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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출항의 노래 가슴 없는 섬 거인들의 숲 마녀들 슬픈 원주민들 난파 |
Lee Mun-yol,李文烈,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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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나를 낳아준 땅과 사람들로부터 멀리 떠나 낯선 바다를 떠돌고 있다. 아직 속속들이 그 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한동안은 더 떠돌게 될 이 바다는 퍽이나 거칠고 위험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지금 나는 앞으로 닿게 될 섬들과 거기서 나를 기다리는 일들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
--- p.11 하기야 내게도 한국이 전혀 모르는 나라는 아니었다. 나를 만든 나라의 사람들은 전부터도 한국과 그 나라 사람들에게 별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딴 나라 사람들에 의해 국토와 민족이 분단된 나라였기 때문이다. 자기들이야 한 짓이 있어 그 벌로 그리되었다면 이유라도 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아무 짓도 한 게 없이, 순전히 힘없고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 그 꼴을 당한 데다, 한때는 같은 민족 간에 죽이고 죽는 전쟁까지 치러 더욱 측은하게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pp.30~31 내가 듣기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층은 적당히 두터운 게 오히려 그 나라의 정치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정치 과잉, 특히 정치에 대한 대중의 지나친 관심은 그 나라의 정치안정을 해칠 수도 있다는 뜻도 되는데, 이제 내가 가고 있는 곳은 그 정치 과잉조차도 논리가 아니라 감정에 바탕한 질 낮은 것이었다. 앞으로 내가 헤쳐가야 할 바다는 거친 바다다. 거칠고 위험스러운 바다다……. 거기다가 내게 더욱 한심한 기분이 들게 한 것은 그러한 감정의 기본적인 동기였다. --- p.47 하지만 한눈에도 대중목욕탕과는 달라 뵈는,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의 탈의실로 들어서면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들은 이 사회의 거인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들었거나 불구(不具)인 거인들이다…….’ 그제서야 그들이 경제활동으로서의 일과를 이미 끝내고 휴식과 향락의 일과를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됨으로써 나온 우려 섞인 중얼거림이었다. --- p.121 “종토세(綜土稅), 토초세(土超稅) 말씀하시는가 본데, 언제는 그런 법 없어 부동산 재미 봤습네까아? 양도소득세만 해도 철저하게만 시행됐으면 부동산 이거 은행이자보다 나을 거 없습네다아. 한번 계산해 봅시다아. 일 년에 백 푸로씩 오른다 쳐도 세금 60푸로 내면 연 40푸로 미만 소득입죠오. 그런데 그게 어디 매년 백푸로씩 오른답니까? 게다가 복비다, 취득세다, 이전비용이다 제하면 은행에 넣어두는 것보다 못 할 수도 있습니다…….” --- p.147 “정치에 새사람이 어딨어요? 우리 보기엔 처음이니 새사람 같지만 조사해 보면 다 헌사람들이라구요. 그 경력 한번 훑어보세요. 올망졸망한 무슨 동창회장 무슨 사무국장 무슨 협회장……그게 다 벌써 오래전부터 정치를 시작한 사람들이란 뜻이에요. 다만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 보니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그 사람들 뽑아 보낸다구 지금 사람들보다 나을 것 같아요? 어림없다구요. 새로 시작하는 그 사람들 연습하구 실수하는 것 다 참아주려면 더 분통 터져 못살걸요. --- p.172 따지고 보면 내가 이 나라로 오면서 그들에게서 맡은 졸부냄새나 이 나라에 와서 이제껏 본 몇 가지 소비 광태는 그들의 마지막 허세요, 오기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촛불은 꺼지기 전에 한번 빛난다던가. 거품경제 아래서 잠시 동안 품어보았던 황홀한 환상에 대한 애착이 그렇게 비뚤어져 나타나고 있다고 보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그러면 그들은 누구인가. 도대체 이 계층은 기층민과 중산층, 그리고 소수 경제적 특권층 가운데 어디에 소속되며 그들의 의식은 어떤 것일까. 또 그들이 이 사회에서 수행할 기능은 무엇일까. 섣부른 규정이 될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을 한국형 중산층이라 이름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형이란 말속에는 원시 또는 배태기(胚胎期)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 pp.25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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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오디세우스가 항해하는 것처럼, 몽블랑(만년필)이 바라보는
90년 대의 한국 사회와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이문열 특유의 능란한 말솜씨와 날카로운 촌철살인 어법으로 1990년대 서울의 세태를 신랄하게 묘사한다. 다양한 가치와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시사적인 문제를 엮어내는 작품의 특성상, 빠른 이야기 전환을 요구하는 만큼, 작가로서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등장인물들 각자가 가진 환상과 바람은 저마다의 한계로 현실적인 하강에 이르지만, 그 하강에서 오는 자기반성과 통찰은 정신적 상승을 이끌며 조화와 공존을 지향코자 하는 작가의 열망을 드러냈다. 다시금 이 작품을 조명하는 이유는 30여 년 전인 199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 사회와 오늘날을 조망하고자 한다면, 관통하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한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 희대의 열망은 부동산이라는 점, 어떤 방식으로든 한바탕 벌고 계층 위에 올라서면 그만이라는 졸부 근성에 대한 각성은 오히려 현대사회에서는 부재한 윤리의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문학계 살아있는 전설 이문열이 바라본 1990년대 당시의 대한민국과 현재의 내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세태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문열 소설과 이데올로기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의 책장에 반드시 꽂혀있어야 할 책은 바로 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