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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
조은
로도스 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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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오래 머문 곳에서

제1부_만남
젊은 세입자
사랑스러운 것도 불편할 때가 많다
파도치는 시간들
조심조심 첫 외출
그 회오리 속에서
마음이 기우는 순간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들
돌아가는 길

제2부_자리 찾기
유혹은 아름답고 발정은 추한가?
거리감이 사라질 때
달라진 환경
절대적 시간
뒤늦은 성장
또또의 가출
딱 한 번을 위해
놀라운 연기력
제3부_꽃을 놓는 자리
그 숨결
속도가 말해 준다
작은 고독
우리는 닮았다
아름다운 이웃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예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던

저자 소개 1

196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88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 외의 시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묵시론적 통찰을 보여주면 등단하였다. 그 이후 세 권의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 『무덤을 맴도는 이유』,『따뜻한 흙』,『생의 빛살』과 산문집 『벼랑에서 살다』,『조용한 열정』장편동화『햇볕 따뜻한 집』,『동생』,『다락방의 괴짜들』『또또』등을 출간하였다. 이 밖에도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최민식과 공동 작업한 포토 에세이집『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서울 사직동의 소담한 한옥에서 조요하지만 치열하게 글을
196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88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 외의 시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묵시론적 통찰을 보여주면 등단하였다. 그 이후 세 권의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 『무덤을 맴도는 이유』,『따뜻한 흙』,『생의 빛살』과 산문집 『벼랑에서 살다』,『조용한 열정』장편동화『햇볕 따뜻한 집』,『동생』,『다락방의 괴짜들』『또또』등을 출간하였다. 이 밖에도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최민식과 공동 작업한 포토 에세이집『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서울 사직동의 소담한 한옥에서 조요하지만 치열하게 글을 쓰며 살고 있다. 한편,어린이들에게 폭넓은 사랑과 우정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따뜻한 동화 쓰기에도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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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80쪽 | 280g | 138*200*20mm
ISBN13
9791185295077

예스24 리뷰

가난한 시인과 유난한 강아지, 17년의 기록
도서3팀 박숙경(beblue84@yes24.com)
2016.10.05.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습관처럼 나가 반나절쯤 앉아있는 동네 카페가 있다. 늘 야심차게 책이며 노트북을 바리바리 싸 들고는 가지만, 막상 하는 일은 창가에 늘어져 광합성 하다 조는 것이 전부인 내 아지트. 오가는 사람이 적은 한적한 골목 안쪽에 있는 이 카페 맞은 편에 어느 날 강아지 분양하는 가게가 하나 오픈하더니, 애완동물 분양 샵이며 병원, 호텔, 관련 용품을 파는 가게가 연달아 생겨 그곳은 이년 새 펫샵 거리가 되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작고 연약한 짐승에 일단 넋을 놓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실제로 애완동물을 들이고자 하는 결심은 쉬운 일이 아니라 의외로(?) 실구매자는 분명하다. 그래서 다행히도 이런 가게들이 연달아 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골목이 북적거리는 것은 아닌지라 그러한 변화가 주말의 휴식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기본적으로는 나도 개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 카페 밖의 풍경이 바뀌는 걸 얼마간은 즐겁게 감상했던 것 같다.

몇번의 계절을 지나며 관찰해 보니, 이 쪽 시장(?)도 패턴이 있다. 분양샵의 경우를 보자면 겨울, 특히 십이월 중순 전후로 가장 사람이 많고, 봄이 되면서 점점 줄다가 사월 말, 오월 초쯤 한번 더 방문객이 는다. 여름이 되면 거의 손님이 끊어지고, 그 때 리모델링을 하거나 더러는 주인이 바뀌는 가게들도 있다. 여름부터 추석 명절까지는 오히려 분양 보다는 애완동물 호텔 쪽이 문전성시다. 손님으로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가장 많다. 젊은 부부가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방문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지만 아이들은 거의 엄마한테 매달려 애원조가 되고, 엄마는 무언가 끊임없이 다짐을 받는 듯한 태도다. 부모와 성공적으로 협상을 마치고 새 식구를 안고 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그 애정어린 눈빛이 오로지 품 안의 작은 생명체에게로만 향하는 모습은, 딱 그 순간만 있었으면 싶은 그림이 된다.

아이가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동물을 벗삼아, 동생삼아, 애인삼아 마음을 나누고 애정을 주기를, 또 받기를. 그 이년 동안 눈에 띄게 늘어난 '버려지는 애완동물'에 대한 뉴스를 생각해보면 그것도 참 요원한 바람이구나, 싶지만.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에게 무엇을 바랄까? 그들의 무엇이 되기를 바라고, 그들에게 어디까지 허락할까? 애완동물과 사람의 관계는 어떨 때 가장 이상적일까? 그 생명의 죽음과 그로 인한 애착의 분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는(못하는?) 나에게는 사직동의 가난한 시인과 유난스러운 개 또또, 이 조합도 어느 순간에는 견디기 어렵다. 말 못하는 짐승이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무서운지, 상처를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그 치열한 시간이, 그래서 '고작 짐승'으로 치부할 수 없는 그 관계가 슬프다. 아, 또또가 그저 예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것만으로 제 할 일을 다 할 수 있었더라면. 차라리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초반에 의사가 짐작했던 것처럼 목숨이 길지 않았더라면. 마음을 열고, 공간을 공유하고, 결국은 이 작은 개가 통과하는 시간의 흐름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련의 기록을 ‘위안’이었다고 말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을 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개를 계속해서 예뻐하겠지만, 기르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롯이 나에게 의지하고, 나의 기쁨에 곧 저의 기쁨이 되는, 의심도 없고 한마디 불평도 없는 생명의 무게는 절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예쁘고 가여운 것들은, 최근 들어서는 길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마음의 빗장을 열려고 한다. 무수한 이야기를 담은 그 반질반질한 눈을 보며 용기 없는 나는 그들이 떨어져 나온 따뜻한 품으로 돌아가기를, 너무 오래 길 위에서 헤매지 않기를 무책임하게 바랄 뿐이다.

책 속으로

그 세월 동안 한결같이 내 곁에 있었던 존재는 상처 받은 채 내게로 왔던 작은 개 또또였다.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은 여러 이유로 변덕이 잦았지만, 또또만이 고른 마음으로 내 옆에 있었다. 잡종 개였던 또또만이 내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슬픔도 묵묵히 덜어내 줬다. 또또는 한 번도 내게 싫증을 내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나의 시시한 면면을 누설하지 않았고, 인간을 통해서는 줄일 수 없었던 나의 아픔을 조용히 나눠 가지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같이 사는 동안 내게 기쁜 일도 있었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밖으로 나도느라 우리가 같이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으니 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또또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처럼 나는 삶이 내게 주는 무게를 또또를 통해 덜어내곤 했지만, 같이 사는 동안엔 그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했다. 뒤늦게 그걸 알고 뭉클뭉클 솟구치는 고마움을 느꼈을 때 또또는 이미 폭삭 늙어버린 뒤라 우리 앞에는 안타까운 시간만 남아 있었다.
--- p.10

정말이지 젊지 않으면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지 못한다. 지나치게 모든 일을 희망적으로 보고, 희망적인 말만 늘어놓는 사람도 사실은 의식이 늙은 자이다. 지나친 희망은 마약처럼 맨 정신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권태와 고통을 잊게 할 뿐이다. 운명이니 팔자니 하는 말을 자주 끌어다 쓰는 섣부른 관용과 희망에도 노쇠한 정신이 들어앉아 있다. 고통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사람들만이 젊은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 p.23

나는 또또가 잘 지내길 바랐기 때문에 힘들 때 도와줄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내 소유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나는 어디에도 묶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내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의식적인 삶이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온전한 나의 선택이었고, 그로 인한 온갖 불편과 결핍을 나는 꿋꿋이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를 잘 알고 있는 가족들도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남의 개를 데리고 오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또또와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p.41

같은 어려움을 겪어도 무딘 사람은 적당히 팔자타령이나 하며 넘어갈 수 있는 일에 어떤 사람은 일생을 망쳐버릴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어떤 사람에겐 적당한 자극이 되는 비하의 말이 어떤 사람에겐 인간 전체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하기도 한다. 또또는 내가 봤던 그런 유형의 사람만큼이나 과민했지만 그로 인한 파장이 다른 곳을 향하지는 않았다. 공포로 머릿속이 뒤엉켜 버렸지만 고작 자신을 지키려 방어할 뿐이었다. 나는 지금껏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을 여럿 봤는데 그들은 늘 도움을 받았던 사람을 향해 손톱을 세웠다. 큰 부담감을 뒤로 하고 도와줄 수밖에 없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했던 자신의 행동은 다 잊고, 그들은 떠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분노의 과녁으로 삼았다.
불행하게도 내게도 그런 성향이 어느 정도 잠재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 나의 공격성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육체가 아닌 상처가 가장 오래 가는 의식을 겨눈다. 그로 인해 이따금 통탄의 반성문을 쓰곤 하지만, 그 같은 일은 어느 순간 다시 되풀이되곤 한다.
--- pp.82~83

개들은 정말이지 인간의 속된 감정을 정화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존재이다. 인간에게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들의 순정과 순수함이 주는 위로에 매혹되면, 개와 살면 일생이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자 사는 젊은이가 개와 너무 밀착되어 생활하는 것을 조금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세상을 알 만큼 아는 나이 든 독신들이 그렇게 지내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같이 살고 있는 개에게서 얻는 정서적 위안과 평화를 변덕스러운 인간관계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어 다시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164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이상하게도 또또는 한 번도 나를 혀로 핥은 적이 없었다. 녀석이 다른 사람을 핥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내가 17년 동안 개와 같이 살았던 것이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동시에 나는 이것이 한 마리 개에 관한 글이 아니라 한 생명에 관한 글임을 깨닫는다. 예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던…

--- p.179

출판사 리뷰

만남

시인이 또또를 만난 것은 개량한옥, 그러니까 사직동에서 찾은 시인의 두 번째 거처에서였다. 또또와의 첫 만남을 시인은 다음과 같이 추억하고 있다. 그때였다. 갈색 실꾸리 같은 것이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에 끼어 내 쪽으로 굴러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 그것이 둥글게 오므라들며 마른 큼직한 플라타너스 잎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뒤 그 나뭇잎이 회오리치는 바람에 굴러 내 발목에 와 닿았다. 열리지 않는 문의 의미를 병적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을 때였다. 곧이어 무엇인가가 내 바지를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고, 그 느낌은 계속되었다. 뭔가가 이상해 허리를 굽혀 발치를 내려다보던 순간, 깜짝 놀랐다. 갈색 나뭇잎이거나 실꾸리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너무도 예쁘게 생긴 작은 강아지였다. 나는 그때껏 그렇게 예쁘게 생긴 강아지를 본 적 없었다. 강아지는 상냥하고, 명랑하고, 예쁘고, 포근하고, 사교적이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시인은 또또를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했다. “강아지는 ... 예뻤지만, 나는 녀석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시인은 어린 시절, 키우던 개의 폭력적인 죽음에 대한 고통스런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 살쯤이었던가. 집에서 키우던 사랑스러운 강아지 “마루”가 어느 날 아버지 친구들에게 음식으로 넘겨졌던 것이다.

내가 동물들, 특히 또또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것은 그들의 운명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사한 집 대문 안에서 마주친 또또 역시 내겐 앞날이 뻔한 잡견이었을 뿐이다. 또또 역시 내가 그 동안 무수히 보았던 동물들이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의 길을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또또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다.

그러다 시인은 어느 날 우연히 또또가 주인집 식구들로부터 맞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또또는 심한 구타에 시달리고 탈골로 인한 통증에 시달리면서 병들어 갔다. 인간에 대한 공포로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타로 그 상태는 나날이 나빠졌고, 담당 수의사는 또또가 길어야 3년 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시인은 이런 또또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해주고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서 같이 자면서 천천히 마음을 열게 된다. 집 안에서는 구타의 공포에 떨던 또또도 시인이 데리고 함께 외출하면 제법 먹기도 하면서 안정감을 보였다. 이런 또또와 같이 살게 되면서 시인은 그의 고통과 아픔을 같이 겪으며 가까워지게 된다.

또또는 점차 시인과의 인왕산길 산책을 통해서 큰 위안을 얻게 되고 시인의 방에 들어와 있는 시간이 점차로 길어졌으며 어느덧 완전히 같은 공간에 사는 한 식구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시인은 2000년 지금까지 사는 한옥집으로 이사한다. 규칙적인 산보 덕에 또또는 조금씩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시인도 또또도 모두 자연과 흙을 사랑했다. 시인은 이 시절은 이렇게 회고한다. 한옥인 이 집에 와서 또또도 많이 치유되었지만, 나도 내면이 많이 단단해졌다. 이사하기 전까지는 가여워 어쩔 수 없이 돌봐주고 있던 또또에게 갖던 부담감도 거의 사라졌다. 비로소 나는 진심으로 또또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 입에서는 “또또가 이젠 조금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 또또, 너무 착해!” “예쁜 또또!”라는 말로 쏟아져 나왔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이 둘은 산책과 여행, 그리고 애정과 헌신을 통해 관계를 굳건히 했다. 시인이 마흔을 넘기면서 신체적 노화를 의식하기 시작할 때쯤, 또또의 노화도 같이 찾아왔다. “늘 나보다 일이 미터 앞에서 걷던 또또는 한 세월 나와 나란히 걸었고, 언제부턴가는 한두 걸음 뒤에서 걷고 있었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오래도록 같이 사는 동안 또또가 내 일을 방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녀석은 자신을 데리고 이사한 나를 세상에서 가장 힘 센 사람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녀석의 자존감을 나는 지켜주려고 점점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녀석이 내 품안으로 뛰어들며 하던 일을 방해했던 때는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치던 사나운 여름날뿐이었다.

또또는 예민하고도 자존심 강한 아이

또또는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고집스러운 강아지였다. 그래서 시인과 참으로 많이 싸우기도 했다. 또한 지나치게 예민한 강아지였다. 병원에 가서도 치료를 빨리 끝내기 위해 항상 의사와 미리 작전을 짜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집 밖에서 또또는 조용한 성격의 강아지였다. 시인은 또또와 외출할 때 종종 그를 전용배낭 속에 넣어 다녔는데, 또또가 시인을 곤란하게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또의 본래적인 성격을 조금씩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시인은 그와 더 깊은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게 된다. 잠깐의 해외여행에서 돌아와서 또또를 만난 시인은 회상한다.

돌아오니 또또는 얼어 죽지도 맞아 죽지도 굶어 죽지도 않고 마당에서 슬픈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한동안 못 보던 나를 반겼으되 너무도 슬퍼 보이던 그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개에게도 그처럼 복합적인 표정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집을 오랫동안 비웠던 보호자가 돌아오자 안심하는 한편 서운함과 노여움도 한꺼번에 방출하는 아이 같았다고나 할까. 그러고 나선 재깍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슬퍼하는 속 깊은 아이 같았던 또또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또또는 고집스러웠다. 처음 맨 목줄이 싫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자리에서 꼼짝 않고 서 있는 바람에 시인이 결국에는 목줄을 포기했을 정도였다. 시인은 돌아본다. “사람과 마찬가지도 개도 성향이 다 다른데, 또또의 특징을 꼽으라면 ‘극도의 예민함’과 ‘개로서는 가져선 알될 자존심’을 가졌던 개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은 또또가 내부의 통증과 고통은 아주 의연하게 잘 견디어냈노라고 회고한다. 또또가 무서워하던 것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의 손이었다.

나는 또또와 함께 사는 동안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만일 내 눈앞의 개가 그처럼 공포감에 짓눌려 있지 않았다면?’
‘그 개가 지금껏 내가 봐왔던 어떤 개보다 나약하고, 그것이 극도의 예민함에 뿌리를 둔 본질과 닿아 있지 않았다면?’
대답은 늘 같았다. 그랬다면 나는 또또를 내 삶 안으로 절대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다.


분노와 슬픔, 시인은 자신 안에 자리 잡은 그 힘겨운 감정들을 또또에게서 다시 발견하게 된다. 이 일체감 혹은 동질감이 그들의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개를 기르다 보면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가끔 있는데, 또또는 그런 느낌이 훨씬 강했고 더 잦았다. 어느 때는 ‘하는 행동이 나랑 똑같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무속에서는 그 집에 들어오는 개는 그 집의 조상이라는 황당한 말을 하는 것도 같다. 정말로 우리가 이성으로 납득하지 못하는 윤회라는 것이 있다면 또또는 분명 전생에 사람이었거나 내세에 사람이 될 개처럼 보였다.

이별

또또가 죽은 원인은 자궁에서부터 시작된 염증이었다. 2012년 6월 19일은 시인과 또또가 마지막으로 인왕산을 산책한 날이다. 이날 이후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고 고름을 쏟아내며 자신의 생명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또또는 22일에 세상을 뜨고 만다. 이 책의 마지막 절의 제목처럼 “예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던” 또또는 17년 동안 같이 지냈던 시인을 떠나갔다. 시인은 작별인사를 한다.

“또또야. 오래 오래 살아. 나 이젠 네가 하나도 힘들지 않아. 처음부터 너랑 이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해... 또또야, 넌 정말 훌륭한 개였어. 정말 멋있고 착했으니까 아주아주 좋은 곳으로 갈 거야”

또또가 떠난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그가 먼저 사직동을 떠났고, 이제 시인도 머지않아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또또와 같이 지냈던 사직동을 떠나야 한다. 또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고 시인은 작은 거처를 옮길 뿐이다. 그러나 시인의 사직동, 조은의 사직동은 크게 변모할 것이므로 어쩌면 또또처럼 시인도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또또와 지낸 17년은 시인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시와 문학과 세상과 혼자 치열하게 싸워왔던 시인은 또또가 그 곁에 와주었기에 생명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시선을, 그리고 세상에 대해 좀 더 넉넉하고도 따뜻한 긍정의 시선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것들의 가치, 한 순간의 바람에도 날아가 버릴 수 있는 가볍고 작은 것들이 지닌 본래적인 가치를 시인은 또또와의 오랜 사랑에서 더욱 절감했다. 그러니 이 책은 또또라는 작은 생명에 대한 기록이고 그에 대한 많은 인간들의 폭력에 대한 고발이며 더 나아가 흙 위에 거하는 모든 생명들의 뜨거운 연대에 대한 호소이기도 하다. 서로 애인이었고 친구였으며 식구이자 동료였던 강아지 또또와 시인 조은. 그 행복한 동거에 대한 이 기록이 독자들에게도 작지만 따뜻한 축복의 경험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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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함께 한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들을 위하여
    201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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