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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새벽1 안개 새벽2 홀뫼 아침 큰내 골짜기 어머니 검님 낮전 오합사 복신 한낮 전쟁터 흑치상지 낮후 신촌현 형 둘째 날 낮전 도독성 천득 산이 낮후 시루성 고랑달 셋째 날 한낮1 사포 한낮2 솔섬 한밤 달빛 후기 작가의 말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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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대국大國과 정면으로 맞서 이길 수 있는가? 백제 사람들 처지도 딱하게 되었다. 백제를 멸망시킨 원수들인 저 당과 신라가 저희끼리 맞붙어 싸움을 벌이면, 그러잖아도 당이 세운 도독부를 따르네 마네 하며 쪼개진 백성들은 어느 편에 서야 목숨을 부지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이 판에 고구려군까지 나타나 성을 점령했으니, 정말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고구려 사람들 눈으로 보면, 도독부의 벼슬아치인 형은 당나라 사람과 한 족속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핏줄과 사는 땅을 가지고 네 편과 내 편, 네 나라 내 나라를 가르던 시절은 지나갔다.
---「첫째 날―새벽 2 홀뫼」중에서 지금 당군의 주력부대는 사비성과 웅진성에 웅크리고 앉아 여간해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 전쟁은 알고 보면 삼한에서 태어나 서로 통하는 말을 쓰며 비슷하게 사는 족속끼리의 싸움질인 셈이다. 나라 잃은 백성, 주인 노릇 못 하는 족속의 꼴이 이토록 어지럽고 어리석다. 백제 사람은 말할 것 없고, 삼한 사람 모두한테 정말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게 이 나당전쟁이다. 삼한 땅에 당을 끌어들인 신라가 참으로 원망스럽다. 이 땅에서 10년 넘게 계속되는 이 한심한 싸움은 도대체 언제나 끝날까? ---「첫째 날―아침 큰내 골짜기」중에서 짐승이라니, 아아 짐승만도 못하다! 물참은 비로소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패배가 또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슬픔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사람의 목숨이 이토록 약하고 값어치 없는가? 사람이 사람을 이래도 되는가? 그저 숨이 막힐 따름이었다. 아무리 전쟁이라도 칼과 창 따위로 이토록 많은 장정을 살육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물참은 그 광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첫째 날―어머니」중에서 하지만 임존성 전투 얼마 후 의자왕과 왕족, 신하와 백성, 도합 1만 2천여 명이 당에 포로로 끌려갔다. 노예 신세로 당의 군선에 실려 타국으로 떠나는 이들을 보러 백성들이 백강 가의 산마루마다 지천으로 깔렸다. 〔……〕포로 가운데는 물참의 아버지와 형, 큰집 식구들도 들어 있었다. 물참은 그들이 실린 배가 멀어질 때까지 백강을 따라 말을 달리며 울었다. 강폭이 넓어지고 바다가 가까워지자 배들은 점점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람이 이렇게 다른 족속의 노예가 되어 말과 풍속이 다른 만리타국으로 끌려가다니…… 물참은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오래도록 강가에 서 있었다. 전쟁에 패한 족속에 관해 글을 읽기는 했으나, 막상 당하고 보니 끌려간 이들처럼 자기도 그제까지의 삶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첫째 날―어머니」중에서 그런 말을 들을 적마다 물참도 슬픔에 빠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살기가 죽기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순간이지만, 삶은 계속되었다. 멀쩡하게 두 눈을 뜬 채 나라와 가족을 빼앗긴 괴로움을 되씹으며, 전쟁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애달픈 모습을 날마다 겪어야 했다. ---「첫째 날―어머니」중에서 백제 사람이 고구려 사람과 손잡기를 바란 까닭은, 둘의 적이 당과 신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구려 부흥군이 일어나기는 했으나 신라와 먼저 손을 잡고 말았다. 당을 물리치기 위해 적과 연합한 것이다. 나당 간의 전쟁은 지금 신라 혼자서만 싸우지도 않는 데다 백강 남쪽에 아울러 요동에서까지 벌어지고 있다. 도독부한테 도독성을 빼앗은 고구려 부흥군도 내일 신라군과 만난다고 한다. 이번 싸움은 어쩐지 나당 간에 땅을 뺏는 국경 분쟁에 그치지 않으며 두 나라만의 이해관계도 넘어서는, 이제껏 일어난 싸움들과는 다른 전쟁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렇다면 백제는, 당나라의 도독부 허울을 강제로 뒤집어쓰고 있는 백제 사람은, 지금 어찌해야 마땅한가? ---「둘째 날―낮전 도독성」중에서 스승은 어제 간곡하게 만물은 변한다고 했다. 저 지붕이 내려앉은 집들처럼, 뙤약볕 속에서 썩어 문드러지던 주검처럼. 아니 그 몸뚱이가 살았을 적의 팔팔한 움직임들처럼, 온갖 것은 변하여 다른 게 되고 또 사라진다. 변치 않는 건, 변하는 일 오직 그뿐이다. 그러니 추위가 물러가면 따듯한 봄이 오듯,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 새것들이 들어찰 것이다. 때를 잘 탄다면 양지바른 자리에 좋은 집 지어 마을을 이루고, 타고난 수명대로 대를 이어 살 수도 있을 터이다. 끝나는 게 아니라, 다만 그렇게 변할 것이다. 그런 때는 언제, 어떻게 오는 것일까. ---「둘째 날―낮후 시루성」중에서 “우리 처지가 정말 묘하구나! 이번 싸움에 이긴다면 신라군에 섞여 사비성으로 들어갈 텐데, 그러면 우리는 나라가 망할 때하고 완전히 뒤바뀐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참으로 그때 옛날을 생각하면, 백제 사람 그 누군들 마음이 아프지 않겠느냐?” ---「둘째 날―낮후 시루성」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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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팬데믹의 시대에 다시 보는
삼국의 투쟁과 통일! “뜻이 통한다면, 피가 다르면 어떻고 원수 간이면 어떠냐? 세월은 빠르고 무심하게 지나간다. 억울해도 이미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고, 싫더라도 인정하면 마음 놓고 더불어 살 수 있다.” (「둘째 날―낮후 시루성」, pp. 254~55) 작가 최시한은 강미와 공동 집필한 『조강의 노래』(문학과지성사, 2019)에서 외세 침략의 현장이자 분단의 상처를 대표하는 한강하구의 잃어버린 이름 ‘조강’의 역사적 장면을 생생한 이야기로 복원해냈다. 그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쓰인 장편소설 『별빛 사윌 때』는 분단과 통합의 고통을 되풀이하며 민족적 공동체 의식을 처음으로 싹틔웠던 한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여전히 분단국가를 살아가는 한반도의 현실을 비추어낸다. 아울러 전쟁과 팬데믹에 닥쳐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금 되묻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독자들에게 국가란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우며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사색하도록 이끌어준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백제 부흥전쟁(660~633)은 한국사 초유의 독립 회복 전쟁이며, 동북아 고대사에서 4국(백제, 신라, 당, 왜국)이 참가한 큰 국제 전쟁이었다. 또 7년 후에 일어나 일곱 해 동안 계속된 나당전쟁은 삼한三韓이 연합하여 당을 몰아냄으로써 민족적 공동체 의식이 싹트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 전쟁들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료와 관심의 부족으로 한국 고대사의 이 시기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나당연합군에 일찍이 패망한 백제의 사정은 승자 중심의 역사 서술에 묻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별빛 사윌 때』는 1300여 년 전 머나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한국사에서 잊힌 이 시기를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되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백제 중심’의 서술로서 흥미롭게 되살려냈다. 소설의 주인공 물참은 과거엔 누구보다 백제의 부흥을 바라 마지않았지만, 이제는 과거의 미련을 내려놓고 오늘의 백성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한다. 망국의 백성, 정착한 유목민, 평민과 천민 그리고 여인까지 모두 한길에 모일 수 있는 타협과 화합의 길로, 모두를 살리는 이로움의 미래로 한 발 내딛는 것이다. 작가 최시한은 “세계화의 물결이 거센 오늘날, 나라 혹은 국가는 국경과 공동체 의식이 흐렸던 고대의 어느 시기와 비슷해져가고 있다”(「작가의 말」)라는 인식하에서 이 소설을 기획해 선보였다. 권력이든, 영토든 혹은 자본이든 그것을 위해 다른 이들의 삶에 폭력과 억압을 가하는 일은 역사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그 과거를 거울삼아 더 나은 공동체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라는 점을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각성시킨다. 물참 vs. 형: 누가 옳음을 정의하는가 “당의 군사가 지금 백제 땅에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이 땅의 곡식을 축내고 있는 그들마저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강자에게 의지한다지만, 남을 믿다가 그들이 떠나버리면 도독군마저 하루아침에 흩어지고 말겠지요. 강자를 위해 한 일은 깡그리 강자만 이롭게 하고, 우리한텐 빈손만 남게 될 터입니다.” 〔……〕 “내가 백제를 다시 살리고자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너는 동생이 돼가지고 여태 삼한 땅 비루한 자들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형한테 대드는 거냐?” (「첫째 날―형」, pp. 165~66) 소설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 구성이 다양한 상징과 역할을 담당하지만 이 중에서도 주인공 오서물참과 그의 형의 갈등은 이 소설의 문제의식을 구체화하는 대표적인 구도로 이해된다. ‘물참’은 우리말에서 “밀물이 들어와 최고조가 되는 시각”을 의미하는데, 어업뿐만 아니라 수운업까지 뱃일의 기본이 물참을 아는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짐작해보면 이 청년 무사의 친민중적 특성이 이름에도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그의 형은 귀족 가문을 이어받을 적자嫡子로서, 백제 멸망 당시 포로로 끌려갔으나 나중에 웅진도독이 되는 태자 부여융과 함께 당군이 되어 돌아오는 인물이다. 멸망한 백제 땅에서도 은둔하며 망국의 백성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방도를 끈질기게 모색했던 물참, 그리고 당이 백제 땅에 설치한 도독부의 높은 벼슬아치가 된 형은 소설 내내 대비되며 갈등 구조를 이룬다. 특히 소설의 결말부에 이르면, 주인공 물참은 백제의 원수였던 신라와 연합하기로 결심하고 따르는 이들과 함께 나당의 전쟁터로 출발하는 반면, 이와 대조적으로 그의 형은 집안의 원수에 대한 복수심을 안은 채 왜국으로 도망친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독자들은 주인공 물참이 방황을 거듭하다 마침내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 보다 극적으로 몰입할 수 있을뿐더러, 서로 다른 주장을 다각적으로 비교하면서 보다 입체적이면서 흥미로운 독서가 가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