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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대로 화내고 싶다
철학자들이 알려주는 화의 잠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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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참지 말고, 제대로 화내자.
서양 철학 거장들의 이론을 빌려 '화(怒)'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논한다. 화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와 잠재력을 이해하고, ‘제대로 화내는 법’을 배울 것을 권한다. 희노애락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화(怒)'만 유독 참아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제는 참지 말고, 제대로 화를 내보자.

책소개

목차

저자 서문 _ 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제1장. 현대인은 왜 화내지 않는가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화가 깃든다
왜 화만 억압하는가
분노를 억압하면 부자연스러워지는 이유
이웃어른이 아이를 혼내지 않는 시대
화를 내면 뭔가 잃어버린 기분이 드는 까닭은?
두려움 때문에 참는 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현대인이 화내지 못하게 된 이유
현실을 도피하는 잘못된 화
세 번 칭찬하고 두 번 꾸지람하라
유목민처럼 모험하면서 기존 질서에 맞서라
젊은이들은 왜 제대로 화내지 못하는가
화내는 것을 억제하는 종교
트집쟁이 니체 아저씨와 위대한 철학자 니체
‘화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정의의 치명적 오류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화는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분노는 철학이고 철학은 분노다

제2장. 화는 왜 행복을 가져오는가

4가지로 분류되는 화
피타고라스의 본심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제퍼슨의 화
데카르트와 세네카가 분석하는 2가지 유형의 화
개인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힘을 가진 화
화의 공적사용과 사적사용
바르게 화내면 오히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당신의 화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꿔라
화를 무기로 불합리함을 이긴다
화를 낸다고 반드시 공격적이 될 필요는 없다
아폴론형과 디오니소스형 화
금기에 맞설 때 긍정의 화가 솟아난다
화를 억제하지 말고 조절하라

제3장. 화는 삶의 원동력이자 무기다

가장 임팩트가 강한 의사소통 수단, 화
화의 목적 3가지
화는 드라이버나 컴퓨터와 같은 ‘도구’다
화의 에너지로 사람을 끌어당겨라
언성을 높여 호소하기 VS. 논리적으로 호소하기
화의 ‘불길’을 보이고,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펴라
문제를 쟁점화하라
정교한 소크라테스와 영리한 헤겔
사르트르와 푸코가 화내는 법
역사를 바꾼 조용한 데모들
동일한 메시지임에도 미디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이유
화를 위협이 아닌 설득의 도구로 사용하라
문제는 무력감이다
비폭력으로 맞서되 입은 닫지 마라
‘성실하게’ 화내라
화낼 때도 예의가 필요하다

제4장. 당당하게 화내라

코넬 웨스트, 목숨 걸고 화내다
제대로 화내려면 ‘고요한 용기’가 필요하다
반격을 당한 다음의 절묘한 한 수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라
‘아고라’로서의 인터넷 공간
‘사이버 폭포 효과’란?
부조리를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플라톤이 생각한 죽음의 의미
위르겐 하버마스의 담론 윤리
화내면 어떤 ‘마음의 투쟁’이 시작되는가
‘궁극의 마이너리티’가 되라
화는 사람을 고립시키지 않는다
고독과 분노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혁명은 ‘위선’에서 시작된다?

제5장. 제대로 화내는 법을 배워라

벤야민의 ‘폭력비판론’
폭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비폭력뿐
말은 어떻게 사람의 일생을 좌우할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갖게 되었나
하버마스의 3가지 의사소통 원칙
화를 잘 내기 위한 6가지 방법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화내야 하는가
위험을 방치하는 국가에 대한 분노 / 무책임한 사이비 학자에 대한 분노 / 표현의 자유를 앗아가는 규칙론자들에 대한 분노 / 소수파를 괴롭히는 증세론자에 대한 분노 / 본질을 살피지 않는 추진론자에 대한 분노 / 결단하지 못하는 정치가에 대한 분노 / 생각하지 않는 강경파에 대한 분노 / 인간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재계에 대한 분노 / 이기적인 국수주의자들에 대한 분노 / 쓸모없는 교육을 실시하는 국가에 대한 분노

맺음말_ 바르게 화내는 법 못지않게 ‘바르게 혼나는 법’도 중요하다
역자 후기_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저자 소개 2

오가와 히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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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oshi Ogawa,おがわ ひとし,小川 仁志

1970년 교토 출생. 철학자ㆍ 야마구치 대학 국제 종합과학부 교수. 교토 대학 법학부 졸업, 나고야시립대학 대학원 박사 후기 과정 수료. 박사(인간 문화) 이토추 상사의 영업사원, 프리터, 공무원(나고야 시청)으로 일한 이색적인 경력이 있다. 도쿠야마 공업 고등전문학교 준교수, 미국 프리스턴대학 객원 연구원 등을 거쳐 현직에 있다. 대학에서 과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교육을 연구 중이며, 곳곳에서 ‘철학 카페’를 개최하는 등 시민을 위한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TV를 시작으로 각종 미디어에서 철학을 보급하고 있다. NHK ㆍ E 텔레비전의 《세계의 철학자에게 하는 인
1970년 교토 출생. 철학자ㆍ 야마구치 대학 국제 종합과학부 교수. 교토 대학 법학부 졸업, 나고야시립대학 대학원 박사 후기 과정 수료. 박사(인간 문화)

이토추 상사의 영업사원, 프리터, 공무원(나고야 시청)으로 일한 이색적인 경력이 있다. 도쿠야마 공업 고등전문학교 준교수, 미국 프리스턴대학 객원 연구원 등을 거쳐 현직에 있다. 대학에서 과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교육을 연구 중이며, 곳곳에서 ‘철학 카페’를 개최하는 등 시민을 위한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TV를 시작으로 각종 미디어에서 철학을 보급하고 있다. NHK ㆍ E 텔레비전의 《세계의 철학자에게 하는 인생 상담》, 《로치와 어린양》에서는 지도와 자문역할을 했다. 비즈니스용 철학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전문 분야는 공공철학, 실천 중심의 철학.

다양한 저서가 있으며, 베스트셀러인 《일주일 사이에 갑자기 머리가 좋아지는 책》이나《도라에몽으로 철학하기》, 《망설이지 않고 좋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머리를 쓰는 방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0권 이상을 출판했다. 유튜브 〈오가와 히토시의 철학 채널〉 에서 소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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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컨텐츠 라이터로 근무하다가 번역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 현재는 바른번역에서 출판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당신의 성공은 수요일에 결정된다』, 『사교력』, 『심리학이 경제학을 만나다』, 『일하는 여자 38세』, 『일이 즐거워지는 3가지 이야기』, 『왜 유니클로만 팔리는가』, 『우화 테라피』, 『자기대화력』, 『유쾌한 카리스마』, 『공감 대화법』, 『아기피부 세안법』, 『365일 자전거 다이어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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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9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430g | 143*205*20mm
ISBN13
9788963220611

책 속으로

화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되므로 당장은 이득을 본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게 되면 결국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는 길도 막혀 버리고 만다.
화내지 않으면 타인에게 상처 줄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내지 않는다면 물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거나 불신의 벽을 깨고 서로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을 기회도 사라진다.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화내지 않는다고 모든 일이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결국 화를 참고 억눌러 화내지 않는 것보다 ‘바르게 화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 우리는 바르게 화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는 종종 도덕과 용기를 위한 무기가 된다.”라고 설파했다. 그가 주창한 ‘중용’ 사상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 말의 의미가 한층 선명하게 다가온다. ---「저자의 말_ 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오늘날 분노만큼 오해받는 감정도 없다. 대체 누가 화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었는가. 철학자 미키 기요시는 《인생론 노트》라는 저서에서 증오와 분노를 구별하여 이렇게 논했다.
“오늘날 분노의 윤리적 의미는 완전히 잊혔다. 분노는 무조건 막아야 할 감정이라고 다들 믿는 것 같다. 하지만 반드시 막아야 하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증오이지 분노가 아니다.”
분노와 증오를 혼동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분노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확실히 증오에는 ‘음’의 에너지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가능한 한 그 감정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키의 말대로 분노는 그와 전혀 다른, 소위 ‘양’의 에너지를 지닌 감정이다. 따라서 우선 분노에 대한 오해를 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화내는 법’이나 ‘화내지 않는 법’에 관한 책이 유행하는 이유는 분노가 지닌 두 가지 측면과 관련이 있다. 즉, 화는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흔한 현상인 한편 막지 않으면 안 되는 부끄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억제해야 한다니 큰일이다. 그러므로 ‘사용설명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속하는 화는 인간이 지닌 가장 자연스러운 성정(性情)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하는 행위는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어째서 화내는 행위만 차별하는가.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화가 깃든다」

분노를 조절하여 폭력이 아닌 논리적이고 냉철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억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운 행위다. 반대로 그럴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다만 그로 인해 근대 이후에는 잘못된 억압이 인간사회를 뒤엎게 된다. 즉, 분노를 조절한다는 의미가 분노의 표현 문제에서 존재 문제로 살짝 뒤바뀌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인간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다. 화내는 일 자체가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엄연한 감정의 일부를 말살하도록 강요받은 것이다. 대체 누가 이런 해석을 내리고 인간을 억압해 왔는가. 바로 권력, 혹은 사회의 소행이다.
권력자는 분노하는 인간보다 순종하는 인간을 원한다. 물론 자신의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교육을 비롯한 계몽 활동을 통해 분노를 거세하고 순종하는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를 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만 해도 그렇다. 권력에 맞서는 행위는 무엇이든 엄격히 금지된다. 학교에서는 바르게 화내는 법을 가르치는 일은 결코 없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분노를 가라앉히도록 설득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화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칠 뿐이다. ---「분노를 억압당한 인간이 부자연스러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어째서 이성을 잃는 행위와 화내는 행위가 동일시되는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거나 난동을 부리는 행위를 화내는 행위라고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내는 행위는 절대로 그렇게 불합리하지 않다.
여기서 이성을 잃어버리는 그 불합리한 행위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히려 화내지 못한다는 사실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잃은 사람은 자신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잃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폭발시킨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는 이미 인간의 행위라고는 할 수 없다. 먹이를 빼앗긴 후 미쳐 날뛰는 동물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만일 능숙하게 감정을 조절하여 논리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불필요하게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을 잃는 것은 화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다」

‘자연은 어디서 왔는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이 세상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철학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 모든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 답변할 수 있도록 서양사회에서 단련되어 왔다. 그리고 데카르트를 낳고 칸트를 낳고 헤겔을 낳고 니체를 낳았다. 물로 지금도 많은 철학자들이 분노를 공공연히 드러낸다. 이는 현실에 영합하거나 체념을 은폐하기 위해 ‘진리’를 맹신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행위로, 소위 지적인 방식으로 현실에 항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화는 말을 만들어 낸다. 화가 나는 상태를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는 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하듯이 화는 사람이 입을 열도록 유도한다. 이는 철학을 향유하는 데 불가결한 요소다.
논리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으로 생각을 입에 담는다. 그것이 바로 논리와 언어를 의미하는 로고스로 대표되는 철학의 기본적인 본질적인 법칙이다. 특히 말을 통한 자기표현에 서툰 현대인에게는 화가 그런 의미에서도 유익한 요소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한 일에 화내고, 모르는 일에 화내고, 부당한 권력에 화내고, 불합리한 국민성에 화내고, 자기 자신의 모순된 인생에 화낸다. 분노는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열정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조건이다. ‘분노는 곧 철학이다.’---「분노는 철학이고 철학은 분노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화의 결점으로 꼽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잘 화낸다 해도 감정만 폭발할 뿐 문제 해결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단지 감정만 폭발시키면 그것으로 끝이므로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화내야 할까?
문제 해결에는 지혜와 끈기가 필요하다. 단순히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생겨난 화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도록 지혜롭게 화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 당신의 화를 문제 해결을 위한 강력한 에너지로 바꾸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책상을 걷어차고 홧술을 마신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잠시나마 속은 시원할지 모르겠지만 바로 후회하게 되기 쉽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보다는 오히려 그 화를 문제 해결을 위한 에너지로 바꾸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악물고 힘차게 일어서서 냉철함을 잃지 않고 제대로 화낼 수 있게 되면 그 화는 틀림없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화된다.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무기로 끈기 있게 문제에 맞닥뜨리고 과감히 뚫고 나가다 보면 처음엔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난관도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 더 이상 손쓸 방도가 없다며 포기해 버리는 사람과 끈질기게 화내면서 전진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까? 당연히 후자가 아니겠는가! 이렇듯 화에는 난관을 돌파하도록 돕는 힘과 강점이 있다. ---「당신의 화를 에너지로 바꿔라」

화는 일종의 ‘호소’와 같은 것이다. 즉,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는 충분히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굳이 화를 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소통 수단 중 가장 임팩트가 강하기 때문이다. 즉, 화는 호소의 강도가 가장 세다. 인간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 중 화만큼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도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을 전하는 경우에 웃으면서 ‘처별은 너무해요.“라는 식으로 말하면 누구도 공감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울면서 ”차별을 그만두세요.“라고 외치면 어느 정도는 그 호소에 공감하거나 동정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백인이 우리에게 ‘왜 백인을 미워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왜 나를 미워하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훨씬 분명하게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가. 동시에 ‘차별하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사실 이는 흑인 해방운동으로 유명한 말콤 X의 발언이다. 그는 과격하여 내뱉는 말마다 화로 가득했다. 울면서 매달리기보다는 화내는 편이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법이다.
본래 화에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계를 뒤엎을 수도 있을 정도다. 이 잠재력이 바로 임팩트의 원천이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화보다 강력한 수단이 또 있을까.

---「가장 임팩트가 강한 의사소통 수단, 화」

출판사 리뷰

제대로 화내며 살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오늘도 화를 참거나 혹은 욱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
그들을 위한 철학자들의 통찰과 현명한 조언!

〈게르니카〉가 20세기 최고의 걸작 미술품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화의 에너지’ 때문!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예술가를 한 사람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파블로 피카소를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 중 최고의 걸작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어떤 작품이 뽑힐까? 단연 〈게르니카〉가 아닐까!
〈게르니카〉는 어떻게 20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가장 위대한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을 최고의 걸작으로 만든 힘은 과연 무엇일까? 그 안에 내재된 강렬한 ‘화의 에너지’에서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피카소는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저질러졌던 바스크지방의 한 마을 게르니카의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강력한 분노와 항의를 담아 〈게르니카〉를 완성했다. 그리고 이후 이 그림은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 같은 파시스트들에 대항하는 반독재투쟁과 반전운동의 구심점이자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만일 〈게르니카〉에서 ‘화의 에너지’와 ‘분노의 메시지’를 제거해버린다면 최고의 걸작으로서의 위상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게르니카〉만이 아니다. 상당히 많은 그림, 그리고 예술작품들이 〈게르니카〉처럼 그 안에 강렬한 ‘화의 에너지’와 ‘분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무기로 화가가 살았던 시대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불의에 맞섰다. 그런 그림들이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고 걸작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바로 그 ‘에너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화’가 역사를 바꾸고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지렛대로서의 역할을 해낸 사례가 일일이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절대왕정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화산처럼 분출함으로써 프랑스 사회를 근본부터 변혁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쳐 궁극적으로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프랑스대혁명’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화에는 변화에 필요한 긍정적인 에너지와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나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실천하는 철학교수, 인류사 최고의 철학자들을 동원해 ‘화’를 재조명하다

《이제는 제대로 화내고 싶다》는 한마디로 ‘화를 권장’하는 책이다. 철학과 교수이자 책의 저자인 오가와 히토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해 데카르트, 칸트, 헤겔을 거쳐 푸코와 들뢰즈에 이르는 수천 년간의 탄탄한 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화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원래는 인간이 가진 다른 어떤 성정(性情)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고 변화의 가능성을 가진 화가 어째서 오늘날 차별과 기피의 대상이 되었는지 밝힌다. 그럼으로써 그는 화를 무조건 참고 억누르고 기피할 것이 아니라 화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와 잠재력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야말로 ‘제대로 화내는 법’을 배울 것을 권한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오히려 화내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아니,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화를 단지 기피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억압하고 말살하려고 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이 책의 서두에는 얼핏 보면 당연한 듯 보이지만 상당히 통찰력 있는 질문이 나온다. 즉, ‘우리는 인간이 가진 4가지 감정, 희로애락 중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하는 감정과 행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어째서 화내는 감정과 행위만 차별하는가.’
저자에 따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마음속에 생기는 에너지의 일종으로서 그 에너지를 제대로 방출해야만 비로소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마음속에 생성되는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억제하거나 밖으로 방출하지 않은 채 쌓아두기만 한다면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도 어려워지게 된다. 게다가 쌓일 대로 쌓인 에너지는 어느 시점에 이르면 반드시 폭발한다. 즉, 이성을 잃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화뿐만 아니라 어떤 감정도 억눌러서도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한데 어째서 화만 억압의 대상이 되었는가.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하는 사람은 위험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반면 화내는 사람은 위험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화 혹은 분노, 그리고 화내는 사람은 정말로 위험할까?
저자에 따르면, 이는 ‘화(분노)’를 ‘증오’나 ‘이성을 잃는 것’과 혼동한 데서 빚어지는 오해라고 한다. 가장 큰 차이는, 증오에는 ‘음’의 에너지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그 감정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반대로 분노는 ‘양’의 에너지를 지닌 감정이므로 억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혜롭게 발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증오’나 ‘이성을 잃는 행위’에는 자주 폭력이 수반되지만 분노에는 폭력 대신 ‘논리’가 수반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화는 폭력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제대로 된) 화를 적극 권장하면서 “우리가 만일 분노를 무조건 억압하지 않고 지혜롭게 표출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럼으로써 좀 더 자연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인간사회에서 생겨나는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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