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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_ 「기생충」 이전 ─ 「괴물」의 ‘위생’과 「설국열차」의 ‘계급’ 핵가족의 묵시록으로 본 「기생충」 위생권력과 ‘비정상’ 가족의 대결 ─ 「괴물」 「설국열차」와 「옥자」 ─ 「괴물」의 변주 혹은 변종? 2부 _ 반지하와 대저택의 데칼코마니 핵가족의 섬뜩함 계획의 시작 디지털,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를 없애다 신흥 부자들의 등장 선을 넘는다는 것 3부 _ 핵가족, 음울한 묵시록 핵가족에는 외부가 없다! 억압과 소외의 온상, 핵가족 ‘단번에 도약’을 꿈꾸는 가난한 가족 네트워크의 붕괴와 퇴행 출구는 없다? 변하지 않는 욕망의 궤도 핵가족의 폐쇄회로에서 탈출하기! 질의응답 |
Ko Mi Sook,高美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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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목하는 건 봉준호 감독의 문제의식이 늘 생태계를 향하고 있다는 거예요. 「괴물」에서는 한강에 흘러든 미군의 독극물이 괴물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도 역시 문명 혹은 제국의 폭력성이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그게 다시 거대한 재앙이 되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식으로 되돌아오는 거죠. 국가나 시스템은 그걸 감당하지 못해 허둥대고 온갖 부조리를 연출하고…. 「설국열차」에선 비슷하게 지구온난화에 대처한답시고 한 짓이 온 지구를 다 얼어붙게 만든다는 발상인데, 이거야말로 문명의 폭력성과 기술의 오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설정입니다.
--- p.28 박사장 집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창밖에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단 한 명의 사람도 거기를 통과할 수도 없고 오지도 않아요. 세상에 나는 이런 ‘집구석’은 처음 봤어요. 그 정도로 살면 형제든 부모든 사돈의 팔촌이든 막 와 보려고 그러고, 파티든 모임이든 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인적이 드물 수가 있죠? 그 넓은 집을 어떻게 네 명이 쓸 수가 있어요? 엄마, 아빠, 아들, 딸. 여기도 딱 일촌으로 이루어져 있죠. 가족 구조가 김기사네랑 똑같죠. 창문이 크고 창밖으로 자연이 우거졌지만 오줌 싸러 지나가는 사람도 소독차도 없는 것은 다르지만…. --- p.44 이제는 ‘꿈’이라고는 하지 않는 거예요. “부자를 털어먹을 수 있는 계획이 생겼어요, 아버지”, 이런 식이죠. 사기를 치는 일이 계획이에요. 이 가족한테. 그러니까 가족이 다 직업을 얻는 게 계획인데, ‘직업을 정직하게 해서는 못 얻는다’, ‘남을 속이고 약탈을 해야만 얻는다’. 이게 아주 뼛속 깊이 이미 박혀 버린 거예요. 조금 과장하면, 이건 상당히 큰 변화의 징후라 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지난 10년간 성행했던 ‘꿈’ 담론이 와해된 셈이니까요. ‘꿈타령’은 이제 됐고, 지금 중요한 건 ‘계획’인 거죠. --- p.50 어쩌다가 이렇게 됐죠? 여기에는 출구가 없습니다. 이 가족이 하는 일은 뭐냐면, 직업이 없을 땐 무력하게, 엉망으로 살아요. 그러다가 누군가 돈을 벌어오면 뭘 하죠? 바로 술과 피자 이런 음식을 진탕으로 먹는 거죠. 나중엔 네 명이 다 취업을 했으니까, 이제 돈을 잘 모아서 빨리 반지하를 탈출하고 새출발하고 이런 계획을 세울 줄 알았는데, 그런 계획 같은 건 일체 없어요. 그냥 큰 집에 대한 욕망만 있는 거죠. 그래서 박사장네가 캠핑 가니까 졸지에 거기 다 모였는데 거기서 또 뭘 해요? 한바탕 때려먹는 거죠. --- p.74 문제는 아직도 핵가족을 기준으로 해서 그게 안 되면 결핍이라고 해석을 하는 거죠. 기준은 여전히 핵가족인 겁니다. 이런 식의 정치담론이나 휴머니즘 타령이 솔직히 좀 지겨워요. 가족의 화목함, 사랑, 막 이런 게 삶의 어떤 중요한 표지가 되는 것이…. 가족은 그냥 생명의 베이스인 거예요. 태어나서 이 베이스캠프를 배경 삼아서 자기의 길을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수신’을 하고 ‘제가’를 하고 ‘치국’을 하고 ‘평천하’를 하는 쪽으로 가는 겁니다. 누구든 나아가서 새로운 가족이든 새로운 네트워크든 형성을 하는 거라고요. 왜 평생 자꾸 이 핵가족으로 되돌아오냔 말이죠. --- pp.88~89 |
영화 「기생충」, 핵가족의 묵시록을 그리다!
- 북튜브 가족특강 큰글자책 출시 * 이 책은 시력약자를 위해 기존도서보다 1.4배 확대된 활자로 인쇄한 ‘큰글자책’입니다. * 책과 아래의 소개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 개봉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2020년 오스카상까지 거머쥐면서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영화 반열에 올랐다. 대저택에 사는 부자와 반지하의 빈자, 그리고 그보다 더 지하에 사는 비인간의 경계에 몰린 이들을 그려 내며 빈부격차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뤘다는 것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이다. 하지만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이 영화를 ‘핵가족’이라는 색다른 문제의식을 통해 접근한다. ‘아빠-엄마-아들-딸’이라는 ‘정상적인’ 4인 가족으로 이루어진 두 가족, 그리고 남편이 자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하의 ‘유사 핵가족’ 사이의 투쟁 속에서 감독이 ‘계급’이나 ‘빈부격차’의 문제와 함께 ‘핵가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분석이다. 「괴물」, 「설국열차」, 「옥자」 그리고 「기생충」 이 책은 우선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과 「기생충」의 차이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2008년에 출간한 『이 영화를 보라』에서 ‘위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영화 「괴물」을 분석한 바 있는 고미숙은 이번 책에서도 「괴물」, 「설국열차」, 「옥자」로 이어지는 봉준호 영화의 특징을 포착해 낸다. 「기생충」 이전의 이 영화들에서는 모두 새로운 관계의 구성과 희망의 메시지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 「괴물」에서는 여중생 딸이 희생되지만 떠돌이 소년과 강두(송강호 분)가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고, 「설국열차」에서는 역시 요나(고아성 분)가 머리칸에 갇혀 기계를 수리하던 소년을 구해 열차의 옆으로 빠져 나와 새로운 세상으로 나선다. 「옥자」에서도 역시 새끼 돼지 한 마리를 구해 내 산골로 돌아오면서 암울한 현실에도 실낱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생충」에서는 이런 실낱같은 희망조차 사라진다. 「기생충」에는 외부와 관계 맺지 못하는 핵가족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으로 고려되었던 ‘데칼코마니’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반지하에 사는 김기사(송강호 분)네와 대저택에 사는 박사장(이선균 분)네 모두 ‘아빠-엄마-아들-딸’이라는 대칭적 구조를 보여 준다. 하지만 이러한 대칭적 구성은 지하의 문광 씨 부부로 인해 흔들리게 되는데, 이 부부 역시 남편이 자녀의 역할까지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 ‘핵가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핵가족 간의 투쟁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에서 계급적 연대, 비슷한 처지에 대한 공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계층이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밟고 ‘치워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봉준호 감독은 우리 사회의 이런 섬뜩한 측면을 세 가족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폐쇄회로에서 탈출하기 평소에는 무기력하지만, 누군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지면 기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가족 간에 하는 일이라고는 돈 이야기와 먹고 마시는 일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 그 반대편에는 타자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이 가난한 사람들이 선을 넘어오는 것에 대한 짜증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쇼핑과 이벤트로만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두 가족의 욕망 모두 ‘핵가족의 폐쇄회로’에 갇혔다는 점에서 지하의 문광 씨(이정은 분) 부부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폐쇄회로에서 탈출할 것인가? 지은이는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에서 ‘출구 없음’, ‘대안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과 생명의 연대로서의 가족’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우선 ‘계획’을 버려야 한다는 것. 동생이 죽고 아버지가 실종되는 엄청난 사건을 겪고도 아들 기우는 똑같은 욕망의 궤도에 들어선다. 그 집을 사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 또 누군가에게 사기를 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계획이다. 가족이 죽음을 당하고, 살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성찰도 없는 이 장면을 분석하면서 저자 고미숙은 가족의 이익과 서로에 대한 집착만을 증대시키는 ‘계획’이 아닌 ‘생명 차원의 연대의 장’으로 가족을 변화시킬 것, 그리하여 가족의 구성원들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응원해 주는 관계’로 새롭게 가족의 윤리를 구성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