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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있고 싶다. 무대 위에 책상을 하나 두고, 거기 앉아서 매일 시를 쓰면 좋겠다. 관객들에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면서. 왜 지우는지 설명하면서.
--- p.5 나는 가끔 도어락 비밀번호를 까먹는다. 어제도 편의점에 다녀오면서 한참을 문 앞에 서 있었다. 매일 들어가고 나오는데 어떻게 까먹을 수 있지.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힌다. --- p.69 시에게는 종종 배신이 필요합니다. 내가 만든 세계를 부정해줄 존재가. 타자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시에 쓴 것을 반대하는 누군가가. 분석하는 누군가가. 조금만 더 같이 고민하자고 요청하는 누군가가. 어쩌면 여러분 자신이. 혹은 그러한 형식이 내가 쓴 시에 존재한다면 어떨까? 그래서 이 수업의 제목은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입니다. --- p.73~74 나는 한 번 써먹은 형식은 웬만하면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시를 쓸 때 그런다. 시를 꽤 많이 썼으니까. 나는 이제 안 써먹은 방법이 별로 없다. 편하게 시도할 수 있는 형식이 거의 없다는 이 곤혹스러움이 마음에 든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즐거움을 느끼긴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을 만들면서 느끼는 재미도 있다. 나는 그 막막함이 정말 좋다. 자진해서 비좁게 만든 땅에서, 나는 오늘도 시를 계속 쓰고, 수업을 만든다. --- p.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