 그것은 생각 없음이다. 무심처(無心處)가 진아이다. ‘고요히 있음’이 곧 진아이며 신이다. 생각을 떠나는 순간 신이 보이고, 거기에 진아가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내 것이라는 마음이 전혀 없는 자이다. 가진 것에 구속당하거나 구애받지 않고,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인연 따라 살펴 쓰는 자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전혀 모르는 계산법이 있는데, 덧셈과 뺄셈이 바로 그것이다. 온통 하나인 곳에서는 더하고 뺄 일이 없다. 공(空), 무(無), 다 비워놓은 전체, 거기에 충만한 사랑! 모든 대상이 내가 지어낸 허상임을 깨달으면 쫓아갈 이유가 사라지게 되어, 마음은 일이 없이 쉬게 된다. 이것이 마음의 초기화다.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이 우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다. 초속 19.6km의 속도로 내달리는 태양을 따라 초속 30km의 속도로 따라가면서 공전하고 자전하는 지구의 볼텍스(vortex) 운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 우주의 은하 운동과 함께한다. 이러한 신비가 전 우주에서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가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과 함께하며 쉬는 것이다. 할 일이 하나도 없다. 수많은 별들이 우주의 법칙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보라.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있는가? 불가사의하게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이 우주가 바로 ‘나’이다. 할 일은 이것을 보는 일, 딱 하나다. 다 갖춰져 있기에 다른 일은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일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은, 내가 없을 때이다. 나만 없으면 모든 일이 그러할 뿐이다. 할 일이 없다. 태양이 있기에 지구가 있고, 지구가 있기에 우리가 있다. 홀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본다면, 모래 한 알에서, 풀, 벌레 하나까지 모두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들이다. 똥이 썩어 거름이 되고 그것이 나락이 되어서 우리의 식탁에 올라와 우리가 되는 것을 보라. 모두가 하나인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테두리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참을 보면 모든 것이 축복이다. 삶 자체가 축복이다. 강물은 흐르고 구름은 떠간다. 모두가 하나라서 생각할 것이 없음을 안다면, 걸림이 없어, 있는 그대로 축복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있게 하는 허공처럼, 허공마저 품은 나는 분별함이 없는, 있는 그대로 온 세상이다. 태어남이 없으니 죽음도 없고, 그렇게 완벽할 수 없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있는 그대로’ 보면, ‘이름이 붙기 전’의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다. 그것을 보기 위해 노력할 일이 전혀 없다. 삶은 그렇게 평온하게 흘러간다. 생각의 굴레에 갇혀 사는 것이 스스로 힘들게 하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은 없다. 모든 것이 충분하기에 이처럼 아름다운 세상에서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구름은 하늘을 수놓으며 흘러가고, 물은 흐르고 흘러 바다로 스며든다. 동심이란, 세상을 알기 전 모름에 있는, 때 묻지 않은 맑은 마음이다. 아는 것이 없기에 분별할 수 없고, 사랑과 미움 너머 이름이 없는 세계다. 분별함이 없기에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왜곡됨이 없다. 분별함이 없이 통으로 하나인 세계에 있다. 이 세계가 우리의 본향이며 실체다. 세상을 살아가다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가야 할 우리의 본성, 동심의 세계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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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거짓 에고를 집어던지고
‘나의 옳고 그름’만 넘어서면 지금 여기에서 펼쳐지는 삶의 기쁨과 경이로움!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당신 안의 어느 부분이 “네!”라고 대답할까? “네!”라고 대답하는 그 주인공은 분명 당신 몸의 일부가 아니다. 팔다리가 끊어진 상태에도 “네!”라고 대답할 것이 분명하니, “네!”라고 대답하는 ‘그것’은 심장 속에 있는 것인가, 두뇌 속에 있는 것인가? 몸의 어느 부분이 얼마만큼 없어져야, “네!”라는 대답을 할 수 없게 될까? 몸이 다 사라져도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무엇인가는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닐까? 고금을 막론하고 무릇 깨달은 자들은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그 주체는 육체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을 한결같이 가리켜 왔다.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노을을 태양과 분리시킬 수 없듯이, 우리 모두는 이름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나’라는 존재를 바깥의 대기와 어떻게 경계지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 ‘나’라는 경계선을 그어놓고서 내 살림살이를 불리려고 하고, 지키려고 하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고통을 자초할 뿐, ‘있는 그대로 보면’ ‘나’라는 경계선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임을 실감하게 된다. 뿐인가? 이 우주에는 사실 그 어떤 경계도 없다. ‘나’라는 경계선을 지음으로써 스스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것이 지구인 대부분의 현실이다. 자기 존재를 이름 안에 가두지 않고, 그럼으로써 온갖 개념과 견해의 틀에서 ‘자기’를 해방시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어떠한 분별도 하지 않음으로써 경계선이 지워지는 순간, 그동안 내가 ‘나라고 여기던 나’는 모든 것을 품에 안는 무한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이름 너머의 세계』는, 세상이라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생각의 투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은 자가 ‘창살 없는 감옥’에서 벗어나서 누리는 기쁨과 자유의 삶을 향한 초대장이다. ‘진정한 탄생은 죽기 전에 죽는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거짓된 내가 죽음으로써 펼쳐지는 ‘한 점 걸림 없는’ 자유를 가리켜 보인다. ‘우주 전체인 하나님이 전혀 모르는 계산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덧셈과 뺄셈이다.’ 깨달은 자도 마찬가지다. 온통 하나인 세계에서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뺀단 말인가? 내 것이라는 분별심이 없어서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진 자’는 하나님처럼 더하고 뺄 것이 없어지지만, 그는 세상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부자가 된다. ‘다 비워진 전체’가 되고, 그 전체에는 ‘충만한 사랑’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테두리 안에 갇혀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참을 보면 모든 것이 축복이다. 삶 자체가 축복이다. 강물은 흐르고 구름은 떠간다. 모두가 하나라서 생각할 것이 없음을 안다면, 걸림이 없어, 있는 그대로 축복이다.”(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