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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표착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가난한 사람들 희극 또는 비참 돌아온 이카루스 깃발은 쓰러지고 동지만 남아 짜르를 기다리며 |
Lee Mun-yol,李文烈,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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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이태 지나니 겨우 정신을 차릴 만해지데. 하지만 안되는 놈은 죽어라 죽어라 하더라구. 이제 어떻게 집 장만 계획이라두 마련해볼까 하는데 난데없이 철거 바람이 분 거야. 우리 살던 집, 요새 지나다 보니 번듯한 주택가가 되어 있더라만 그때는 꼬방동네 한가운데였는데 그곳까지 철거의 손길이 미친 거라. 집주인들이야 그때도 약간의 보상은 받았지. 하지만 우리 같은 세입자는 어디 말 붙여볼 데도 없었어. 갑자기 보증금 달랑 받아 길거리로 내몰리니 그동안 모은다구 모은 것 보태도 또 찾아갈 곳은 꼬방동네뿐이더라구. 그다음부터는 줄줄이야. 늙고 병든 양친네 공원묘지까지 치다꺼리하고 나니 다시 향순이년 시집가구, 천수 놈 장가에, 또 철거 ─ 십 년이 그저 그 모양으로 훌쩍 흘러가 버리데.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이번에는 또 자식새끼 셋이 다 학생이 되어 번갈아 손을 벌리는 거라. 마누라는 일 나갈 형편이 못 되구…….”
--- pp.19~20 타협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위해 짐짓 한번 뻗대보았던 재개발 측은 사태의 그 같은 발전에 당황해했다. 시간을 끌면 다소간 수그러들리라 믿었던 세입자의 세력이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뿐만 아니라 구호까지 격렬하고 다양해졌으니 그야말로 혹을 떼려다가 혹을 붙인 격이었다. 경찰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정부와 여당의 은근한 양보 압력까지 받게 되자 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119 어떻게 보면 아까끼의 가난에는 그 자신의 책임이 더 커 보인다. 첫째로는 남들이 다 사법서사 자격을 딸 때 그는 왜 필경사로만 그대로 머물렀는가이며, 둘째로는 그랬더라도 자신의 직종이 전망 없음을 알았을 때는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이유에서 이다. 다시 말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들이 무더기로 따낼 때는 그도 자격을 따냈어야 했고, 또 필경으로 살기가 어려워진 뒤의 대응도 집을 조금씩 줄여 버텨나가는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단번에 팔아 과감하게 장사라도 시작해야 했다는 얘기다. --- p.151 지난 이 년 동안 그가 가 있었던 곳이 어디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집으로 돌아온 종태는 적잖은 문화적인 충격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는 전선에서 여러 해 만에 귀환한 병사처럼 변화된 환경을 주의 깊게 살폈고 조금이라도 낯선 게 있으면 호기심으로 식구들에게 확인을 했다. 종구의 압구정동 문화, 외설 시비에 대한 해설이 그랬고, 어머니의 사회운동관이며 누나의 종말론이 그랬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특유의 종합력과 추리력은 변질된 기층민의 의식과 압구정동 문화, 그리고 종말론과 외설 시비에서 어떤 공통분모를 추적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게 아우와의 대화에서 그동안 실패가 없는 형으로서 쌓아 올린 권위를 고집하는 대신 그토록 자주 관찰의 눈길을 번득이게 한 것이다. --- p.283 “너무 절망할 거 없어. 러시아의 나로드니키를 기억하나? 그들의 실패는 참담했지. 막판에는 명색이 민중주의자인 그들을 바로 그 민중이 잡아다 관원에게 넘겼으니까……. 그건 좌절이 아니라 아주 끝장이었다구. 그렇지만 그로부터 몇십 년이 안 돼 볼셰비키들은 멋지게 혁명에 성공하지 않아? 그렇다구 그들이 나로드니키보다 조직이나 이념 면에서 반드시 우수했는가는 뒷날의 논의에서처럼 그렇게 명확하지 않아. 그들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만 한 가지, 회개하지 않는 짜르와 귀족들이었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도 아직 희망은 있어. 우리 짜르와 귀족들도 전혀 회개하지 않고 반성할 줄 모르고 있으니까. 더구나 우리 짜르와 귀족들은 80년대 동구와 소련에서의 실패에 고양돼 아무런 근거 없는 승리감까지 품고 있다구 이제 사회주의의 위협은 역사의 유물로 확정된 양 기고만장이지. 너무 절망하지 말고 기다려. 짜르를, 회개 없고 반성 모르는 귀족들을…….” --- pp.382~383 |
마치 오디세우스가 항해하는 것처럼, 몽블랑(만년필)이 바라보는
90년 대의 한국 사회와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이문열 특유의 능란한 말솜씨와 날카로운 촌철살인 어법으로 1990년대 서울의 세태를 신랄하게 묘사한다. 다양한 가치와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시사적인 문제를 엮어내는 작품의 특성상, 빠른 이야기 전환을 요구하는 만큼, 작가로서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등장인물들 각자가 가진 환상과 바람은 저마다의 한계로 현실적인 하강에 이르지만, 그 하강에서 오는 자기반성과 통찰은 정신적 상승을 이끌며 조화와 공존을 지향코자 하는 작가의 열망을 드러냈다. 다시금 이 작품을 조명하는 이유는 30여 년 전인 199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 사회와 오늘날을 조망하고자 한다면, 관통하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한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 희대의 열망은 부동산이라는 점, 어떤 방식으로든 한바탕 벌고 계층 위에 올라서면 그만이라는 졸부 근성에 대한 각성은 오히려 현대사회에서는 부재한 윤리의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문학계 살아있는 전설 이문열이 바라본 1990년대 당시의 대한민국과 현재의 내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세태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문열 소설과 이데올로기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의 책장에 반드시 꽂혀있어야 할 책은 바로 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