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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_ 낭환집 서문(?丸集序) 2 까마귀는 검지 않다_ 능양시집 서문(菱洋詩集序) 3 참된 배움의 길_ 북학의 서문(北學議序) 4 지금 이곳, 조선을 노래하다_ 영처고 서문(?處稿序) 5 비슷한 것은 참되지 않다_ 녹천관집 서문(綠天館集序) 6 눈과 귀를 믿지 말고 명심(冥心)하라_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7 진실은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_ 상기(象記) 8 도로 눈을 감아라_ 환희기후지(幻?記後識) 9 열녀 이데올로기의 음모_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10 의리를 다시 묻다_ 백이론(伯夷論) 상(上) 11 친구는 제2의 나다_ 회성원집 발문(繪聲園集跋) 12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네_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伯?贈貞夫人朴氏墓誌銘)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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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은 전혀 이질적인 대상을 하나로 연결할 줄 알았고 지극히 작은 것에서 지극히 큰 것을 보았다. 천하를 두루 보는 석가여래와 전혀 보지 못하는 소경이 평등한 눈을 갖추었다고 하여 같은 속성으로 묶는가 하면, 사람들이 버리는 기왓조각과 가장 더러운 똥이 진짜 굉장하고 볼만한 장관이라 주장한다. 까마귀의 검은색에서 다채로운 색을 발견하고 말똥과 여의주를 동등하게 본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일상의 하찮고 비루한 사물에서 새로움을 발견해내는 창조자의 안목을 지닌 사람이라 하겠다.
--- pp.6~7 연암은 존재의 평등을 지향하되 궁극적으로는 쓸모없는 존재, 소외된 인간의 편에 선 사람이다. 중심 가치가 권력이 된 사회에서는 주변적인 존재는 발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인간은 보이는 대로 보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기에 반대쪽은 언제나 소외되고 가려져 있다. 그러나 연암은 숨어 있는 것, 작은 존재에 관심을 둔다. 연암이 주목한 것은 말똥이었고 보이지 않는 ‘사이’였다. 겉으로는 대립하고 있는 양편을 두루 보자고 말하지만,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곳, 지금 사회가 좋다고 여기는 것의 반대편에 있는 말똥을 제대로 보자는 것이었다. 연암은 말똥구리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중심에서 소외된 존재의 편에 서고자 했다. 그리하여 중심과 주변, 귀한 것과 천한 것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기를 소망했다. --- p.33 까마귀를 검은색으로 고정한 것도 충분한데 다시금 까마귀를 갖고 세상의 온갖 색을 고정하려 하는구나. 까마귀가 과연 검기는 하다. 그러나 누가 다시 이른바 푸르고 붉은색이 검은색 안에 깃들어 있는 빛깔인 줄 알겠는가? 검은 것을 일러 어둡다고 하는 자는 비단 까마귀를 알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검은색도 모르는 것이다. 왜냐? 물은 현묘하기 때문에 비출 수 있고, 옻칠은 검기 때문에 비춰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색色이 있는 것엔 빛光이 있지 않은 것이 없고, 형체形가 있는 것엔 자태態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 p.43 역사는 오래된 미래라고도 한다. 강대국이자 적대국이었던 중국을 두고 벌어진 조선 지식인들의 고민과 시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또 과연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지금에도 겉모습만 달리한 채 북벌과 북학의 논쟁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외부에 무조건 배타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또 다른 소중화 의식을 갖고 사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 p.89 조선과 중국은 생활 조건과 환경이 서로 다르다. 기후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풍속도 서로 다르다.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삶의 조건이 있고, 각 문화에는 고유하게 발전시켜 온 생활 방식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조건에 맞지 않으면 한여름에 담비 가죽옷을 입는 어리석음과 같을 뿐이다. 그러니 남의 법과 비슷해지려 하고 남의 문체를 답습한다면 비슷할수록 거짓되고, 답습할수록 비루해질 뿐이다. 비록 조선이 중국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땅이지만 천승이나 되는 제후의 나라이고 아름다운 풍속을 간직한 나라이다. 자신의 말을 글자로 적고 민요에 운을 달면 저절로 문장이 되어 참된 정취가 드러날 것이다. --- pp.108~109 「일야구도하기」는 강을 아홉 번 건넌 경험을 바탕으로 사물을 참되게 인식하는 삶의 자세, 곧 외물에 현혹되지 않는 삶의 자세를 이야기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실 맥락으로 접근하면 삶과 현실을 위험하게 만드는 외물外物과 그 대응 자세를 말한 작품이 된다. 삶과 현실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귀와 눈만 의지함으로써 만들어진 편견과 선입견이다. 무서운 소리와 시뻘건 물결로 가득한 강을 건너는 행위는 관습과 편견으로 가득한 위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현실을 은유한다. 명 심은 사회적 관습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순수하고 사심 없이 보는 마음 태도이다. --- p.157 연암은 충과 효, 의리, 중용, 명철 등 유교에서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덕목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을 웃음 속에 칼을 감춘 자들이라 말한다. 입으로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감춘 구밀복검口蜜腹劍과 같다. 세상 사람들은 요술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속임수라고 생각하지만, 사이비 유학자가 더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라고 조롱한다.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위선자가 입안으로 칼을 삼키는 요술 묘기를 부리는 사람보다 훨씬 해로운 존재다. --- p.205 열녀를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자못 모호한 방식으로 당시의 열녀 제도를 비판하는 연암의 여성관이 썩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의 관점에서 연암의 여성관은 소극적이고 한계가 많다. 그러나 당대 사회가 모든 계층을 막론하고 열녀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연암 자신이 양반 사대부였다는 현실적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의 관점에서 연암의 여성관이 근사한 시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시대적 조건을 생각하면 당대의 평균 남성들보다는 진일보한 생각이라고 인정해줄 수는 있을 듯하다. 최소한 연암은 휴머니즘의 시각에서 여성을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로 바라보려 한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 p.232 나는 새벽에 두포의 배 안에서 그를 떠나보내고, 통곡한 뒤 돌아왔다. 슬프다!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에 단장하던 일이 어제 일 같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다. 응석 부리느라 누워 이리저리 뒹굴면서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어 더듬거리며 점잖게 말을 했더니, 누님은 수줍어하다 빗을 내 이마에 떨어뜨렸다. 나는 화가 나 울면서 분에 먹을 섞고 거울에 침을 뱉었다. 누님은 오리 모양의 옥비녀와 벌 모양의 금 노리개를 꺼내어 내게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했다. 지금으로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 pp.286~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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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향한 구도의 자세
경전에 대한 추종과 모방을 거부했던 경계인 연암은 말한다 ‘감각에 의지하지 말고 명심(冥心)하라.’ 「양반전」, 「허생전」, 「호질」 등 널리 알려진 연암의 작품을 떠올리면 그는 사회 비판적 요소가 강한 글을 쓴 작가로 보인다. 「마장전」, 「예덕선생전」, 「민옹전」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내세워 사회적 모순을 우회해 비판한다. 그러나 연암의 탁월함은 비판의 근거가 되는 진리를 구하려는 태도에 있다. 『연암 산문의 멋』에서는 사회 고발 성향의 바탕이 되며 연암 사상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구도의 자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저자는 「낭환집서」의 이가 옷과 몸 중 어디서 생기는지에 대한 논쟁, 말똥구리와 용은 서로의 말똥과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비유에서 진리의 양면성, 상대성을 읽어낸다. 이는 중용의 덕을 떠올리게 하며, 양편 사이에서 생각하는 경계인의 시각을 가져야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통찰이다. 「능양시집서」에서 연암은 까마귀가 실은 검은색만 띠고 있지 않다는 비유를 통해 경전의 문체(한 가지 색)로만 글을 쓰라 강요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저자는 주변 사물을 관찰하여 얻은 진실을 현실의 모순에 적용하려는 태도야 말로 진리에 이르는 길이며 하찮아 보이는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해내는 것은 연암의 창조자적 안목이라 칭찬한다. 「일야구도하기」도 눈과 귀로 느낀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를 전해주는 수작이다. 연암은 하룻밤 사이에 여러 번 강을 건너며 느낀 두려움을 통해 감각기관이 만드는 편견과 선입견을 지적한다. 저자는 연암이 강조한 ‘명심冥心’, 즉 감각기관의 모순을 경계하고 공정하고 순수하게 보는 마음이야말로 참됨에 이르는 길이라 말한다. 「상기」는 코끼리의 상아가 먹이를 먹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통해 조물주가 모든 것을 의도하여 만든 것은 아니며 자연에는 목적의식이 없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신, 하늘, 이理에 의지하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배제한 유학자들을 떠올리며 변화하는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만 규정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전한다. 연암은 자신의 여러 산문을 통해 진실은 상대적이며 양면적이라 명심을 행하면서 사물들 간의 관계에 집중할 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확증편향을 지양하는 것, “경계인의 시좌”를 가지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저자가 해석해낸 연암의 ‘구도’는 오늘날 가짜 뉴스와 혐오적 정서, 편협한 사고에 둘러싸인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박지원의 세상을 보는 눈 투철한 기록 정신이 만들어낸 연암 박지원의 세계 책 첫머리에 실은 이동원 화백의 〈연암 박지원 초상〉(2017)은 우리가 알던 연암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풍채 좋은 모습과 위엄 있는 낯빛은 그대로지만 세태를 비관한 지식인의 그늘도 엿보인다. 연암의 체념적 정서는 절친한 지기였던 이희천의 죽음과 관련이 깊다. 영조의 정치 공학적 선택에 의해 목숨을 잃은 친구의 모습을 보며 연암은 과거를 접고 더욱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섬세한 감수성으로 문학, 민중, 친구, 가족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시대의 지성은 자신의 감정을 글로 남기는 데 생을 바쳤다. 「영처고서」에서 연암은 『시경』이 당시 민간의 풍속을 담은 자료임을 강조하면서 『영처고』에 담긴 이덕무의 시 또한 ‘조선의 노래’라며 가치 있게 여긴다. 이는 북학에 대한 열망 이전에 실학의 주체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아가 백성들에 대한 연암의 애정 어린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열녀함양박씨전」도 맥을 같이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열녀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고 여성에 대한, 당시로서는 진일보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회성원집발」에서는 “벗은 반드시 지금 이 세상에서 구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며 친구 사귐의 어려움에 대해 탄식하였으며 「백이론」에서는 의리와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에 대한 깊은 고민을 드러낸다. 연암은 큰 누나를 떠나보낸 후 「백자증정부인박씨묘비명」을 남긴다. 고인을 형식에 맞춰 추모하던 당대의 글쓰기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품으로 누나를 잃은 개인적 소회와 누나와의 추억을 절절히 담아낸 수작이다. 연암의 사랑은 형과 누나에게 지극했으나 연암은 가족을 하나둘 잃어갔다. 박지원의 글을 자세히 보면 당대 유학자들의 동의를 구하거나 그들의 반발을 약화시키려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연암의 성정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연암의 전략적 글쓰기, 화술, 처세술 등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회를 비판했으되 조선풍을 강조하며 고쳐 쓰려 했고 유학자의 위선을 고발했으나 그들을 설득해 포용하려는 의지를 내비친 연암만의 세계관인 것이다. 마침 그는 줄곧 진실은 상대적이고 양면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함에 있어서도 어쩌면 그러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