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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경계에서 보다
연암 박지원의 현재성과 생태정신
박수밀
여름의서재 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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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1부 연암 문학의 현재성과 생태정신

1장 18세기와 21세기, 재현과 진실의 가능성
18세기와 21세기, 재현과 진실의 가능성
재현의 위기와 연암 박지원
지금 세계의 재현과 진실의 가능성
언어의 한계와 재현 가능성
주체의 한계와 진실의 가능성
18세기와 21세기, 재현의 비전

2장 연암 문학에 나타난 창조적 사유
실제를 은폐하는 문자에 대한 회의
존재의 평등에 입각한 주변의 중심화
색(色)과 빛[光]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광명안(光明眼)
새로운 세계를 탐구해 간 경계인

3장 모방이냐, 창조냐? 용사(用事)와 패러디
패러디와 용사의 관계
연암 산문의 용사 시학(詩學)
연암 산문의 용사와 패러디
· 짜깁기로 변용하기
· 장황하게 늘이기
· 문맥 속에서 전도시키기
원전의 권위를 조롱하는 패러디 정신

4장 물리적 공간에서 실존 체험으로, 장소의 발견
연암의 공간 인식
사행(使行) 공간과 장소의 발견
· 변방의 중심화, 책문(柵門)
· 자유와 해방의 울음터, 요동 벌판
· 도그마의 해체, 황금대(黃金臺)
· 도시 감수성의 체험, 유리창(琉璃廠)
· 장소애(場所愛)의 발현, 고북구(古北口)
· 허구와 진실의 교직 공간, 옥갑(玉匣)
진정한 장소 경험의 조건

5장 연암 문학 연구의 새로운 향방
연암 문학의 새로운 향방
·연암 산문의 방향성
·『열하일기』의 방향성
연암 산문의 부활을 위하여

6장 21세기 문명과 연암의 생태정신
21세기 문명의 위기와 박지원
연암의 생태정신
· 매미 소리가 시 읊는 소리다
· 흑룡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 명심(冥心), 마음으로 보라
관계의 생태학을 위해

7장 이용후생론(利用厚生論)의 미적 기반과 생태적 가치
이용후생론(利用厚生論)에 나타난 미적 기반
·자연 사물의 본성 존중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심미 태도
·준수통변(遵守通變)의 균형 정신
이용후생의 현재 의미

2부 연암과 실학 정신

이용후생의 참된 뜻
이용후생의 미적 기반
북학(北學)의 탄생
실학의 두 별, 연암과 다산
연암과 다산, 천자문을 의심하다
연암과 다산, 열녀를 말하다
법고창신(法古創新)과 대대(對待)의 논리 디케의 여신과 명심(冥心)의 정신
21세기 실학의 방향과 생태정신
실학 비판에 대한 변증(辨證)
실학 비판에 대한 변증(辨證): 실학과 대대(對待)의 논리 작은 존재를 애호한 연암의 생명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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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글의 출전과 제목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작은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고전의 지혜를 담백하면서 맑은 언어로 풀어내는 고전학자. 옛사람들의 글에 나타난 심미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의식을 지금-여기의 현장에서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미시적 관찰과 거시적 조망의 균형 감각을 놓치지 않으면서 문학과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시좌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실학의 인문 정신과 글쓰기, 고전의 생태 정신, 동아시아 교류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특히 연암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을 오랫동안 탐구해 오고 있다. 그 결실로 『연암 산문의 멋』, 『열하일기 첫걸음』, 『연암 박지원의 글짓는 법』을 저술했으며 고
작은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고전의 지혜를 담백하면서 맑은 언어로 풀어내는 고전학자. 옛사람들의 글에 나타난 심미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의식을 지금-여기의 현장에서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미시적 관찰과 거시적 조망의 균형 감각을 놓치지 않으면서 문학과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시좌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실학의 인문 정신과 글쓰기, 고전의 생태 정신, 동아시아 교류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특히 연암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을 오랫동안 탐구해 오고 있다.

그 결실로 『연암 산문의 멋』, 『열하일기 첫걸음』, 『연암 박지원의 글짓는 법』을 저술했으며 고전을 지금-여기와 소통하려는 노력으로 『오우아』, 『고전 필사』, 『청춘보다 푸르게 삶보다 짙게』, 『탐독가들』, 『리더의 말공부』, 『알기 쉬운 한자 인문학』 등을 썼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과학 기술 글쓰기』(공저)를 저술했으며,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 『살아있는 한자교과서』(공저), 『기적의 한자학습』(공저), 『기적의 명문장 따라 쓰기』, 『해결 초등 글쓰기』 등을 썼다. 역서로는 『정유각집』(공저), 『연암 산문집』 등이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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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4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536g | 140*210*27mm
ISBN13
9791198984845

예스24 리뷰

한국사 5천년 최고의 문장가 박지원의 매력으로 안내할 책
손민규 인문 PD
2025.05.14.

2023년에서 지금까지 거의 2년에 걸쳐 쇼펜하우어와 니체, 발타자르와 같은 서양 사상가 글이 많이 읽혔다. 아직도 읽히는 중이다. 한국인으로서 아쉬운 지점은 있다. 우리말로 사유한 멋진 지적 전통이 있는데, 굳이 쇼펜하우어와 니체 문장만 읽는 건 좀 그렇다. 최근 전호근 저자가 쓴 『한국 철학사』를 읽었다. 원효에서부터 여러 사상가의 삶과 문장을 소개한 책이다. 전근대 이땅의 지적 전통은 크게 불교와 유교로 이뤄지는 바, 불교와 유학 사유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장은 바로, 23장 박지원이다. 박지원을 소개하는 타이틀이 '5천 년 최고의 문장'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박지원에 관해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학교 다니며 수능 시험에 자주 나오는 작품이니 『호질』과 『허생전』 정도는 본 듯하다. 재치넘치는 문장과 유려한 전개로 다른 고전보다는 훨씬 재밌게 감상한 기억이 얼핏 난다. 하지만 박지원이 왜 최고의 문장가이고 독특한 사상가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던 찰나 『연암, 경계에서 보다』를 만났다. 읽을 수밖에.

이 책은 연암 박지원을 오랫동안 연구하며 관련하여 다양한 책을 저술한 박수밀 교수가 썼다. 제목 '경계'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를 함축적으로 담았다. 조선이 근대로 이행하는 경계라는 시간적 의미도 있을 테고, 연암의 대표 저서인 『열하일기』의 공간적 무대가 바로 경계이기도 했다. 연암이 독특했던 지점은, 바로 이 '경계'라는 정체성 덕분이다. 경계에서 바라봐야 중심과 변방이 두루 보인다.

이러한 연암의 정체성은 그의 사유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대 유학자들이 주자를 칭송하고 따라하기 바빴을 때, 연암은 지금 여기를 주목했다. 그렇다고 고전의 권위를 통째로 부정한 건 아니다. 필요에 따라서 유학은 물론 도교와 불교 사유를 끌어오기도 하며, 무엇이 올바른 인식인지를 치열하게 사유했다. 박수밀 교수가 본 연암 사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진실은 지금 여기 내가 보는 눈앞의 현실에 있다. 그러나 사물은 순간마다 성장하고 변화하는 가운데에 있다. 배치와 조건에 따라 각자의 진실을 갖는다. 연암의 생각은 현실을 사진처럼 재현하는 기계론적 사실주의(혹은 자연주의)에 머물ㅈ 않고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미래주의로 향해 있다. 나아가 지금 여기를 재현하기 위해 기존 언어관의 쇄신과 인식 주체의 새로운 탐구 방식을 요구한다. (37쪽)

한편 『연암, 경계에서 보다』에서 주목하는 주제 중 하나가 '생태'이다. 연암은 그의 글 곳곳에서 인간 중심주의를 버리고, 모든 존재가 각각의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가 강조한 명심(冥心) 역시 권력과 차별을 지양하고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대하려는 자세이다. 이러한 인식은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이 초래한 기후위기에 필요한 개념이리라.

이렇듯 박수밀 교수가 안내하는 대로 연암 사유의 독창성과 현재성을 발견하면, 다음 읽을 책이 저절로 정해진다.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 칭해도 무방할 『열하일기』로.

책 속으로

연암을 공부한 지 30년이 흘렀다. 그의 글은 언제나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너무 미묘하고 어려워서 깊이 있는 해석을 위해 현대 철학이론은 물론 역사서와 미학, 심리학 저술까지 뒤져가며 지식의 폭을 넓혀가야 했다. 늦은 밤에 우두커니 앉아 사색하고 고민해도 한 줄도 나가지 못하던 날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열하 일기》의 발자취를 따라 열하 현장을 여러 번 답사하기도 했고, 그 활동지를 찾아 함양과 면천을 여러 차례 다녀갔다. 어느 사이 연암은 단순한 연구 대상을 넘어 삶의 동반자가 되었고 때로는 스승이 되었으며, 때로는 상담가가 되어 주었다. 그의 작품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고, 더 깊이 사고하는 법을 익혔으며, 더 자유롭게 상상하는 능력을 길렀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참된 독서는 방 안에 틀어박혀 눈으로 읽는 데 있지 않다. 사물을 입으로 맛보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이해하는 전 감각의 체험에 있다. 일상 사물의 문심(文心)을 읽어내고 그 이치를 발견하면 된다. 낡은 언어 기호에 갇히지 말고 직접 사물에 나아가 그 생생함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때 참됨을 얻는다. 이것이 연암이 추구한 새로운 언어관이다.
--- 「언어의 한계와 재현 가능성」 중에서

한편에서만 보면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오리의 세계에서 살면 학의 긴 다리가 위태로워 보이고 학의 세계에서 살면 오리의 다리는 너무 짧아 보인다. 참되고 올바른 견해는 ‘옳다, 그르다’라는 시비의 가운데를 꼼꼼히 살필 때 드러난다. 세계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면 한편의 입장에 서서 는 안 되며 양편을 자세히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사물의 참모습은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연암이 말한 평등한 눈[平等眼]을 갖는다는 것은 한편이 아닌 양편을 보고 일부가 아닌 전체를 보며 이쪽과 저쪽의 사이(경계)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다.
--- 「주체의 한계와 진실의 가능성」 중에서

연암이 최고의 문학적 성취를 이룬 바탕에는 문자와 지식을 기존과 다르게 보는 특별한 생각이 있다. 연암은 오늘날의 문자는 진리를 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책은 내 눈앞의 자연 사물이고 지금 이곳의 현장이다. 따라서 자연 사물이라는 원본을 잘 관찰하는 행위가 제대로 된 책 읽기다. 연암의 글이 읽을 때마다 새롭게 읽히는 것은 그의 글이 자연 사물을 닮은 데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자연과 같이 이를 담아낸 연암의 글 또한 다채로운 빛깔로 빛나며 늘 새롭게 읽힌다. 연암의 창조적 사유는 과거의 지식을 담은 낡은 문자를 거부하고 지금 눈앞의 현실과 사물을 읽는 데서 출발한다.
--- 「실제를 은폐하는 문자에 대한 회의」 중에서

연암은 사람들의 눈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혼돈되고 뒤죽박죽이므로 피상적으로 보면 진실을 볼 수 없다. 아니, 그보다 더 큰 잘못은 보지도 않고 판단 하는 선입견이며, 세상을 한 가지 색으로만 가두는 태도다. 연암은 보는 자가 스스로 속는 것이므로, 제대로 보는 눈을 지녀야 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심(冥心)을 해야 한다. 명심(冥心)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이면(裏面)의 본질을 보는 것이다. 특정한 편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리, 공평한 자리에서 보는 것이다.
--- 「색色과 빛[光]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광명안(光明眼)」 중에서

연암은 지금 여기의 세상이 왜곡과 허위로 가득하며 많이 모순되었다고 생각한다. 조선 사람들이 좁은 땅에서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면서 단지 한 줌의 상투를 갖고 천하에서 제일인 양 뻐기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잘못된 관습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갇혀 자동화된 삶을 살아간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말한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믿지 말라. 기존의 가치 체계가 만든 관습과 통념을 아무 생각 없이 따르지 말라.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보기’를 하라. 한쪽의 외눈으로 보지 말고 복안(複眼)으로 보라. 눈을 감고 마음으로 보라.
--- 「디케의 여신과 명심(冥心)의 정신」 중에서

전 지구적인 환경파괴와 기후위기, 약자들에 대한 혐오와 기피, 공동체의 해체와 균열 등의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인류가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겪으며 어렵사리 얻어낸 상생과 협력의 가치가 무너지고, 각자도생의 치열한 경쟁이 일상화되고 있다. 각종 파괴와 차별을 극복하고 인류 보편의 생명, 인권, 생태, 상생, 다양성 등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연암의 사유가 이러한 문제의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연암의 사유가 국소적인 차원을 넘어 범보편적이고 인류애적인 가치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 「연암 문학의 새로운 향방」 중에서

연암은 쓸모없고 하찮은 사물도 미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사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다. 관계와 조건에 따라 존재성은 바뀐다. 형식을 바꾸어 주면 내용물이 새롭게 인식되고 환경과 조건을 달리하면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다른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무용한 것과 유용한 것은 조건과 상황을 달리해주면 서로 교환되거나 교체될 수 있다. 연암에게 진짜로 쓸모없는 것은 사물을 이롭게 쓰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곧 이용후생의 미적 의미는 애초부터 쓸모없는 존재는 없으며, 어떤 사물이든 알맞은 자리에 놓이면 쓸모 있게 된다는 것이다.
--- 「이용후생론(利用厚生論)에 나타난 미적 기반」 중에서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생태학이 서구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생태정신의 본질은 불교와 도교 등 동양 정신에 잘 담겨 있었으며 그렇기에 생태 문제를 동양 정신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중에도 하필 실학의 생태정신을 주목하는 까닭은 실학자의 생명과 자연에 대한 시선이 문명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 속에서 드러난 데 있다. 이는 반문명과 욕망의 제어를 지향하는 동양의 전통 사상과는 결을 달리한다. 고전 시대의 성리학자들이 자연을 조화와 질서의 공간으로 이해했다면 연암은 창조와 변화의 장(場)으로 바라본다. 연암의 생태정신은 현실주의 및 문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에 지금 이곳에서도 실질적인 시사점을 준다고 하겠다.
--- 「21세기 실학의 방향과 생태정신」 중에서

연암의 작은 존재에 대한 사랑은 단순한 자연 보호나 동물 애호의 차원을 넘어,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반성하고 생명 그 자체를 존중하는 깊은 통찰과 연결된다. 또한 그가 보여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존재를 향한 관심은 현대 사회의 불평등 과 차별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작은 존재를 대하는 연암의 시좌는 우리에게 인간과 자연, 그리고 모든 생명체 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철학적, 윤리적 기반을 제공한다. 나아가 성호의 〈관물편(觀物篇)〉에 보이는 작은 미물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마음, 담헌의 〈의산문답(醫山問答)〉에 나타난 인물균(人物均) 정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산의 따뜻한 연민을 아울러 곱씹어 볼 때, 자본과 기술 앞에서 정녕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작은 존재를 애호한 연암의 생명 윤리」 중에서

출판사 리뷰

왜 다시, 연암인가?

연암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두 가지 열쇠말은 ‘경계인’과 ‘보기’다. 연암은 유학자였음에도 불교와 도가(道家), 심지어 서학까지 아우르며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갔다. 그는 낡은 전통과 특정 사상에 갇히지 않고 객관적인 진실의 자리에 서서 지식 사회의 관습과 규범에 도전했다. 제3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상층과 하층, 아름다움과 추함, 조선과 중국, 법고와 창신 등 양쪽의 세계를 오가며 서로 소통하고자 애썼다. 연암은 이편과 저편을 가로지르며 상생(相生)의 길을 찾아 나선 경계인이었다.

연암은 인간이 잘못된 판단을 하고 편견을 갖는 근본 이유가 본 것이 적은 데 있다고 말한다. 조선 사람들이 좁은 땅에서 태어나 잘못된 관습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갇혀 자동화된 삶을 살아간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연암은 ‘제대로 보라’고 말한다. 기존의 관습과 통념을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말고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보라고 말한다. 한쪽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복안(複眼)으로 보라고 말한다. 표면만 보지 말고 본질을 꿰뚫어, 보이지 않는 면을 보는 눈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연암 문학의 남다른 가치는 기존 지식과 권위에 대한 비판, 현실과 사물의 직접 관찰, 하찮은 것 속에서 본질을 찾는 태도,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사유의 깊이에 있다. 연암 문학에는 생각의 틀을 깨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대립 속에서 갈 길을 잃고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연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연암 박지원 문학의 창조성과 생태정신


『연암, 경계에서 보다』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연암 문학을 현대 이론과 연결해 연암의 현재성과 창조적 정신을 살펴보았다. 연암의 문학이 오늘날의 이론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그의 창조적이고 생태적인 생각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는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탐색했다. 2부에서는 연암의 법고창신(法古創新)과 대대(對待)의 논리를 살펴보았다. 법고창신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편을 배척하기보다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다. 또한 북학(北學)의 탄생 배경을 중화사상과 화이론의 맥락에서 접근했으며, 연암과 다산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 비교하고, 명심(冥心)과 디케의 정신과의 연관성을 이야기했다. 더 나아가 실학을 비판하는 논리에 대해 변증했으며 실학의 생태정신과 그 현대적 의의 등을 살폈다.

연암의 생태정신에서는 21세기 현실에서 연암의 생태정신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연암은 자연을 살아 움직이며 변화하는 존재로 바라보았다. 연암은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자연의 소리와 몸짓이 곧 문학과 예술이 된다고 생각했다. 연암의 이용후생론에서는 이용후생이 단순한 경제적 이익과 기술적 발전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문명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철학적·미적 기반을 포함하는 개념임을 이야기했다. 이용후생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도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균형 잡힌 발전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환경 문제와 개발 욕구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철학적 기반이 되어 준다. 저자는 30년간 연암과 더불어 살고 공부하며 그의 사상과 말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더 깊이 사고하는 법을 익혔으며, 더 자유롭게 상상하는 능력을 길렀다고 말한다. 우리 역시 경계인 연암의 삶과 문학의 여정을 통해 ‘상생(相生)’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쓸모없는 사람이 반드시 쓸모 있다

연암은 ‘범이든 사람이든 만물의 하나일 뿐’이므로 “범과 메뚜기, 누에와 벌, 개미는 사람과 함께 길러지는 것이니, 서로 어그러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여 자연을 공격과 파괴가 아닌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연암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 모든 생명체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과 동물에 대한 연암의 애정은 인간 사회의 위선과 차별에 대한 비판과 연결된다. 연암은 세상이 말하는 쓸모 있는 사람은 반드시 쓸모없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말하는 쓸모없는 사람은 반드시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기존 사회의 가치 판단을 뒤엎고 사회에서 낮잡아 불리는 존재들이 오히려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임을 말한다. 그리하여 거지와 비렁뱅이, 똥 푸는 사람 등 사회가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과 가까이하며 그들로부터 진실함을 배운다.

또한 그가 보여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존재를 향한 관심은 현대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작은 존재를 대하는 연암의 철학은 우리에게 인간과 자연, 그리고 모든 생명체 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철학적, 윤리적 기반을 제시한다. 연암은 닫힌 세상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우리가 자본, 권력 앞에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인간 본연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그 물음을 이제 우리가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그가 평생을 일군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간다’는 생각이 우리를 현재로, 미래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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