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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나는 나답게
별 _정일해 · 10 놀 줄 아는 애 _장세정 · 11 2부 생각은 달라도 하늘과 땅 차이 _김나현 · 30 콩 한 쪽과 닭 다리 두 개 _곽영화 · 31 3부 놀라운 세상 햇살 버스 _정일해 · 54 새해 아침 _최유정 · 55 4부 함께 살아요 응우옌 후이 안에게 _신미희 · 76 아빠는 판매왕 _손유라 · 77 시인의 말?말?말 · 100 |
우리는 시로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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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어른이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노래
『나는 오늘 착하게 살았다』에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과 어린이 곁에서 살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이 시에 오롯이 담겨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어린이와 ‘수학 단원 평가에서 60점 맞아도/연극 공연에서 대사를 잊어 버려도/승부차기에서 골을 못 넣어도/회장 선거에서 떨어져도//(「그게 뭐라고」부분) ‘그게 뭐라고.’ 라고 응원을 해주는 어른(1부 나는 나답게),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겪지만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헤쳐 나가는 어린이와 맞춤법을 제대로 모르는 아이한테 주눅 들지 말라고 ‘내 시인데 네가 왜 참견하니?’(「시 받아쓰기는 그냥 받아쓰기와 달라」 부분) 라고 거들어 주는 어른(2부 생각은 달라도), 지금의 삶이 힘들고 괴롭지만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어린이와 아이의 말 한마디를 허투루 듣지 않고 ‘그 마음이 꽃이네.’(「꽃」 부분)하면서 예쁘게 봐주는 어른(3부 놀라운 세상),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와 그런 어린이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고라니 입맛도 사로잡았네. 진짜 농부 다 됐어.’(「진짜 농부」 부분) 라며 어린이의 상한 마음을 풀어주는 어른(4부 함께 살아요)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물론 모든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관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의 말이나 행동에 상처 받는 어린이도 있고(「하늘과 땅 차이」, 「엄마의 푸른 가방」, 「같지 않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어린이도 있다.(「놀라운 아이」, 「이천 원짜리 구피」, 「그럴 거면 왜?」) 그렇지만 상처 받고 힘들어 하는 어린이가 주저앉아 울고 있기보다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할 수 있는 어린이로 자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시인이 직접 말하는 어린이와 어른이 더불어 사는 삶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어린이와 어른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시인이 직접 쓴 〈자작시 해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동생으로 산다는 것(손유라) 오빠가 슈퍼 영웅을 하면 나는 악당을 해야 하고, 오빠가 의사를 하면 나는 환자를 해야 하고, 오빠가 선생님을 하면 나는 학생을 해야 한다. 몸에 칼이 닿지 않아도 맥없이 쓰러져야 하고 감기라며 한여름에 목도리를 감아주어도 그냥 견뎌야 하고 숙제 안 했다고 벌을 세워도 아무 말 못 한다. 오빠랑 놀아주기 참 힘들다. 동생이 오빠보다 한 수 위인 이유 머리 쥐어뜯으며 싸우던 연년생 남매가 달라졌다. 그저 다섯 살 된 첫째 아들이 유치원을 입학하고 부쩍 의젓해진 덕분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빠랑 노는 걸 보게 됐다. 둘째가 악당 역할을 얼마나 정성스레 하는지 보는 내가 감동할 정도였다. 아이언맨이었던 첫째가 쏘는 빔에 몇 번이고 쓰러졌다 일어나는 둘째. 첫째가 영웅 놀이할 맛 나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둘째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늘 오빠 노는데 훼방만 놓던 둘째였는데. 〈동생으로 산다는 것〉이란 시는 그렇게 시작됐다. 1~3연에서 동생은 맡은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는다. 4~6연에서 동생은 엉터리 같은 요구일지라도 오빠가 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누군가는 이 설정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동생은 어째서 오빠에게 불공평한 상황에 대해 따지고 들지 않을까, 아니 처음부터 안 놀면 되는 것 아니냐 하고 말이다. 그런데 동생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면 그 불편함이 조금은 해소될 것이다. 영유아기 때부터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와 형제를 따라 한다. 특히 동생은 같은 또래인 오빠나 형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심리가 강하다. 오빠가 갖고 노는 장난감을 똑같이 갖고 놀고 싶어 하고, 형이 하는 놀이를 함께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동생은 자기 취향을 포기하고 오빠와 노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오빠가 허락해야 함께 놀 수 있고, 놀이를 주도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오빠가 되니 동생은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오빠와 동생이 이른바 갑과 을이 되어버린 상황을, 동생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고민했다. 오빠가 밉다며 넋두리를 할 것인가, 동생으로 태어나서 억울하다며 푸념을 늘어놓을 것인가. 아니다, 7연을 위한 단서는 이미 나와 있었다. 4~6연에서 오빠의 요구가 억지스럽다는 것을 날카롭게 꼬집어낸 동생이 아니었던가. 그런 아이라면 마냥 신세 한탄만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오빠랑 놀아주기 참 힘들다.”라는 것으로 시를 마무리했다. ‘아무리 오빠가 찧고 까불어도 사실은 내가 오빠랑 놀아주는 거야’ 하며 한껏 여유 부릴 줄 아는 동생이 하는 말로 말이다. 동생이 오빠와 놀아준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빠에게 맞춰주느라 힘든 동생의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동생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아이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매번 오빠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동생이, 그것도 어린아이가 이런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말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가 있을까 싶은 정도다. 그렇지만 세상이 뒤집혀도 동생이 오빠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조금만 생각을 바꾸어보자고 동생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여유로운 마음엔 형제자매에 대한 열등감이나 피해의식 따위가 자라날 틈이 없다. 콩 한 쪽과 닭 다리 두 개(곽영화) 치킨 한 마리에 닭 다리는 두 개 형이 먼저 닭 다리를 집는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동생이 집으려는 순간 재빨리 낚아챘다. 남들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데······. 지켜보던 엄마가 한숨을 쉰다. 솔직히, 콩이니까 나눠 먹지, 닭 다리면 나눠 먹을까? 콩 한 쪽은 나눠 먹는 사이(곽영화) 집에 아이가 셋이나 있으면 다툼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음식 때문에 싸우는 일이 많다. 싸우지 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먹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날도 축구 경기를 가족과 함께 즐기려고 치킨 한 마리를 시켰다. 그러나 치킨상자가 열리자마자 세 아이의 손은 경기를 하는 선수들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 첫 번째 목표물은 당연히 닭 다리다. 닭 다리를 집지 못한 막내는 어떻게 했을까? 결국 울고 말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남들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데…….”라고 하소연을 했다. 정말 남들이 그럴 거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형제들끼리 좀 더 사이가 좋았으면 해서 내뱉은 말이다. 이때 둘째 아이가 이의를 제기한다. 콩은 나눠 먹을 수 있지만 닭 다리는 나눠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치킨’은 ‘콩’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닭 다리’는 가장 맛있는 부위이다. 그러니 ‘닭 다리’를 맛없는 ‘콩’과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거다. 게다가 닭 다리는 손으로 잡고 한 입 크게 베어 먹어야 제맛인데 어떻게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이의 말을 듣고 또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맛’뿐만 아니라 ‘콩’과 ‘닭 다리’는 그것을 먹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속담에서 ‘콩’은 어려운 시기에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주식이다. 나누어 먹지 않으면 누군가는 배가 고플 수도 있다. 그러나 시에서 ‘닭 다리’는 특별한 날에 입맛을 돋우는 별미로 먹는 것이다. 나누어 먹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굶주리는 것은 아니다. 만약 먹을 게 전혀 없고, ‘닭 다리’ 하나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세 아이도 나누어 먹지 않았을까? 그러니 이 상황에서 내가 던진 속담은 ‘셋이 좀 더 사이가 좋았으면’하는 나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소리가 되고 말았다. 아이 말처럼 ‘콩’은 맛에 있어서도, 그것을 먹는 상황에 있어서도, ‘닭 다리’와는 같지 않으므로 비유의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다. 아이는 내 말에 이런 논리적 오류가 있음을 한 마디로 꼬집는다. ‘콩이니까 나눠 먹지/닭 다리였으면 나눠 먹을까?’하고. 재치 있는 응답에 더이상 할 말이 없다. 시에는 없지만 그 뒤 아이는 “우리도 콩 한 쪽은 나눠 먹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같지 않아(최유정) 나는 엄마 없는 아이라는 소리 오늘도 들었는데, 엄마는 자식 버린 어미라는 소리 한 번이나 들었을까. 남겨진 아이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 봅니다.(최유정) “너 엄마 없잖아.”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빠와 함께 살던 아이에게 어느 날, 친구가 내뱉은 말이었다. 아이는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남들이 무심코 던지는 이런 말에 아이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1연에서는 아이가 오늘 들었던 말을 표현했다. 아이의 사정을 배려하지 않는 한마디 말이 상처가 되어 가슴에 콕 박힌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기는커녕 들을 때마다 가슴에 새로운 상처가 새겨질 것이다. 아이는 이토록 힘든데, 아이를 두고 간 엄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이는 엄마를 그리워하면서도 원망할 것이다. 2연에서는 이런 아이의 마음을 1연의 상황과 대조하여 표현하였다. 자신을 두고 간 엄마 때문에 ‘엄마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오늘도’ 들어야 했던 아이는 엄마에게 ‘자식 버린 어미’라는 소리를 ‘한 번이나’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묻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이기를 포기하는 어른들이 참 많다. 오죽하면 부모가 그런 선택을 했겠느냐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이를 잃은 엄마, 엄마를 잃은 아이. 같은 상황이지만 두 사람이 살아갈 삶은 같지 않다. 남겨진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험난한 삶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가슴앓이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로지 아이의 편에 서서 이 시를 썼다. 이 시를 읽는 누구라도 남겨진 아이의 마음을 한 번쯤이라도 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우옌 후이 안에게(신미희) 온 국민이 똘똘 뭉쳐 100년 넘게 강대국에 맞서 싸워 독립과 통일을 이룬 나라는 전 세계에서 베트남밖에 없어. 너희 어머니는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에서 태어나셨단다. 다문화가족을 따뜻하게 품는 사회가 건강한 아이를 키웁니다.(신미희) 주눅 들어 있는 다문화가족의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도 당당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순히 다독거려 주기보다는 아이의 자부심을 키워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다. 1연에서는 베트남 역사를 적었는데, 특히 민족의 강인한 저항 정신을 보여준다. 100년 넘게 대를 이어가며 강대국에 맞서 싸워, 기필코 독립과 통일을 이뤄낸 베트남의 역사를 적었다. 그리고 2연에서는 네 엄마는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즉, 엄마의 나라가 자랑스러운 까닭을 저항의 역사에서 찾은 것이다. 시에서는 엄마의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했지만, 독자는 그러한 민족성을 지닌 엄마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는 독자인 아이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물론,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자부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가 너무 자랑스러워서 아이가 기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위축이 드는 까닭이 다문화가족 때문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아이가 가족을 부끄러워한다면 결코 자신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을 당당하게 여길 수 있어야 자신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에 부모의 나라도, 그 나라에 태어난 부모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의 국민을 얕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동남아 부모를 둔 아이가 자긍심을 느끼기에 더욱 어려운 환경이다. 그렇기에 그 아이들에게 격려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상처받는 다문화가족 아이가 많아질수록 사회도 병들어가고 있다는 걸 어른들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다문화가족 아이는 우리나라 아이이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족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회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운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생생한 오늘을 통해 내일을 꿈꾼다 우리는 오늘을 통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늘을 제대로 살지 않고는 내일을 꿈꿀 수 없다. 『나는 오늘 착하게 살았다』에 실린 시들은 어린이들과 어른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는 오늘 착하게 살았다』의 지은이는 ‘우시놀’이다. ‘우시놀’은 ‘우리는 시로 놀아요’의 약칭으로 시쓰기 모임 이름이다. 16명의 시인들이 자기 둘레의 아이와 어른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시로 담았다. 시인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삶을 그리는 방식도 다르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다르다. 이런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이 시집의 큰 장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