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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EOUL (낫서울)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니다 양장
케이채
호빵(HOBBANG) 202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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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채에 대하여

저자 소개 1

K. Chae,채경완

사진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사진가. 뉴욕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세상을 방랑하는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생애 100개국을 사진으로 담는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매년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2023년 기준 92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지은 책으로는 《사진가의 길》 《케이채의 모험》이 있으며, 찍은 책으로는 《NOT SEOUL》 《ONE TWO THREE FOUR》 《아프리카 더 컬러풀》 등이 있다. 《포 어스 For Earth For Us》는 특유의 화려한 색감으로 생생한 삶과 풍경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케이채만의 사진 세계가 잘 표현된 사진집이다.
사진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사진가. 뉴욕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세상을 방랑하는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생애 100개국을 사진으로 담는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매년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2023년 기준 92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지은 책으로는 《사진가의 길》 《케이채의 모험》이 있으며, 찍은 책으로는 《NOT SEOUL》 《ONE TWO THREE FOUR》 《아프리카 더 컬러풀》 등이 있다.

《포 어스 For Earth For Us》는 특유의 화려한 색감으로 생생한 삶과 풍경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케이채만의 사진 세계가 잘 표현된 사진집이다. 2023년 여행한 그리스와 페로 제도,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와 코카서스 3국(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의 고유한 색채가 담긴 사진들을 대거 수록해 미학적 완성도는 물론 소장 가치 또한 높인 것이 특징이다. 2024년 마지막 8개국까지 추가로 다녀와 전 생애를 건 100개국 여행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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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0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887g | 270*378*27mm
ISBN13
9791187431244

출판사 리뷰

궁극의 컬러 사진가 케이채가 마주한 서울

케이채는 한국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종종 카메라를 들었다. 하지만 세계를 방랑할 때처럼, 전투적으로 하진 않았다. 매일 같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이를 악물고, 뒤꿈치를 살짝 들고 있는 그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걷고 또 걷지는 않았다. 그것이 사진가로서의 상태였다. 한국은 그의 집이었기에.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 이곳에서의 시간을 오프시즌이라고 받아들였다. 잠시 카메라를 놓고 책을 읽었다. 영화를 보았다. 테니스를 치고 또 새로운 무언가를 배웠다. 그렇지만 2020년부터 서울을 자신의 피사체로서 설정하기로 마음먹었다. 2년간 이어진 이 작업의 시작이었다.

사진가 케이채는 채경완이라는 이름으로 197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7살 때 서울로 이사해 두 번을 더 이사했다. 16살이었던 1994년, 그는 부모님을 따라 온두라스로 떠났다. 한국인의 첫 해외여행 장소로서는 무척 특이했다. 그는 온두라스인들로 가득 찬 학교에서 유일한 외국인, 그들이 만난 첫 동양인이었다. 1년 반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며 그는 외국 문명을 처음 접했고, 훗날 큰 도움이 된 스페인어를 배우기도 했다.

1996년에 그와 가족들은 중미를 떠나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뉴욕에서 대학을 나온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공부보다는 독특한 패션 스타일과 댄스 파티를 장악했던 춤으로 더 유명했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당시 졸업 앨범에 남긴 메시지는 ‘MTV에 나오겠다’는 것이었다) 1998년에 롱아일랜드대학교 브루클린 캠퍼스에 입학한다. 그때만 해도 흑인들이 사는 위험한 동네라는 이미지였던 브루클린에 자리한 이 학교는 명문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위치 덕분인지 학생 대부분이 흑인들이었는데, 힙합 음악을 좋아하던 그에게는 의도하지 않게 완벽한 환경을 제공해준 셈이다.

대학에 큰 생각이 없었던 그는 부모님의 성화에 대학을 가기는 했지만 전공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지만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림을 좋아해 처음에는 미술 전공을 시도했지만 지금도 그렇듯 그리는 일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 금방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첫 학기에 들었던 많은 미술 수업 중에 흑백사진 수업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사진을 전공하게 된다.

외국인이자 사진 전공자로서 뉴욕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광고대행사에 취직하게 된다. 당시에는 가장 큰 규모의 독립 대행사였던 곳이다. 그는 광고PD로 일했는데 그 일에 꿈이 있거나 잘 맞아서가 아니었다. 2년간 유수의 텔레비전 광고 제작에 참여하며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나 재미와는 별개로 한국의 직장 문화는 그와 잘 맞지가 않았다. 점점 커져가는 사진가로서의 꿈을 추구하기 위해 결국 2009년, 광고일을 그만두었다. 인생에 있어 그는 늘 그랬다. 득실을 따지는 게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다.

사진이라고 해도 사실 다양하고 많은 장르의 사진이 있다. 그는 소위 컨템포러리라고 불리는, 현대 사진과 그 기치를 내건 젊은 작가들에게는 어떠한 영감도 받지 못했다. 그를 감동시킨 것은 엘리엇 어윗, 윌리 로니스, 사울 라이터와 같은 인물들이었다. 2009년부터 시작된 그의 방랑은 2019년까지 이어져, 12년간 85개국을 사진으로 담는다. 그 사이 그는 몇 권의 책을 내고 여러 번의 전시를 가지며 자신의 사진을 선보여왔고, 한국에서 어느 정도 알려진 사진가가 되었다.

2020년 세계인의 삶을 바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케이채 또한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서울에서만 머물러야 했던 2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자 시작한 작업이 낫서울(NOT SEOUL)로 완성되었다. 이 작업은 케이채의 사진이 가진 핵심은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가 세상을 방랑한 것은 단지 보지 못한 것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만의 눈으로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사진은 순간을 멈추는 것이지만 케이채의 사진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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