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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슈마를 추대하다
불길한 징조들과 천혜의 눈 잠부 대륙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 드넓게 펼쳐진 여러 섬 이야기 비슈마의 죽음을 알리는 산자야 유디슈티라, 어른들께 축원을 청하다 전투가 시작되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비슈마의 죽음 전투가 시작되다 다섯째 날 일곱째 날 여덟째 날 아홉째 날 열흘째 날 화살침상에 누운 비슈마 |
마하바라따』의 문제적 인물, 비슈마 할아버지, 죽음에 이르다. 이 비극 앞에 선 아주르나의 ‘실의’와 그것의 극복 과정이 인도 최고의 고전 『바가와드 기따』에서 설해지다!
지상 최고의 고행자이자 위대한 수행자, 지덕체의 화신 등 온갖 지상적 이상을 구현한 듯한 비슈마 할아버지는 동시에 사촌 간의 동족상잔이 벌어지게 되는 이 비극을 지금까지 막아온 일종의 균형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천상의 아들이기도 해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초월적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세상일이 비극으로 치닫는 것은 막지 못해, 어찌 보면 신적 존재도 또 인간의 이상적 도덕적 완성태도 ‘권력’과 ‘욕망’의 파노라마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비극은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대하서사시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인도인들의 성경’의 흥미로운 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덕체를 구현한 이 신적-인간적 존재가 ‘선’을 위해 행한 최선, 최고의 행위마저 전쟁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막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할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동족상잔이라는 끔찍한 ‘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비극을 진정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만든다. 자연계에서처럼 콩 심은 데 콩이 나면 좋겠지만 욕망 덩어리에다 권력 덩어리인 인간계는 능히 그러한 자연계의 이치마저 훌쩍 뛰어넘으니, ‘선’은 반드시 ‘선’을 낳지 않는다. 인류 역사에서 등장한 ‘기축 종교’가 모두 이 딜레마를 기본 주제로 하며, 인류의 가장 위대한 문학 장르가 가령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인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여기서 예외인 중국문명은 참으로 ‘예외적이다). 다른 한편 이 점에서 이 모든 것을 수긍하며 자기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비슈마야말로 이 대하서사시 전반부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운명과 그에 대한 해석이야말로 『마하바라따』를 인도 문명의 진정한 정수로 만들어주는 교훈이자 가르침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도 문명이 비로소 하늘과 신과 도덕의 세계를 넘어 인간의 세계로, 지상의 욕망과 정치의 세계로 이행하면서 이 두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지상에서의 삶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볼 때만이 『마하바라따』의 일부지만 흔히 독립되어 따로 읽히며, ‘인도인들의 성경’으로 추앙받는 『바가와드 기따』에 대한 올바른 독해도 가능할 것이다. ‘인도인들의 성경’이지만 할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우주적 운명 앞에 선 아르주나의 ‘실의’를 달래주며 설하여지는 『바가와드 기따』, 천의 얼굴을 가지다! 각자는 거기서 각자의 운명과 각자의 얼굴을 보게 되리라. 한국에서는 일찍이 ‘간디의 고전’ 또는 처음 한국에 본격 소개한 ‘함석헌의 생명의 책’으로 알려진 『바가와드 기따』는 이후에도 10여 종이 넘게 번역되는 등 한국인들에게서도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고전인 『바가와드 기따』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도 고전’이기도 한 셈이다. 동시에 대부분 영어에서 중역되고, 또 이 ‘노래’가 속한 본래의 『마하바라따』와는 동떨어져, 그리고 인도 철학사의 발전사의 맥락과는 분리되어 번역되는 바람에 이 ‘노래’가 우리의 삶과 곡진하게 관련되지 않고 ‘신비한’ 책 정도로 수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세 가지 단점을 극복하며 고전 번역의 모범을 보여주는 이 책은 또한 유려한 한국어로 인도 철학의 주체적 수용을 시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