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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천년을 살리라 1
안중근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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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청계동천
첫 출진
취야 싸움
손님
기다리는 사람, 떠나는 사람
아들의 한철
천주와 양대인
청계 본당
복사 안 다묵
저들을 지켜 주리라
망국 전야
홀로 헤쳐 가는 길

저자 소개 1

Lee Mun-yol,李文烈,이열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들소」, 「황제를 위하여」, 「그해 겨울」, 「달팽이의 외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현란한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대표작이다. 한국문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문학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가장 많은 독자층을 가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들소」, 「황제를 위하여」, 「그해 겨울」, 「달팽이의 외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현란한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대표작이다.

한국문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문학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가장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 대표 작가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1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미국, 프랑스 등 전 세계 20여 개국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젊은날의 초상』, 『영웅시대』, 『시인』, 『오디세이아 서울』, 『선택』, 『호모 엑세쿠탄스』 등 다수가 있고, 단편소설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 6권), 산문집 『사색』, 『시대와의 불화』, 『신들메를 고쳐매며』, 대하소설 『변경』(전12권), 『대륙의 한』(전5권)이 있으며, 평역소설로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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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428쪽 | 634g | 140*210*25mm
ISBN13
9788925578248

책 속으로

그 젊은이의 이름은 중근이고 성은 순흥(順興)을 본관으로 하는 안(安)씨였다. 이름이 중근인 것은 젖먹이 때부터 주변의 자극에 너무 예민하고 반응이 빠른 그의 성격을 가볍다고 여긴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이 집안의 항렬자인 근(根)에다 무거울 중(重) 자를 얹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안인수(安仁壽)는 그의 몸에 북두칠성을 닮은 일곱 개의 점이 있다 하여 응칠(應七)이란 이름으로 그 상서로움을 기렸고, 아버지 안태훈은 따로 아들에게 자임(子任)이란 아명(兒名)을 지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어릴 적에 가장 많이 불린 이름은 응칠이었고, 관례와 혼례를 치른 뒤에는 관명인 중근이 더 널리 쓰이게 되었다.
--- p.17

하지만 중근은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아버지의 내면에서 피 흘리고 있는 의식들을 느낄 수 있었다. 무력감으로 상처받은 자부심이 그랬고, 낡은 구조와 급변하는 시대에 끼어 있는 가문과 자신을 지켜 내야 하는 신흥 호족으로서의 번민이 그랬다. 취하지 않은 밤은 그것들로 하얗게 지새기 마련인 모색과 궁구(窮究) 같은 것도 분명 피 흘리는 의식의 일부였다.
--- p.161

그 무렵은 조선의 치안 상태가 좋지 않고, 호랑이 같은 맹수가 흔해 선교사들은 대개 총기를 지니고 다녔다. 빌렘 신부도 그 권총을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오지를 여행할 때나 해가 지면 몸에 지니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던 듯했다. 빌렘이 탄창을 꺼내 장전 상태를 확인한 뒤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갑자기 교당 입구가 시끌벅적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끌고 오는 모양인데, 끌려오는 사람이 구원을 청하듯 악을 쓰며 대들고 있었다.
--- p.242

청계동과 안태훈 일가가 천주교의 열기로 달아올라 있는 동안 조선왕조도 변화의 파고 위에 높이 올라앉아 있었다. 그해 봄 러시아 공관에서 경운궁으로 돌아온 조선의 대군주는 그 여름의 준비 끝에 대한제국을 탄생시켰다. 원구단(圓丘壇)에서 화려한 즉위식을 올리고 스스로 황제라 일컫고 연호를 광무(光武)로 쓰니 곧 광무 황제요, 대한제국이다.
--- p.273~274

중근이 빌렘 신부의 복사로서 황해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전교에 열중한 동안도 세상은 숨 가쁜 변화를 거듭하였다. 그중에도 그 무렵의 조선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든 것은 독립협회의 활동이었는데, 창립 2주년이 지난 그때는 대한제국의 황제조차도 함부로 억누를 수 없을 만큼 큰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해 10월에는 독립협회의 항의로 법부대신 신기선이 해임되었고, 뒤이어 그 요구에 따라 내각이 개편되었으며, 다시 황실의 주요 재원(財源)인 무명잡세(無名雜稅)를 폐지함과 아울러 내정 개혁까지 약속해야 했다.
--- p.301

그렇게 몇 달을 보내는 사이 제국주의 일본의 정체는 더욱 뚜렷해지고, 거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조선 민중의 두 갈래 움직임도 선연하게 잡혀 왔다. 얼마 전 협동회(協同會)로 이름을 바꾸고 해체되어 사라진 보안회(保安會, 輔安會)의 애국계몽 활동과 홍천 등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무장투쟁이 그러했다. 거기서 중근은 자신이 그때껏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 p.367

이토 히로부미의 한문식 표기 이등박문(伊藤博文) 넉 자가 중근의 머릿속에 특별한 의미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런 을사늑약 체결 과정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이등박문은 그 전해에도 메이지 천황의 특사로 조선에 온 적이 있으나, 그때는 감사 사절로 온 데다 중근이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라 별반 주의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근이 서울로 옮겨 앉아 유심히 시국을 살피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근이 읽고 있던 신문들도 조약 체결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하여 이등박문의 위세와 역할을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그해 말 통감부가 설치되고, 이등박문이 초대 통감으로 오게 됨으로써 그 이름은 국권 침탈의 원흉(元兇)으로 더 깊이 각인되었다.

--- p.383~384

출판사 리뷰

“이것은 이 땅의 모든 청춘에게 들려주는,
죽음을 눈앞에 둔 진정한 영웅의 결연한 외침이다.”


이문열에게 안중근은 ‘순정한 사람’, ‘모색하는 인간’이다. 작가는 “안중근의 삶은 겨레에 대한 사랑에서 점차 자라난 인간애와 그 실천을 향한 외곬의 정진 말고는 잡티가 없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불의와 폭력에 대한 분노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서슴없이 자기를 내던지는 그의 삶은 어찌 보면 숨 가쁘게 진행되는 자기 봉헌(自己奉獻)의 의식 같기도 하다. 닳고 닳은 지성인들이 보기에는 어수룩하고 불확실한 세계 이해, 때로는 어설프기까지 한 열정의 과잉과 허세조차도 그에게서는 개결하고 뒤틀림 없는 특이한 개성으로 빛난다.”라고 말한다.

소설에는 안중근의 인간적 면모라 할 수 있는 로맨스나 사생활의 흔적이 거의 없다. 작가는 “인간적인 사생활, 행실에서 일탈 같은 걸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적인 부분을 되도록 많이 끌어내서 우리와 가까이 있는 영웅을 만들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라고 자료수집 과정에서의 심경을 토로했다. 다만 시대와 외세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해 좌절하기도 하고, 사업에서 실패를 겪기도 하며, 의병을 끌고나간 싸움터에서 대패하기도 하는 등 인간적 나약함을 딛고 일어서는 위대함을 보여준다.

안중근이 죽음과 맞바꿔 추구했던 ‘고귀한 가치’는 무엇일까? 안중근이 아우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을 통해 알 수 있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가 회복되도록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일러 다오. 모두가 각각 나랏일에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대한 독립의 공을 세우고 위대한 조국 건설의 대업을 이루도록 하라고.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나는 조국에 대한 내 의무를 다하였다. 이미 각오하고 한 일이므로 내 죽은 뒤의 일을 두고는 아무것도 더 남길 말이 없다.”
이문열은 “안중근에게 조국이란 하나의 지상(至上)이었고, 조국과 겨레에 대한 사랑은 실존의 한 형태였을 것이다. 안중근은 불멸의 가치에 자신을 던졌고, 그래서 그 가치와 더불어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불멸의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거장 이문열의 소설로 다시 탄생한 안중근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동의 장편소설


이문열은 우리 민족의 집단 기억에 입력된 안중근이라는 기록의 파일만큼 역사적 사실과 평가가 심하게 왜곡되거나 축소 은폐된 예도 드물다고 말한다. 어떤 것은 오랜 봉인으로 거의 인출 불능 상태에 이른 것들도 있다.
안중근에 대한 기존 이미지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객이나 테러리스트라는 인상, 다른 하나는 장군으로 군사적 영웅 같은 느낌, 마지막 하나는 신화적 영웅과 같은 초상이다.
일본인들의 왜곡 때문에 영향을 받았겠지만, 은연중에 우리 안에서도 안 의사를 협객 정도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무장투쟁에 대한 부분도 그런 경향 때문일 것이고, 애국계몽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 탓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언제나 안중근에 대한 이미지는 ‘하얼빈에서 저격하는 모습’으로 고착화되어 있는데 이 역시 하나의 봉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문열은 안중근의 생애와 동양 평화의 큰 뜻을 21세기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때로는 테러리스트로 폄하되기까지 하는 하얼빈 의거의 정당한 의미를 돌이켜보기 위해서 이 작품을 썼다. 완전히 실존 인물을 픽션화한 소설을 생각하고 집필했지만 시간적 근접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픽션 요소가 사라지고 평전에 가까운 형식이 된 것 같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불멸〉에서 〈죽어 천년을 살리라〉로 제목 변경

이문열의 안중근 평전은 지난 2010년 안중근 의사 100주기를 맞이하여 『불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작가는 ‘불멸’이라는 제목 외에 ‘이 사람을 보라’라는 타이틀도 고민했었다.
이번에 제목을 〈죽어 천년을 살리라〉로 바꾼 것은, 작가의 제목에 대한 고뇌와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신판 서문에서 이문열은 “10년 전 안중근 의사의 행전을 낸 뒤 지금까지 마음속에서 키워 온 불만은 〈불멸〉이란 얼핏 웅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가 공허하게 들리는 그 제목이었다. 〈불멸〉은 처음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몇십 페이지로 요약하고 제목을 찾는다면 얼른 떠올리기 좋은 제목이지만 또한 너무 단순하고 무미건조하다는 느낌과 함께 어떤 상투성과 무성의함의 예감까지 주어, 의사의 불꽃같은 삶과 죽음을 담기에는 마땅찮아 보였다”라고 말한다. 이문열은 고심 끝에 이번 알에이치코리아 판에서 제목을, 안중근 의사의 죽음을 추모한 중국인들의 칠언절구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된 구절 〈죽어 천년을 살리라(生無百歲死千年)〉로 대신했다. 기이하게도 신해혁명을 주도한 손문과 선통제를 퇴위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했던 반동 원세개가 똑같이 안중근 의사의 죽음을 애도한 칠언절구의 전구(轉句) 뒷부분에서 인용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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