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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수업 2』를 내면서
1부 그리스도교, 철학을 만나다 01. 그리스도교의 탄생 02. 교부들의 투쟁 : 유스티누스 / 테르툴리아누스 / 클레멘스 / 오리게네스 03. 신플라톤주의와 형이상학 : 플로티노스 04. 영원한 행복 : 아우구스티누스 05. 고대의 끝에서 : 보에티우스 /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 2부 중세, 새로운 사유가 꽃피다 01. 중세의 아지랑이 : 에리우게나 02.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 안셀무스 03. 변증론의 시대 : 아벨라르두스 3부 스콜라철학의 탄생과 전개 01. 약동하는 중세 정신 02.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 : 시제 브라방 03. 신앙의 원형을 찾아서 : 보나벤투라 / 로저 베이컨 04. 신앙과 이성의 조화 : 토마스 아퀴나스 4부 스콜라철학의 황혼 01. 신을 향한 새로운 길 : 둔스 스코투스 02. 유명론의 승리 : 윌리엄 오캄 03. 내 안에서 피어나는 신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더 읽어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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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그리스도교는 그 각각이 출현했던 역사 배경과 지리 환경, 민족 기질, 문화 전통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어요. 세계관이나 인생관도 색깔이 달랐죠. 때로는 같은 주제에 대해 정반대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질적인 두 사상이 부딪혔으니 긴장과 갈등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철학자의 시선에서 보자면 그리스도교는 허무맹랑하고 허점투성이 종교였어요. 대개는 무시하고 지나갔지만, 어떤 철학자들은 조목조목 논박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리스도교로서도 철학이 그리 달갑지 않았어요. 여태 듣도 보도 못한 이론을 들고 나와서 자신의 믿음을 공격해대니 당혹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 p.15 맞아요. 그런 점에서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의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죠. 플로티노스 이후로 플라톤 사상은 언제나 그의 해석이 덧씌워진 상태로 이해되었어요. 중세가 알았던 플라톤,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에 전해진 플라톤은 모두 플로티노스가 바라보고 해석해 놓은 플라톤이었어요. 특히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교리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실제로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플로티노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교리를 체계화하기에 이릅니다. 플로티노스가 전해준 플라톤 사상은 장차 그리스도교의 철학적인 뼈대가 되었죠. --- p.99 우리가 사물을 보는 건 빛 때문이에요. 태양이 사물을 비추고, 사물이 그 빛 속에서 드러나기에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빛이 사물의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죠.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이데아 인식에서도 그런 작용을 하는 게 있다고 해요. 바로 하느님이 비추어주는 빛입니다. 여기서 ‘빛’은 상징적인 의미인데, 하느님의 본성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진리의 빛이고 사랑의 빛이죠. 하느님은 빛으로서 자기 정신 속에 있는 이데아를 비춥니다. 그리하여 이데아는 빛 속에 드러나게 되고, 우리 지성은 그 빛 속에 들어섬으로써 이데아를 볼 수 있고 진리를 인식 할 수 있다는 거예요. --- p.128 사람’에서 일치한다는 건, 실재론자들이 말하듯 ‘사람’에 대응하는 어떤 본질적인 실재가 있고 그것을 공유한다는 의미예요. 아벨라르두스는 일찌감치 이 생각을 버렸습니다. ‘사람임’에서 일치한다는 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사람인 한에서 다른 사태들과 동일한 연관 속에 놓인다는 걸 말하는 거죠.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그들이 사람인 한에서 맺는 사태의 관련성은 같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을 똑같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거예요. 아벨라르두스는 이 연관성이, 각각의 개별자를 보편적 술어로 부르게 하는 ‘공통된 원인(causa communis)’이라고 불렀어요. --- pp.280~281 천사 중에 그렇게 강렬한 사랑의 아이콘이 있어요. 바로 천사 ‘세라핌(Seraphim)’입니다. 세라핌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천사예요.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올라 그 외의 모든 것을 포기했죠. 그 사랑이 어찌나 강렬한지, 세라핌의 말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은 하느님을 향한 불길에 같이 사로잡힌다고 해요. 하느님에게 이르는 여정을 인도하는 보나벤투라의 ‘사랑’과 ‘정감’은 세라핌의 열망과도 같은 것이었죠. 그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화신이었어요. 그래서 중세 교회는 ‘세라핌적 박사’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그에게 부여했습니다. --- pp.376~377 아퀴나스는 그렇지 않다고 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창조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에 근거합니다. 어떤 세계를 창조할지, 어떤 시점에 창조할지, 심지어 창조할지 말지, 이 모든 게 하느님의 자유입니다. 따라서 창조된 세계는 필연적인 세계가 아니에요. 영원히 존재할 필연성도 없고, 시간적 시작이 있어야 할 필연성도 없습니다. 필연성이 없으니 철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없어요. 하느님은 영원한 세계를 창조했을 수도 있고, 시간적 시작이 있는 세계를 창조했을 수도 있고, 심지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다른 형태의 세계를 창조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 p.424 실제로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은 오캄에게서 종말을 고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떤 실패나 좌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달리 보면 이성이 신앙에서 해방되어 독자적인 앎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캄의 제자들은 이 길을 ‘현대의 길(via moderna)’이라고 불렀어요. 그들이 말하는 ‘현대’는 오늘날 우리가 ‘근대(modern)’라고 부르는 시기죠. 아니나 다를까 근대 학문은 이성의 자율성을 신뢰하고 경험 세계에 몰두하며 오캄이 예견했던 길을 꽃피웠습니다. 자연과학이 발달했고, 이성적 합리성을 진리의 척도로 여기는 철학들이 줄줄이 출현했어요. 그 모든 게 우리 시대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죠. 그런 점에서 14세기의 선구자였던 오캄의 정신은 지금도 생기있게 살아 숨쉬며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p.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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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지혜, 철학의 옷을 걸쳐 입다!
생존 전략으로 태동한 그리스도교 철학 그리스도교가 갓 태어났을 때, 그것은 정말 작은 종파였다. 확립된 교리도 없었고 교단 조직도 갖추지 못했다. 시련이 오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유대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채찍과 매질을 가하며 그리스도교를 핍박했고, 로마인들은 황제 숭배와 국가 종교 행사를 거부하는 그들을 사자의 먹이로 던져주었다. 거리에는 십자가에 매달려 불에 타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시신이 횃불처럼 밤을 밝혔다. 게다가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어린 아기를 잡아먹는다는 악소문까지 퍼지면서 그리스도교는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보다 더 치명적인 시련은 이방의 지식, 곧 그리스 전통의 철학으로부터 왔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철학으로 무장했고, 철학의 언어로 세계를 이해했다. 그들 눈에 비친 그리스도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오류의 덩어리였다. 신성한 존재가 부패하는 물질계로 스스로 내려왔다는 주장도 그러했고, 십자가에 매달려 불완전한 존재처럼 고통에 시달렸다는 설명 역시 그러했다. 로마의 철학자들은 이 모든 이야기가 “역겨운 이론”이라고 비난했다. 이 모든 위협에 맞서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교는 선택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유대식 화법을 버리고 대신 철학의 언어를 익히기로 했다. 신성한 지혜에 철학이라는 겉옷을 입히기! 이는 철학이 이미 대중의 교양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렇게 출현한 새로운 사유 방식이 바로 그리스도교 철학이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꿈꾸었던 그리스도교 철학 1400년에 걸친 위대한 사유의 역사 『철학사 수업 2 : 고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은 그리스도교의 탄생에서 14세기에 이르는 동안 그리스도교 철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소개한다. 교부들의 호교론을 거쳐 그리스도교가 플라톤 철학과 손잡는 과정, 중세의 탄생과 그리스도교의 중흥, 중세인들의 생기발랄한 사유와 논쟁을 그려낸다. 또 고대 그리스 학문을 재발견하면서 정점으로 치달았던 스콜라철학과 그에 대응하는 교회의 혹독한 조치는 그리스도교 철학의 숙명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이어서 근대를 예비하는 새로운 정신의 모티브를 소개하고, 그리스도교 철학의 한계와 종말을 극적으로 펼쳐 보인다. 지은이 김주연은 그리스도교 철학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신과의 일치’라고 말한다. 신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맞게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근본 고백이다. 하지만 신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아스라한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이생에서 어떻게 신을 만날 수 있을까? 언어와 이성이 한계에 다다르자 철학자들은 그것을 넘어서게 해주는 깊은 영성에 의존했다. 자신을 내려놓고 신과 피조물을 향해 불타오르는 사랑 속으로 들어서서 그들은 마침내 신을 대면했다. ‘나’가 멈춘 곳에서 ‘신’은 피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신비적 영성의 바탕에는 치밀한 이성적 사유가 놓여 있었다.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신앙과 이성의 조화’는 그리스도교 철학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철학은 신학의 시녀가 아니었다. 신앙과 이성은 인간의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았다. 신앙은 이성을 인도했고, 이성은 신앙을 완성했다. 철학을 통해 그리스도교는 세련된 고등 종교가 되었고, 그리스도교를 통해 철학은 후세로 이어질 수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온갖 색을 띤 빛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고대의 철학 개념들은 그리스도교의 빛을 받으며 자라고 풍성해진 것들이다. 그리스도교 철학을 새삼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알기 쉽고 흥미로운 서술로 그리스도교 철학의 풍성한 사유와 역사를 읽는다!! 철학책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지은이 김주연은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리스도교 철학사에서 주목할만한 개념과 이론을 선별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이야기를 풀어간다. 철학자들이 살았던 시대의 풍경과 그 속에서 왜 그런 사유가 필요했는지를 흥미롭고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또 주제마다 그 논리 구조와 철학사적 맥락을 상세하고 자상하게 짚어주어서 독자의 이해를 풍요롭게 해 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고중세 1400년에 걸친 그리스도교 철학의 흐름과 높은 수준의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철학자들의 고뇌와 환희가 마치 바로 옆에서 지켜보듯 생생하게 전해지고, 그들이 걸어갔던 수많은 길의 의미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와 더불어 위대한 사유의 궤적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덧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이 함께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철학사를 읽는 재미이자 이유이기도 하다. 다채롭고 풍요로운 고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의 향연에 독자님께서 함께 하시길 권해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