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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양반지주가의 경제활동
양장
허원영
혜안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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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
머리말

Ⅰ. 군포 속달 동래정씨 정난종 종가의 경영활동

1. 조선후기 정난종 종가의 사회경제적 상황
2. 일제강점기 정난종 종가의 경제활동

Ⅱ. 영광 외간 연안김씨가의 지주경영과 경제활동

1. 조선후기 연안김씨가의 사회경제적 성장
2. 한말~일제초 제도 변화와 연안김씨가의 소유권 강화
3. 일제강점기 연안김씨가의 농업경영과 경제생활

Ⅲ. 강릉 선교장과 고창 황상익가의 농업경영

1. 조선후기 강릉 선교장의 지주경영
2. 일제강점기 고창 평해황씨 황상익가의 농업경영

보론|18세기 후반 순천부 농민의 존재양태와 농업경영

맺음말

저자 소개1

강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고문서를 다루고 있으며, 현재 장서각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연구분야는 조선후기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근대이행기를 중심으로 고문서를 통한 사회경제사 연구가 중심이다. 『(통계로 보는) 조선후기 국가경제:18~19세기 재정자료의 기초적 분석』(2013), 『17세기 충청도 선비의 생활기록:조극선의 인재일록과 야곡일록』(2018) 등의 공저와 「19세기 濟州島의 戶口와 賦稅運營」(2006), 「고문헌학과 민족고전학, 고문헌을 다루는 남과 북의 학문
강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고문서를 다루고 있으며, 현재 장서각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연구분야는 조선후기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근대이행기를 중심으로 고문서를 통한 사회경제사 연구가 중심이다. 『(통계로 보는) 조선후기 국가경제:18~19세기 재정자료의 기초적 분석』(2013), 『17세기 충청도 선비의 생활기록:조극선의 인재일록과 야곡일록』(2018) 등의 공저와 「19세기 濟州島의 戶口와 賦稅運營」(2006), 「고문헌학과 민족고전학, 고문헌을 다루는 남과 북의 학문적 입장」(2020),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 사업의 전개와 성과」(2021)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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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29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656g | 153*224*21mm
ISBN13
9788984946859

출판사 리뷰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양반가는 한말-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해갔을까?

이 책은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근대이행기, 조선의 지배엘리트였던 양반지주의 경제활동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추적한 연구서이다. 조선후기 사회경제적 변동 속에서 조선의 지배엘리트였던 양반 가운데 일부는 하층농민으로 전락하기도 하였지만, 일부는 지주로서의 경제적 지위를 획득, 확대해 나갔다. 양반이라는 사회 신분적 지위와 지주라는 경제적 지위의 결합을 통해 양반지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이들 가운데 일부 유력 양반은 이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지역의 유력 지배엘리트로 군림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조선후기 지역사회에 본격적으로 성립한 유력 양반지주는 조선사회가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겪는 대격변, 조선왕조에서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으로 이어지는 국가와 사회의 정체성의 변동기를 거치면서도 그 지역의 사회, 정치, 경제적 지배엘리트로서의 지위를 상당 부분 유지해 갔다. 그리고 비록 역할과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했을지라도, 그 상당수는 해방 이후에도 일정하게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유력 양반지주로서 시대와 시대를 가로질러 지역사회에서 지배엘리트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기반에 지주라는 경제적 지위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 책은 경기도 군포의 동래정씨가와 전라남도 영광의 연안김씨가 등 구체적인 양반지주가의 사례를 통하여 조선후기 상황 속에서 양반지주라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어떻게 마련되어 운영되었고, 한말~일제초의 제도적 변화와 일제강점기의 새로운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 나갔는지 그 경제활동을 추적하였다.

이 책에서는 조선후기로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양반지주들의 농업경영과 경제생활을 검토하기 위하여 두 양반지주가를 중심적으로 검토하였다. 하나는 경기도 군포의 속달지역에 세거해 온 동래정씨가이고, 다른 하나는 전라도 영광의 외간지역에 세거해 온 연안김씨가로, 이 두 가문에 대한 분석이 이 책의 Ⅰ장과 Ⅱ장을 구성한다. 두 가문 모두 조선시대 중앙관직자를 일정하게 배출해 왔고, 지역 내에 경제적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운영해 온 집안이었다. 두 가문은 문중 내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동래정씨가는 조선전기의 명신으로 꼽히는 정난종(1433~1489)을 불천위로 모시는 동래정씨가문의 대종택이었고, 연안김씨가는 영광의 연안김씨 가운데 외간 입향조의 종손가문이자 중앙관직 및 경제력의 측면에서 영광 및 그 일대 연안김씨문중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두 가문은 세거해 온 지역 내의 기원과 지위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가 존재했다. 동래정씨가 세거한 속달은 정난종의 사패지로 사후 이곳에 묻혔으며, 장자 정광보(1457~1524)가 1500년경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 속달은 종택을 중심으로 동래정씨 방계와 소작인 등으로 구성된 강고한 씨족마을로 형성되었고, 종택은 사실상 속달의 주인으로 존재하였다. 반면 연안김씨가 외간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전반에 이르러서였으며, 임진왜란과 이로 인한 가족의 이산 등의 결과였다. 이후 지역의 명문가로 성장하기는 하였지만,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지위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특히 일대의 주요 지주로 발돋움한 것은 상당히 늦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였다. 이러한 두 가문의 지역 내 지위와 상황의 차이는 경제활동을 비롯한 두 가문의 존재양식에도 상당한 차이를 가져오게 되었다. 조선후기와 대한제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동래정씨가의 활동이 대체로 속달의 주인으로서 속달과 문중의 경영이란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연안김씨가는 경제주체로써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한 자산의 운영과 확장의 측면이 강조되고 있었다.

정난종이 경기도 군포의 속달과 인근을 사패지로 받은 이래로 이 토지는 동래정씨가의 주요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조선후기 동래정씨가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지주로서의 농업경영이기보다는 오히려 속달의 주인으로서 지역의 경영이었다. 속달의 주민은 대부분이 동래정씨 구성원이거나, 그 작인이었다. 또한 속달의 토지는 대부분이 종택을 비롯한 동래정씨 소유였다. 이 속에서 종택은 동래정씨의 구심점이자 속달의 주인으로서 속달의 대소사를 주관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종택의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지위, 그리고 문중 내에서의 위상으로 말미암아 입후와 종권을 둘러싼 갈등과 위기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동래정씨가의 지위와 역할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도 여전하여 마을을 대표하는 유지로서 당시 민관의 각종 현안에 참여하였으며, 때로는 그것이 강제되기도 하였다. 지역의 교육활동을 적극 주도해 나갔고, 동계의 연장인 상계의 운영과 동래정씨 대종중의 일원으로서의 활동도 활발하게 수행해 나갔다. 경제적으로도 새로운 경제활동을 시도해 나갔다. 연초와 주조사업을 꾸려나가기도 하였고, 국유미간지에 대한 개간과 대규모 대출을 통하여 전답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도 하였다.

반면 전라남도 영광의 외간에 자리잡은 연안김씨가는 조선후기, 특히 19세기 후반 이래 공격적인 경제활동을 통하여 토지를 확장해 갔다. 당시 흉년의 생계나 납세, 채무 등의 이유로 전답을 내놓는 농민을 대상으로 토지를 적극 매득하였고, 소작경영을 확장해 가면서 토지를 경영하였다. 이때 토지매득을 위한 자본의 상당부분은 종계의 운영을 통하여 확보하고 있었는데, 종계를 설립하여 확보한 계전의 식리활동을 통하여 자본을 확장해 나갔다.연안김씨가의 경제활동은 문서주의에 입각하여 이루어졌다. 토지 매매에 있어 작성하는 문서의 엄격함을 비롯하여, 매매를 증명하기 위한 구문기와 수표 등 증거문서의 확보와 필요한 경우 면장이나 이장 등의 공증, 전통적인 매매문기와 새로운 매매계약서의 동시 작성, 그리고 제도화된 문서규칙에 대한 완벽한 적응까지, 연안김씨가의 문서활동은 매우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연안김씨가의 경제활동은 토지조사사업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들어서도 연안김씨가는 토지 매득을 적극적으로 지속해 나갔다. 이 시기 자본의 마련 종계 비중은 매우 축소되었고, 금융기관을 통한 부동산담보대출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한편 연안김씨가는 상업자본가로의 변화를 시도하여 제주물산주식회사와 호남물산주식회사, 전남진흥관, 정읍상업조합 등의 창립과 운영을 주도해 나갔다. 그러나 대지주로서의 사회, 경제적 지위와 자본력을 가지고도 상업자본으로의 진출은 용이하지 않았고, 대부분 실패로 귀결되었다.

Ⅲ장에서는 앞의 두 양반지주가의 사례보다는 짧은 시기를 대상으로 한 두 집안의 경제활동을 살펴보았다. 하나는 강원도 강릉에 세거해 온 전주이씨 선교장의 조선후기 지주경영이고, 다른 하나는 전라북도 고창에 세거해 온 평해황씨가의 일제강점기 지주경영이다. 강릉 선교장은 강릉 경포호에 접하여 자리한 120칸 규모의 대저택으로, 전주이씨 효령대군 후손가의 고택이다. 선교장은 이내번(1703~1781)이 18세기 초에 강릉에 입향하여 선교장을 조성해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동지방을 대표하는 사족 가운데 한 가문이자 최고의 경제력을 지닌 양반지주가로 성장해 나갔다. 선교장의 경우 18세기 중엽 강릉에 정착한 이래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통하여 급격하게 지주경영을 확대해 갔다는 점에서 영광의 연안김씨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선교장의 토지거래에서는 영세 농민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사회경제적 신분의 토지소유자와의 거래가 주목된다. 특히 인근 지주에게 한 지역에 집중된 전답 및 산지를 매입하면서, 해당 토지에 부속되는 건물과 나무까지 함께 대량으로 매입하는 대형의 복합매매방식은 선교장이 어떻게 ‘장원’으로서 성립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고창 평해황씨가의 사례는 일제강점기 황상익(1888~1936)이라는 한 인물의 경제활동이 중심이다. 앞의 세 가문이 지역의 유지이자 대지주였던 것과는 달리, 평해황씨가는 중소지주로서 일제강점기에 급속한 성장을 이뤄낸 경우이다. 1915년 140두락 정도에 불과하던 평해황씨가의 토지는 1933년이면 무려 1,693두락으로 증가하였다. 이렇게 확대된 토지의 소작경영과 함께 종계 자산의 식리운영도 주요한 경제활동이었다. 그런데 계전을 차용하는 다수는 평해황씨가의 소작인이었으며, 이들은 동시에 피고용인으로 평해황씨가의 잡역이나 농사에 삯을 받고 동원되기도 하였다. 결국 농민들은 평해황씨가와 지주-소작의 기본적인 생산관계 이외에 채무와 고용 등의 중첩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평해황씨가는 이를 통하여 지주경영을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갈수 있었다. 마지막 보론에서는 1774년경 제작된 『순천부서면가좌책』을 분석하여 18세기 후반 순천부 서면이라는 한 지역의 농업경영과 사회구조의 실태를 검토하였다. 이 글은 양반지주의 경제생활에 대한 사례 연구는 아니지만, 조선후기 한 지역 주민들의 농업경영 실태와 그에 기초한 사회구조를 파악함으로써 조선후기 양반지주가 성립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하여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소수의 부농과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농업 노동력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주민의 1/3에 달하는 빈농과 무전무전(無田無佃) 농민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 이상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민간 고문서를 연구해왔다. 동래정씨가 등의 고문서를 접하게 된 것도 이를 통해서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해당 양반지주가에 세전되어 온 수천 점의 고문서들을 파헤치며 수많은 퍼즐을 맞추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장기간의 경제생활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연구를 통하여 조선의 사회·경제적 지배층이었던 양반지주라는 역사적 주체가 어떻게 존재하였고, 식민지기 일본제국주의라는 새로운 지배권력 하에서 자신의 사회·경제적 토대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대응하였으며, 그 전개가 어떠하였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한국사에서 일제강점기의 성격과, 나아가 한국사회의 근대성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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