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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 불사조의 언어
2. 소설, 타락한 시대의 초상화 3. 산문의 향기, 산문의 매혹 4. 세계의 작가들 |
南眞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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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에 항상 실패한다... 김현의 글과 사유는 내게 있어 내 바깥에 타자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내 속에 자리잡고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할 정도로 친밀한 것이고, 그런 만큼 나는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 비평적 거리를 유지하기 힘든 어떤 숨가쁨을 느낀다...
--- p.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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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남진우의 문학수첩《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가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열림원 '산문의 숲' 시리즈의 다섯번째 책으로, 작가가 지난 10여 년간 각종 언론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김종삼의 시「올페」의 한 구절을 딴 이 책의 제목에는 죽을 때 자기 직업이 시였노라고 자부하고 싶은 작가로서의 바람과 부끄러움이 담겨 있다.
시인의 시적 감성과 평론가의 논리적 면모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는 지난 시절 그 자신의 독서와 사유의 흔적이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인상적인 소묘이다. 제1부 <시, 불사조의 언어>에서는 언어로 이루어진 완벽한 미학적 구조물을 구축한 서정주와, 황동규, 오규원, 시인이면서 투사요 현자였던 김지하, 1990년대 시의 새로운 문법을 형성한 안도현과 원재훈 등의 젊은 시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그는 '시의 죽음' '시의 위기'에 대한 쓸쓸한 소회를 밝힌다. '오늘날 '문학의 죽음'을 알리는 선지자의 발 앞에는 시의 시신이 담긴 검은 관이 놓여 있다. 과거의 명성을 뒤로한 채 입관 절차까지 마친 시는 이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갈 운명에 처해 있다.' 제2부에서는 <소설, 타락한 시대의 초상화>라는 제목 아래 '너 하나의 탄생을 위해 전후문학은 10여 년을 기다려야 했다'라는 탄성을 발하게 했던 김승옥과, 서정인, 박상륭, 김영하, 배수아, 전경린 등 소설의 새로운 흐름을 연 작가들과 문제작들을 다룬다. 제3부 <산문의 향기, 산문의 매혹>에서는 깊고 해박한 지식과 섬세한 분석력, 아름다우면서도 고도로 함축적인 문체를 갖추었던 평론가 김현과, '문학저널리스트'라는 말을 생겨나게 한 김훈, 탁월한 산문의 미학을 체득한 김화영, 이진경과 김용호의 영화평론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제4부 <세계의 작가들>에서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밀란 쿤데라, 이오네스코,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이스마일 카다레, 미셸 투르니에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한편 이 책에서는 책벌레이고 독서광인 남진우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문학과 출판에 관련된 일을 줄곧 해온, 이른바 '활자밥'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부터 그에게 책이란 어린 시절부터 상상의 왕국으로 잠입해 들어가는 통로였다. 이 책의 곳곳에는 '책'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태초에 한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존재가 거기서 발원했으며 눈부신 이미지와 흥미로운 이야기로 펼쳐졌다가 다시 거기로 귀환하는, 대문자로 씌어진 한 권의 책.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말한다. ……말씀이 일정한 의미를 담보하고 있는 하나의 언술 행위라면 그것은 바로 책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것은 무無의 어둠을 관통하는 한 줄기 빛이며 깊은 정적의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신생의 소리이다.' '지상에 머물다 간 존재가 어떤 형식으로든 이 땅에 남기는 삶의 흔적, 그리고 그 흔적의 연쇄, 바로 그것이 책인 것이다. 인간의 역사란 태초의 책에서 흘러나온 무수한 책들의 개별적 축적과정이며 그 위에 다시 또 다른 책을 한 권 보태기 위해 애쓰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 이르러 ……책이, 세상이란 미로에 갇힌 사람들을 출구로 이끄는 표지판 구실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미로의 내부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미로 역할을 하기에 이른 듯하다. ……듣는 사람의 가슴에 내밀한 속삭임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귓전을 스쳐 지나가는 소음으로 여겨지고 있다.' 펼치기만 하면 자신의 삶과 세계의 비밀을 송두리째 풀어줄 책을 찾아 책의 미로 속을 헤매던 그는 이제 가슴을 뛰게 만들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언어의 충격을 더이상 기대하지 않으며, 세상의 갖가지 문제들을 해결해줄 복음이 어떤 책에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무수한 책들의 흐름을 지켜보며, 그 책들이 자신에게 남기고 간 흔적을 더듬어볼 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흔적들을 언어의 주형으로 떠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