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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얗고, 굴곡진, 어떤 덩어리.
눈을 떴을 때, 정체불명의 물체가 코앞에 놓여 있었다. 색깔이나 표면의 느낌으로 보아 지점토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어째서 이런 물체가 내 침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어젯밤에 술을 진탕 마셨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름이 끊기지 않고서야 이런 걸 기억 못 할 리는 없을 텐데. “뭐야, 이거….” --- p.5 “내가 네 조수가 될게!” 걸음을 멈춘 달이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담백하게 물었다. “왜?” 나는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말들을 되는 대로 뭉쳐서 내뱉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네가 명령어를 수행하는 걸 돕는 것이 내 명령어니까! 그러니까 내가 내 명령어를 수행하려면 너를 따라가야만 해! 그게 내 사명이라고 지금 정했거든?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그러니까 나도 같이 데려가줘!” 쟁반같이 둥근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달. 그 오묘한 표정에서 마치 은은한 광채가 비치는 것만 같았다. --- p.39 “나에게는 은혜를 갚고 싶어 하는 특성이 있어. 그러니까 네가 내 곁에 있어준다고 하면, 난 너와 함께 바다에 가는 명령어를 설정할 거야. 지금 아까워서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는 바다 속의 기억들, 전부 다 지워도 괜찮아. 나랑 다시 가서 채우면 되니까.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구든,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열수분출구든, 너의 메모리에서 그 데이터가 지워질 때마다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 그러니까, 계속 같이 있자.” --- p.106 『어서 와. 여기까지 오는 데에 정말 오래 걸렸네.』 갑자기 실내 스피커를 통해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경계하며 소리를 높여 외쳤다. “누구야! 숨어 있지 말고 어서 나와!” 그 순간 벽면의 모니터가 지지직대더니 어떤 화면이 하나 떠올랐다. 우주선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의자가 놓여 있는 영상이었다. 그러나 의자는 계속 빈 상태였고, 아무리 기다려봐도 다른 누군가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거야? 이게 뭔데?” 내가 짜증스럽게 외치자 예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게 바로 화성에 있는 인류의 현주소야.』 “화성…?” 그런가. 현재 인류는 지구가 아닌 화성에 있는 건가. --- p.150 |
현실화 직전의 공상, ‘인간과 기계 사이…’
그 모호함을 즐길 수 있는 소설 『나의 모든 의식은 나를 인간이라 정의하고 있는데 나의 피부, 나의 뼈, 나의 피, 모두 인간의 그것과는 전혀 달라. 그런데도 나는 왜 내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는 걸까? 망가진 메모리의 백업 데이터를 찾으면 알 수 있을까? 나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주인공(풀벌레)은 기억을 잃은 채 쓰레기장(안드로이드 세계 업사이클 센터)에서 눈을 뜨고, 곧이어 사이코패스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받다가 겨우 벗어난다. 독백을 통해 지극히 인간스러운 의식 흐름을 보여주던 주인공은, 쓰레기장에서 만난 구형 안드로이드(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해 알게 된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딱히 의지할 곳이 없던 주인공은 달의 비밀스러운 임무(파란장미 찾기)에 동참하게 된다. 함께 여행하며 안드로이드인 달에게 인간적 유대감을 전하고, 달 역시 (기계적 알고리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호응하는데… “그러니까 네가 내 곁에 있어준다고 하면, 난 너와 함께 바다에 가는 명령어를 설정할 거야. 지금 아까워서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는 바다 속의 기억들, 전부 다 지워도 괜찮아. 나랑 다시 가서 채우면 되니까.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구든,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열수분출구든, 너의 메모리에서 그 데이터가 지워질 때마다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중략...) “응 그렇게 할게. 그렇게 하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