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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어진의 원류
2장 고려시대의 어진 3장 조선시대의 진전제도와 어진 제작 과정 4장 조선시대의 어진 제작과 봉안 5장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어진 6장 조선시대 어진의 특성과 사회적 의미 도판목록 참고문헌 |
Cho,Sun-Mi,趙善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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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할의 완성도면 극진한 것이라
어진 제작은 까다로운 과정과 절차를 거쳐 완성되었으며, 군왕 이하 여러 대신과 화가, 장인 들에 이르기까지 인원들이 폭넓게 동원되고 엄중한 절차를 거친 거국적 사업이었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주목할 것은, 이와 같은 당대 최고의 화가, 거국적 배려, 세심한 봉심을 거쳐 산출된 어진이 종국엔 ‘칠분모(七分貌)’ 즉 7할의 완성도면 극진한 것이라고 평가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최고로 잘 그려야 70퍼센트의 완성도 밖에 도달할 수 없다는 엄격한 감식 기준이야말로 초상예술에서 ‘전신사조(傳神寫照)’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단적으로 대변해 준다. 한편 그와 같은 엄격한 태도가 초상화가들을 독려해 탁월한 초상화 작품들을 산출하게 했다. 이런 이유로 제12대 임금이었던 인종은 생전에 어진을 그리지 않았을 뿐더러 사후에도 그리지 말라고 단단히 유언을 남겼다. 그의 뒤를 이은 명종은 이러한 유지를 받들어 인종의 어진 추사를 강행하지 않았으며, 결국 인종어진은 제작되지 못한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 이와는 반대로 제26대 임금이었던 고종은 어느 왕보다도 어진 제작과 그 상징적 의미를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왕의 위상 제고와 권력 강화를 위해 자신의 어진 제작 사업을 중시하고 여러 차례 공식적인 절차 외에 사적으로도 어진을 제작하였다. 특히 당시가 되면 어진에 대한 기존 관념이 희석되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백성들 사이에 고종 사진 갖기 운동을 퍼졌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