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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 (손으로) 쓴다, 고로 (존재)한다 2 필적은 얼굴 3 종이, 펜, 생각을 고르는 일 4 쓰는 시간은 생각하는 시간 5 어릴 적부터 쓸 것 6 두 개의 손과 열 개의 손가락 7 기록한다,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8 벽에 쓰기 9 손글씨에 둘러싸여서 10 그림이 글씨가 되다 11 필기도구 12 항해 시 주의 사항 나가며 주 참고문헌 감사의 말 |
Francesca Biase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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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형 cartaceo(종이)는 쥐라기나 백악기 같은 지질시대까지는 아니지만,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처럼 인류 역사의 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분명 그렇게 되는 사이, 나 같은 사람은 (…) ‘종이 시대를 산 사람’이라 불릴 텐데, 종이 시대란 적어도 몇 가지 점에서는 행복한 시대였다고 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신학기가 되면 새로운 공책과 교과서에 자기 이름을 썼고, 그 종이의 향기를 맡았다. 어른들은 매일 아침 의식처럼 커피를 마시며 종이 신문을 읽었다. 이건 하나의 생활양식이었다’라고 말이다. 내 마음은 종이에 묻어도 좋다.
---「들어가며」중에서 최근의 신경과학 연구는 어른이든 아이든 뇌가 자극에 계속 노출되면, 주의력이 떨어져서 집중을 지속할 수 없게 된다고 경고한다. 반면 책을 읽을 때는 시간의 흐름이 느려져서 온전히 내 것이 되며 일상의 번잡함에서 멀어져 자기 자신인 채로 있을 수 있다. 글씨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실제 손으로 글씨를 써보면, 이 일이 삶에 구체성과 질서를 부여하는 사소한 행위라는 걸 알 수 있다. ---「2 필적은 얼굴」중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글씨 쓰기를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들은 펜 쥐는 법과 바른 획순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고안한 방식으로) 글씨를 쓰게 된다. 쓰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이 글을 빨리 쓰려고 하면 펜을 부드럽게 놀리지 못해 글자와 글자를 억지로 잇기 때문에 맵시 있는 글씨를 쓸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글씨 쓰는 게 싫어지고, 귀찮아지고, 나서서 글씨를 쓰지 않게 된다. 간혹 내가 캘리그래퍼라는 걸 알면 “그러시군요! 우리 애가 글씨를 너무 못 써서!”라고 말하는 부모와 마주칠 때가 있다. 이런 아이들을 실제로 만나서 글씨를 써보라고 하면, 펜 쥐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5 어릴 적부터 쓸 것」중에서 캘리그래피는 글씨를 멋 부려 쓰는 방법이 아니다. 캘리그래피를 배운다는 건, 학교에서 배운 글씨를 잊고 글씨를 쓰는 일 이자 지금까지의 글씨 쓰던 방식을 넘어서 새로운 서법을 마련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이미 익힌 서법과 몇 년이나 계속 써오며 익숙해진 손의 움직임과, 글씨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정신적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캘리그래피를 한다는 것은 속도를 떨어뜨리고 관찰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10 그림이 글씨가 되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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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대표 캘리그래퍼의 ‘손글씨 통찰’
이 책의 저자 프란체스카 비아세톤은 이탈리아 캘리그래피협회 회장이자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테마 서체 디자인,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 제목자 디자인을 담당한 30년 경력의 캘리그래퍼다. 또 알파벳을 활용한 그림책을 집필해서 스트레가상,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긴 세월 실천해온 ‘손글씨라는 몸의 통찰’을 고찰한 에세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12장의 구성 중, 1장부터 9장까지는 손글씨를 둘러싼 현 세태를 바라보며 손글씨의 의의를 언급한다. 저자에 따르면 손글씨는 동굴 벽화와 파피루스에서 시작해 오늘날에는 벽의 낙서부터 우리 몸(문신)에까지, 세상 어디에나 있다. 반면 손글씨는 터치스크린과 문자 메시지의 확산으로 위협받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학교에서는 손글씨 교육을 그만뒀고 그 결과 “글씨를 써보라고 하면, 펜 쥐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손글씨를 쓰는 일은,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행위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행위”이므로 여전히 손글씨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책의 10장~12장에서는 캘리그래피(손글씨)를 하고 있거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팁과 그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 분야 전문가로서 연필, 만년필, 붓 등 각 필기도구별 특성을 알려주고,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알파벳 서체를 살펴보며 캘리그래피의 개념과 그 배경에 흐르는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 인터넷상에 떠도는 수많은 ‘손글씨 강좌’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 분야를 알아가고자 하는 초심자들이 헤매지 않고 캘리그래피를 익힐 수 있도록 지침을 제공한다. (참고로 이 책의 표지에는 저자가 이 책을 위해 특별히 제공한 ‘자필 서명’이 삽입되어 있다. 저자는 프로 캘리그래퍼로서,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손글씨 이미지를 표지에 넣는 대신, 자신의 직접 쓴 글씨를 넣고자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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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몸으로 쓰는 손글씨는 어떤 의미일까? 낭만적인 복고에 불과할까?
캘리그래퍼인 저자는 말한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내 생각을, 내 손과 내 몸을 써서, 내 눈에 보이게 하는 일이라고. 글씨 쓰기란 그렇게 통합된 감각으로 사고와 행동을 훈련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자존감의 형태를 가다듬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합류해가는 일이다. 이탈리아에서건 한국에서건 마찬가지다. 이 책은 움직임의 원리를 바라보는 엄중한 관찰, 창작의 진실한 기쁨,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을 넘어, 능숙한 숙련자의 정직한 경험으로만 사유할 수 있는 몸의 통찰들이 담겨 있어 많은 영감을 준다.” - 유지원 (글문화연구소 소장, 『글자 풍경』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