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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 / 대승 / 거상의 꿈 / 증인 / 약지 / 잃어버린 시간 / 양광 / 귀환 / 복수 / 평강의 큰 그림 / 두 번째 대결 / 수태 / 우경의 죽음 / 전쟁 준비 / 아들 / 백십삼만 대군 / 도강 / 수성 / 탈출 / 거짓 항복 / 살수대첩 / 거상居喪 / 모함 / 작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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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요택에 진입하지 않은 적의 후방을 치기 위해 투입되었던 아군의 일부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양량의 목을 베기 위해 많은 군사와 장수들이 황금 갑옷을 향해 앞다퉈 달려들었다. 놀란 양량은 황황히 갑옷을 벗어 던진 채 꿇어 엎드린 부하들의 등을 밟고 달아났다.
--- p.16 “그대도 나의 출신이 비천하니 이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가당치 않다 여기고 있는 게요? 아니면 ‘너’도 되었으니 ‘나’도 가능하지 않겠느냐, 그런 이유로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소리요?” --- p.38 내 품속에는 은가락지가 하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열어보니 하얗던 가락지가 적의 피를 뒤집어쓰고 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날 나는 그 은가락지의 색을 되돌리기 위해 닦고 또 닦았다. 하지만 닦는 것만으로는 예전과 같은 순백의 색을 얻지 못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새 은 가락지를 사러 나갈까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처음 은가락지를 사던 순간에 품었던 순심이 깃든 가락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네가 내 세상에 단 하나이듯이. --- p.71 태자 양광이 여러 지역을 돌며 미색이 빼어난 젊은 계집들을 납치해 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유부녀든, 여염집 처녀든, 유곽의 계집이든 상대를 가리지 않으니 양광이 지나간 자리에 들꽃조차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 p.88 “스승님의 부인이신 녹족부인이시오.” 그렇게 오랜 시간 꿈꾸고 염원하던 나의 가슴이 무너졌다. --- p.116 나의 칼이 그의 목젖에 닿는 순간, 그는 이를 악물고 그예 칼을 떨어뜨렸다.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긍지가 무너지자 참담함이 낯 가득 역력했다. 나 또한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었다. 아득바득 이기려고 했던 것을 후회하였다. --- p.138 “폐하, 적의 정군만 113만이 넘사옵니다. 그에 비해 우리 고구려는 밥 짓던 부녀자와 노망난 노인네, 갓 태어난 아이들까지 모두 나가 싸워야 수적으로나마 비등하다 할 수 있을 터인데 어찌 무리한 전쟁을 치르려고 하시나이까?” --- pp.197~198 초병은 안으로 들어가 나의 방문을 알렸다. 적의 사령관이 놀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장년의 적장이 진막 밖까지 쫓아 나와 나를 살폈고 동반한 자가 한 사람뿐임에 더욱 놀라는 눈치였다. “진정 을지문덕인가?” “그렇다. 내가 고구려 전군 총지휘관이자, 요동성에서 그대들의 병력을 막아냈던 바로 그 을지문덕이다.” 그들은 요동성에 있어야 할 내가 적진인 이곳에 와 있음에 몹시 당황했다. --- p.244 “문덕이 살수에서 적을 섬멸하였다 하오. 수제는 죽은 제장들의 수급조차 챙기지 못한 채 퇴각하였소.” --- p.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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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을지문덕이어야 하나?”
을지문덕, 그의 사라진 발자취를 이제는 찾아야 할 때다.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 『살수의 꽃』은 윤선미가 쓴 두 번째 역사소설이다. 첫 번째 역사소설인 『여제 소서노 1, 2』 이후 12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나온 이 책은 그간 발표했던 다수의 소설, 그간 활동했던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 작가 경험을 더해 빚어진 작품이다. 따라서 구성이 치밀하고 짜임새가 있어 문장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 툭 던진 문장 하나의 의미를 소설 뒷부분에서 ‘아하!’ 하고 깨닫게 된다. 소설을 다 읽으면 퍼즐 조각이 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쾌감을 가져다준다. 이는 자료가 없어서 상상력이 많이 요구되는 고대 관련 다른 역사소설과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을지문덕의 사라진 발자취를 찾아야 할 때 『살수의 꽃』은 살수에서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장군 을지문덕, 평양지방 전설의 여인 녹족부인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고구려의 개마무사, 신라의 쇠뇌 등 작가의 철저한 역사적 고증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사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고구려와 을지문덕에 관한 자료는 너무나 적다. 따라서 작가는 사료가 적은 만큼 상상력을 다해 관계를 설정하고 역사 인물들을 표현했다. 그 과정이 과거의 인물을 현재로 가져오게 하였으며, 역사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누구나 쉽게 안타까워하고 통쾌해하고 공감하게 하며, 우리 역사에 자긍심을 갖게 한다. 2022년 9월, 중국국가박물관이 한·중 수교 30년을 맞아 주최한 ‘한·중·일 청동기 전시’에서 우리가 제공한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삭제해 물의를 빚었다. 중국은 요하 문명을 자국의 역사로 만들려고 한다. 이제는 중국의 만행으로부터 우리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지켜야 할 때다. 내 나라 역사를 되찾기 위해 고구려를 더 크게 외치고 발해를 노래해야 한다. 그 시대를 살아간 다양한 위인과 사건을 들여다봄으로써 자랑스러운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을지문덕 소설 『살수의 꽃』을 꼭 읽어야 할 이유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소설 이 책은 온달 장군과 평강 공주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했다. 작가는 백성 출신 ‘바보’ 온달이 그저 철부지 평강 공주의 간택이 아니라, 온달 자신의 용맹함과 진력을 다함으로 고구려의 부마이자 장군이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가 온달 장군과 한 고향 사람이랬다. 어려서는 온달 장군 집이 그 동리에서 제일로 가난해서 하루에 풀뿌리 섞인 좁쌀죽 한 끼 먹기도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성품만은 너볏하고 조용하다 못해 순박해서 ‘바보’ 소리를 꽤 들었던 모양이다. 대신,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라 씨름을 해서는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는데, 황소 뿔을 잡아 넘어뜨리기도 했다더라.” -본문 중 『삼국사기』에 보면 ‘을지문덕의 출생과 성장 배경을 알 수 없다’고 나온다. 을지문덕의 출신을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을지문덕 역시 평민으로 설정하고 있다. 자신의 미천한 신분에 좌절하지 않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역사책 속의 위인으로 국한하지 않고, 개인 을지문덕의 인간 드라마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잡고,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맞서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의 모습, 현자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말 내 나라 역사를 지키지 못한다면 내 뿌리를 잃는 것이오, 미래도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중국에 사대하고 굴욕당했던 조선의 역사조차 포용해야 하는 것은, 반성하여 반복을 막기 위함이니, 이 또한 우리의 역사다. 어느 나라에도 굴하지 않고 독보적인 대제국을 구가했던 고구려 역사라면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몸속에 면면히 흐르는 고구려인의 기백과 호방한 천성을 떠올린다면 지금이라도 내 나라 역사를 되찾기 위해 고구려를 더 크게 외치고, 발해를 노래하며, 고조선이 어떤 이념으로 탄생하였는지 더욱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개마를 타고 삼족오의 깃발을 휘날리며 만주와 중원을 누비던 한민족의 역사 고구려를 기억하고 완전한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역사 인물 중에 누구보다 을지문덕이어야 했고, 그를 숭앙하는 마음으로 이 작업을 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