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절반쯤 읽었을까. 나는 내가 속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임지은 시인이 사물에서 신기한 규칙들을 찾아낸 줄 알았다. 세계에 마법을 걸고 있는 줄 알았다. 난 내가 이상한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임지은 시인은 이상한 얘기의 달인이 아니라 당연한 얘기의 천재였다. 임지은은 숨 쉬듯이 당연한 얘기만 한다. 너무 당연해서 내가 잠깐, 어제, 그제, 몇 달 전에…… 그게 그렇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까먹었을 뿐이었다. 언제 까먹었는지는 모르는, 어쩌면 한 번도 알았던 적이 없는 것만 같은 당연한 얘기들. 임지은의 당연한 얘기는 물음표가 달리지 않은 질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시집엔 당연하지 않은 얘기들도 있어. 최대한 사물을 긍정할 때. 무생물이 나를 딸, 이라고 불러도 특별한 일이 아닐 때. 세 번째 시집은 시집이 되고, 우리는 임지은을 세 번째 시집을 가진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정말 당연하지. 이름이 있다는 게. 이름이 없어도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게. 너무 당연해서 위로받는, 무서운, 시집, 시집,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