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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죽은 새는 울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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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을 타고 날리는 눈송이들이 경찰서 정문 옆 등불 아래에서 노랗게 반짝였다. 강철로 된 슬라이딩 게이트는 완전히 닫혀 있었고, 대리석 돌기둥에 박힌 놋쇠 팻말에는 무령경찰서라는 다섯 글자가 또렷하게 돋을새김되어 있었다. 정문 너머 오 층 높이의 경찰서 본관은 사각형과 직선만으로 이루어진 콘크리트 덩어리로, 밭장다리 노가다 십장이 흙바닥에 대충 그려서 지은 듯 무식하게 생긴 건물이었다.
--- pp.9~10 소나타 운전석의 창문이 스르르 내려갔다. 안에는 남자 혼자 타고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짙은 눈썹과 커다란 뿔테 안경, 거기다 뺨과 턱을 덮은 검은 수염까지, 꽤나 복잡한 얼굴이었다.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운전하고 있던 남자는 태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정면만 바라보았다. 뭡니까? 선생님, 어디 가시는지 몰라도 길을 잘못 드신 것 같습니더. --- p.45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태수는 눈을 떴다. 상체를 일으키고 창문을 여니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강모가 콧김을 뿜으며 밖에 서 있었다. 그리고 강모 옆에는 젊고 아담한 여자가 서서 검붉은 체크무늬 담요로 어깨를 감싼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여자의 눈가에는 마스카라가 번져 있었다. 투명한 피부에 작고 빨간 코. 얼어붙은 실핏줄이 여자의 양쪽 뺨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렸다. --- p.68 여러분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지? 유림은 입술을 다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손깍지를 낀 유림의 양손이 배꼽 부근으로 내려오더니 위로 벌어지며 무언가를 떠받치는 듯한 모양을 만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직 부장검사 한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 p.104 그거 루미놀 아니가? 뒤로 좀 물러나이소. 태수는 정길과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다음 왼쪽 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고 오른팔을 쭉 뻗어 신분증 위에 용액을 분사했다. 정길도 파카 목깃을 들어 올려 호흡기를 가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태수는 분무기를 근처 책상에 내려놓은 후 출입구 옆으로 가서 스위치를 눌렀다. 사무실의 불이 모두 꺼지자 순식간에 눈앞이 암흑으로 변했다. 이윽고 일그러진 빛의 고리가 마치 어둠 속에서 형광 막대를 휘저은 잔상처럼 선명히 떠올랐다. --- pp.173~174 좀 더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면, 비트코인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어요. 어떤 전자지갑에 거액의 비트코인이 들어 있다고 해보죠. 그리고 그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요. (중략) 그걸 실제로 회수하려고 들면 문제가 생기죠. 비트코인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누군가 자신의 전자 지갑에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면 개인 암호키를 알아야 그 비트코인을 이체할 수 있어요. 지갑 주인이 암호키를 외운 다음 어디에도 흔적을 남겨두지 않는다고 가정해 봐요. 어떻게 할 방도가 없죠. 그러니까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따지면, 비트코인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완벽하게 지킬 수 있어요. 기억력만 좋다면. --- pp.241~242 고인 물은 결국 흐르는 법이죠. 요새는 꼭 그렇지도 않던데요. 물이 흐르지 않으면 흐르도록 만들어야죠. 희망적이시네요. 별 수 없잖아요. 뭐가요? 희망을 가져야죠, 살아가려면. 살아가려면 희망을 버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요. 어느 쪽을 바라보는지에 달려 있겠죠. --- p.250 우리가 흔히 진실이라고 부르는 건 서로 합의된 이야기에 불과하죠. 판사든 검사든 모든 걸 알 수는 없어요. 인간이 알 수 있는 건 매우 제한적이죠. --- p.366 태수는 두 손을 펴서 굳은살 박인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빈손을 꼭 쥐었다. 그것밖에 쥘 것이 없어서 쥐었을 뿐 별 의미는 없었다. --- pp.382~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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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물속에 잠기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지.”
우리 사회의 일부이거나 전부일지 모를, 얼룩지고 일그러진 민낯 과연 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진실은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인구 팔만 명 남짓의 작은 고장, 무령에 실종사건이 발생한다. 사라진 사람은 다름 아닌 현직 부장검사. 사건을 추적하던 태수는 검사의 실종 뒤에 더 큰 범죄가 엮여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정의를 위해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가. 모두의 안위를 위해 이대로 묻어 두어야 하는가. 이러한 태수의 물음에 정길은 ‘적당히 정의롭게 살라’며 넌지시 고개를 젓는다. 태수야, 경찰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다들 자기 능력에 맞춰서 최대한 악하게 사는 게 사람이지 싶을 때가 있거든. 저는 잘 모르겠습니더. 그래도 원칙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아닙니꺼. 원칙이 밥 먹여주더나. (179쪽) 태수는 고민 끝에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나아가기로 마음먹지만 수사를 계속할수록 거대한 권력 앞에 좌절감만 맛보게 될 뿐이다. 그렇게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된 후 군수는 그에게 “한 번 물속에 잠기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 것들도 있는 법”(349쪽)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허무와 혼란을 느낀 태수는 결국 경찰을 그만두고 무령을 떠난다. 어쩌면 이 소설은 지금 우리가 발 디디고 서 있는 현실의 축약판이다. 검사나 경찰, 군수 같은 그럴듯한 허울 뒤 탐욕과 비리로 물든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씁쓸함과 차가운 무력감을 안겨준다. 저자는 저마다의 이해와 목적을 앞세워 공조와 배신을 넘나드는 인물들, ‘적당히’ 눈감아 줄 것을 종용하는 현실, 늘 그렇게 흘러왔듯 결국 변하는 것 하나 없는 결말 등을 통해 “거짓을 한 겹 더 벗겨낸다고 진실을 볼 수 있는 건 아니”(349쪽)라거나 “우리가 흔히 진실이라고 부르는 건 서로 합의된 이야기에 불과”(366쪽)하다고 이야기하며 묵직한 한 방을 던진다. 우리 사회의 일부이거나 전부일지 모를, 얼룩지고 일그러진 민낯을 그린 하드보일드 스릴러 『죽은 새는 울지 않는다』는 독자의 마음 한구석에 쉬이 지워지지 않을 날카로운 흔적을 남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