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_이상윤2021년 1월 1일 ~ 12월 31일해설_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한 권의 책이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양경언해설_산재사고 전후의 장면들 속에서박희정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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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을 완전한 익명성의 존재로 만드는,무감각의 사회에 던지는 일침2022년 1월 27일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처음 시행되는 날이다. 우리는 이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산재사망 노동자의 유가족들, 동료들, 시민들이 풍찬노숙을 하며 법 제정을 위해 싸워왔음을 알고 있다. 그랬기에 그 법이 지닌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법의 시행을 기다려왔다. 다만 우리가 진정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법만으로는 ‘매일 대여섯 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퇴근하지 못하는 산재공화국’의 오명을 씻어주진 못할 것이란 사실이다.이제 우리는 그 법 너머의 풍경을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 자극적인 뉴스만을 좇는 세태는 어느새 노동자들의 죽음을 한낱 단신기사로만 접하게끔 만들었다. 이 같은 무감각의 사회는 노동자들을 완전한 익명성의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그 존재들에게 숫자가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부여해줘야 하지 않을까.그러니 이 글을 부고로 읽고자 한다면, 우리는 죽은 이가 누구인지 찾아 나서야 한다.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그가 마땅히 가져야 할 시민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가 얼마나 죽기에 아까운 사람이었는가 한탄하고자 함이 아니다. (…) 죽은 이를 찾아 나서야 하는 이유는 깊이 슬퍼하기 위해서다. 애도란 깊은 슬픔에서 출발한다. 오롯이 슬퍼하기 위해 알아야 한다. 그가 왜 죽었는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그의 죽음으로 세계의 어디쯤이, 어떻게 부서졌는가. (197면)산재사고의 장면들 속으로 들어가 그 현장감을 직접 느끼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이 사고가 특정의 노동자가 겪은 ‘타인의 비극’이 아님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사고는 “어떤 이에게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단편적인 비극”(190면)이 아니다. 이 사회가 시민 각각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누구든 언제든 삶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고들은 바로 나 자신과 내 가족이 당장 내일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사고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선을 저 먼 곳이 아닌 나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이런 시각을 갖출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슬픔에 공감하면서도 절망보다는 희망의 편에 설 수 있고, 결국에는 ‘사회적 기억’을 완성할 수 있다.이 책을 이루는 건조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슬픔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이의 감성이 특별히 풍부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2146, 529’라는 숫자에 담긴 한국의 노동 현실과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경로에 그이가 들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슬퍼하면서도 우리는 ‘2146, 529’라는 숫자에 담긴 일들이 사회적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이 책에 보관하기로 한다. 숫자로 가려진 숱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 두기로 한다. 애도는 절망보다 희망과 나란히 있으려는 관성을 따른다. (19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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