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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긴 하루, 짧은 세월
짙은 분냄새 지독한 편식 소중한 것들은 무겁다 쓸개를 핥는 시간 일찍 피는 꽃들 허공을 딛는 마음 순간의 진실, 영원한 진실 어둠에는 덮고 자던 이불 냄새가 이기주의의 여러 모습들 난해한 사랑이여 보이는 것보다 더 엉뚱한 날들 내가 만일 그 시대를 살았다면 손의 미각 행운을 돈으로 받아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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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뿌리내린 한 시인의 성장통, 삶의 열정
“무엇인가를 자기만의 시각으로 뚫어지게 바라봐야만 직성이 풀리고, 그것 때문에 세상과 마찰하며 자기 양심에 시달리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라면 조은은 어린시절부터, 그 좁고 험한 길을 걸어왔다. "봄이면 찹쌀떡처럼 하얀 마른버짐을 얼굴에 뒤집어쓴 채 영양이 부실한 부스스한 머리를 소쿠리처럼 이고 다니던” 조은은 지독한 편식가였다. 잔인하게 개를, 돼지를, 닭을 잡는 광경을 본 이후부터 그는 “아무 거나 먹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유는 소의 젖이라서, 버섯은 씹을 때 느낌이 고기 같아서, 생선은 눈을 말갛게 뜨고 있어서, 꿀은 인간들이 조그만 벌들에게서 빼앗은 거라서 먹을 수 없었다. 어린시절부터 시작된 ‘지독한 편식’은 그가 앞으로 겪을 불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지독한 편식」)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어둡고 불만이 많은 아이’였던 조은은 느릿느릿 울면서 등교하느라 지각하는 날이 많았다. 어느날 하교길에서 기차를 본 순간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질투와 분노가 떠올라 돌팔매질을 하기도 했다. “탕탕탕 하며 기차 지붕을 두드리는 돌멩이 소리가 어린 마성(魔性)을 일깨우는 노크소리처럼 나를 자극했다”고 조은은 회상한다. (「일찍 피는 꽃들」) 조은이 본격적으로 ‘불량 학생’이 되기 시작한 것은, 미션 스쿨인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부터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전교생이 줄을 서서 학교에서 뚝 떨어진 교회로 가 예배를 보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이건 절대 나의 의무사항이 아니야’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대열을 이탈했던 조은은 교장 선생에게 발각되어 한바탕 시련을 겪어야 했다. (「허공을 딛는 마음」) 학생 신분으로 영화관에 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시절 <스팅>을 보다가 학교 선생에게 들키는가 하면, (「보이는 것보다 더」) 어느 해 여름에는 친구 오빠들과 짧은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학교 선생님들을 만나고도 태연했다는 이유로 ‘정학이냐 퇴학이냐’의 위기까지 가기도 했다. (「난해한 사랑이여」) "선생님들이 마음만 먹으면 자아가 강한 제자들의 인생을 얼마든지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조은은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그때마다 어머니가 불려와 대신 용서를 빌곤 했다. 암흑으로 치닫는 자신의 손을 수없이 잡아줬던 어머니의 손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있음을 상기하는 시인은 늘상 희생하며 살아오다 지금은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애틋한 마음으로 돌아본다. 한편, 가족을 짐스럽게 여기고 집 밖으로만 떠돌았던 아버지에 대해서도 생각의 전환을 겪는다. 한때 젊은 여자와 데이트하는 아버지를 목격하고 깊이 원망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와서야 아버지 삶에 그 같은 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온다. 왜 그를 한 인간으로 크게 보지 못하고 아버지라는 자리에 앉혀놓고 인습이라는 끈으로 친친 동여매야만 직성이 풀렸을까, 후회가 된다.” (63~4p) 이처럼 시인은 상처의 기억을 은폐하거나 망각해버리지 않고, 정직하게 대면했기에 얻을 수 있는 성숙의 깨달음을 글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