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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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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팬데믹의 시대에 다시 보는
삼국의 투쟁과 통일! “뜻이 통한다면, 피가 다르면 어떻고 원수 간이면 어떠냐? 세월은 빠르고 무심하게 지나간다. 억울해도 이미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고, 싫더라도 인정하면 마음 놓고 더불어 살 수 있다.” (「둘째 날―낮후 시루성」, pp. 254~55) 작가 최시한은 강미와 공동 집필한 『조강의 노래』(문학과지성사, 2019)에서 외세 침략의 현장이자 분단의 상처를 대표하는 한강하구의 잃어버린 이름 ‘조강’의 역사적 장면을 생생한 이야기로 복원해냈다. 그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쓰인 장편소설 『별빛 사윌 때』는 분단과 통합의 고통을 되풀이하며 민족적 공동체 의식을 처음으로 싹틔웠던 한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여전히 분단국가를 살아가는 한반도의 현실을 비추어낸다. 아울러 전쟁과 팬데믹에 닥쳐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금 되묻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독자들에게 국가란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우며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사색하도록 이끌어준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백제 부흥전쟁(660~633)은 한국사 초유의 독립 회복 전쟁이며, 동북아 고대사에서 4국(백제, 신라, 당, 왜국)이 참가한 큰 국제 전쟁이었다. 또 7년 후에 일어나 일곱 해 동안 계속된 나당전쟁은 삼한三韓이 연합하여 당을 몰아냄으로써 민족적 공동체 의식이 싹트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 전쟁들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료와 관심의 부족으로 한국 고대사의 이 시기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나당연합군에 일찍이 패망한 백제의 사정은 승자 중심의 역사 서술에 묻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별빛 사윌 때』는 1300여 년 전 머나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한국사에서 잊힌 이 시기를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되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백제 중심’의 서술로서 흥미롭게 되살려냈다. 소설의 주인공 물참은 과거엔 누구보다 백제의 부흥을 바라 마지않았지만, 이제는 과거의 미련을 내려놓고 오늘의 백성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한다. 망국의 백성, 정착한 유목민, 평민과 천민 그리고 여인까지 모두 한길에 모일 수 있는 타협과 화합의 길로, 모두를 살리는 이로움의 미래로 한 발 내딛는 것이다. 작가 최시한은 “세계화의 물결이 거센 오늘날, 나라 혹은 국가는 국경과 공동체 의식이 흐렸던 고대의 어느 시기와 비슷해져가고 있다”(「작가의 말」)라는 인식하에서 이 소설을 기획해 선보였다. 권력이든, 영토든 혹은 자본이든 그것을 위해 다른 이들의 삶에 폭력과 억압을 가하는 일은 역사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그 과거를 거울삼아 더 나은 공동체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라는 점을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각성시킨다. 물참 vs. 형: 누가 옳음을 정의하는가 “당의 군사가 지금 백제 땅에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이 땅의 곡식을 축내고 있는 그들마저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강자에게 의지한다지만, 남을 믿다가 그들이 떠나버리면 도독군마저 하루아침에 흩어지고 말겠지요. 강자를 위해 한 일은 깡그리 강자만 이롭게 하고, 우리한텐 빈손만 남게 될 터입니다.” 〔……〕 “내가 백제를 다시 살리고자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너는 동생이 돼가지고 여태 삼한 땅 비루한 자들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형한테 대드는 거냐?” (「첫째 날―형」, pp. 165~66) 소설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 구성이 다양한 상징과 역할을 담당하지만 이 중에서도 주인공 오서물참과 그의 형의 갈등은 이 소설의 문제의식을 구체화하는 대표적인 구도로 이해된다. ‘물참’은 우리말에서 “밀물이 들어와 최고조가 되는 시각”을 의미하는데, 어업뿐만 아니라 수운업까지 뱃일의 기본이 물참을 아는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짐작해보면 이 청년 무사의 친민중적 특성이 이름에도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그의 형은 귀족 가문을 이어받을 적자嫡子로서, 백제 멸망 당시 포로로 끌려갔으나 나중에 웅진도독이 되는 태자 부여융과 함께 당군이 되어 돌아오는 인물이다. 멸망한 백제 땅에서도 은둔하며 망국의 백성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방도를 끈질기게 모색했던 물참, 그리고 당이 백제 땅에 설치한 도독부의 높은 벼슬아치가 된 형은 소설 내내 대비되며 갈등 구조를 이룬다. 특히 소설의 결말부에 이르면, 주인공 물참은 백제의 원수였던 신라와 연합하기로 결심하고 따르는 이들과 함께 나당의 전쟁터로 출발하는 반면, 이와 대조적으로 그의 형은 집안의 원수에 대한 복수심을 안은 채 왜국으로 도망친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독자들은 주인공 물참이 방황을 거듭하다 마침내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 보다 극적으로 몰입할 수 있을뿐더러, 서로 다른 주장을 다각적으로 비교하면서 보다 입체적이면서 흥미로운 독서가 가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