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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군포 속달 동래정씨가의 역사와 유물
군포 속달마을과 정난종 종택의 고문서_허원영 군포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정난종 종가 기증 전적의 현황과 내용_이혜정 군포 속달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정난종 종가의 유물류 현황과 보존처리의 실제_성연심 군포 속달마을 관복 연구: 조복의 주인공을 찾아서_이민주 [동래군필적(東萊君筆蹟)]을 통해 본 정난종의 서예_유지복 2부 동래정씨가의 인물과 활동 군포 속달동 동래정씨 인물의 정치활동과 문중 입지_김지영 문과 합격자로 본 군포 속달 동래정씨 정난종 종가_이재옥 정학묵의 관직 일기와 「어목규도(禦牧規度)」_이은진 『주영편(晝永編)』 · 『현동실유고(玄同室遺稿)』를 통해 본 정동유의 사상적 특징_배다빈 3부 동래정씨가의 공간: 종택, 묘역 그리고 마을 조선 후기 경기지역 사대부가의 건축적 특징에 대한 연구: 군포 속달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종택을 중심으로_이동범 · 한동수 동래정씨 정난종 종택과 선산의 풍수_이호선 군포 속달 동래정씨 정난종 종택 사례로 본 공유지 전환_이민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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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정씨는 조선 초기부터 구한말까지 고관대작을 꾸준히 배출한 명문가이다. 정승 자리에 오른 동래정씨 인물은 총 17명에 달하는데, 이는 전주이씨 22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이다. 동래정씨 가문은 조선 전기 훈구파의 중진으로 활동한 명신이자, 서예에서도 업적을 남긴 동래부원군 정난종(鄭蘭宗, 1433~1489)을 파조로 하는 익혜공파(翼惠公派)의 종가이다. 정난종은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의 수리산 기슭과 그 일대를 왕으로부터 사패지(賜牌地)로 받았고, 그의 장자 정광보(鄭光輔, 1457~1524)가 이곳에 거처를 마련한 이래로 후손의 묘역과 종택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정난종 종가가 500년 동안 사패지를 대대로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사회가 추구하는 정체성과 가치를 충실히 실천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정난종 종가는 동래정씨 문중을 대표하며 속달을 경영했고,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지역 유지이자 마을의 대표 가문으로서 지도적 역할을 해왔다. 현재도 종택과 구성원들은 마을과 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정난종 종가는 2012년에 문화유산국민신탁과 국민신탁 계약을 체결하여 종택과 묘역, 전답 등 7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증하여, 토지의 혜택을 시민과 공유하는 뜻깊은 선택을 했다. 또한 2015년과 2017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가전유물과 전적 일체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증했다. 금관조복과 서화, 편액을 비롯하여 정난종의 필적 등 문화유산 가치가 높은 사료가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고문서를 포함한 전적은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지는 동래정씨 정난종 종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역사를 조명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