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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제5막 아포칼립스 D-1, 12일 목요일 제6막 아포칼립스 D-day, 13일 금요일 제7막 아포칼립스 D+1, 14일 토요일 제8막 아포칼립스 D+4, 17일 화요일 감사의 말 |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들은 음악 | 옮긴이의 말 |
Bernard We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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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여러분에게 로렌 대학교 교수인 행동 신경 과학 전문가 디디에 드조르 교수가 한 실험에 대해 들려줄게요. 드조르 교수는 수영을 해야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할 때 쥐가 보이는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쥐 여섯 마리를 케이지 하나에 가뒀어요. 케이지 끝에 있는 문을 열면 물이 가득한 수조가 나왔고, 수조 건너편에는 사료가 담긴 통이 놓여 있었어요. 배고픈 쥐들이 먹이를 먹으려면 수조를 헤엄쳐 건널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관찰되었어요. 모든 쥐들이 다 물로 뛰어드는 게 아니었어요. 더 흥미로운 건 헤엄을 쳐서 먹이를 물고 돌아온 쥐한테 벌어지는 일이었어요. 쥐가 사료를 물고 돌아와 케이지 안으로 들어오려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쥐들이 달려들어 그 쥐를 마구 짓이기고 나서 사료를 빼앗았어요. 드조르 교수는 헤엄을 쳐서 먹이를 구해 왔지만 수고의 대가를 도둑질당한 그 쥐를 〈피착취형 쥐〉라고 불렀어요. 그 쥐가 물고 온 먹이를 빼앗은 쥐들은 〈착취형 쥐〉라고 불렀죠. 그런데 이 두 부류에 속하지 않는 제3의 부류가 있었어요. 함정을 눈치챈 쥐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돌아와서는 기다리던 쥐들을 죽기 살기로 밀쳐 노동의 대가를 지켜내는 모습이 관찰된 거예요. 드조르 교수는이 쥐를 〈단독 행동형 쥐〉로 분류했어요. 마지막으로, 헤엄을 쳐 사료를 물고 오지도 남의 전리품을 도둑질하지도 않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에만 만족하는 쥐도 있었죠. 이 쥐는 수시로 착취형 쥐들에게 발길질을 당하곤 했어요. 드조르 교수는 케이지 안에 든 여섯 마리의 쥐가 다음과 같이 나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 p.24, 「2권」 중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해요. 내가 몇 가지 조언을 해줄 테니 꼭 기억했다 실천하도록 해요. 당신의 생각을 조심해요, 그것이 당신의 말이 돼요. 당신의 말을 조심해요, 그것이 당신의 행동이 돼요. 당신의 행동을 조심해요, 그것이 당신의 습관이 돼요. 당신의 습관을 조심해요, 그것이 당신의 성격이 돼요. 당신의 성격을 조심해요, 그것이 당신 영혼의…… 운명이 돼요. --- p.97, 「2권」 중에서 「독자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이곳에 와서 진실을 깨닫고 간 사람이 쓴 소설이 지상에 한 권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책이 되어 나오면 누군가 반드시 읽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독자는 책 얘기를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하게 되겠죠. 어쩌면 당신 책이 대중에 알려지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몰라요…….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알려질 수 있게.」 --- p.342, 「2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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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은 바로 오늘의 뉴스에서 시작된다!
양극화와 폭력, 혐오와 야만의 시대를 아포칼립스로 그려낸 베르베르의 신작 선거철마다 더 거칠어지는 말들, 극단으로 갈라지는 정치, 일상처럼 반복되는 폭력과 혐오의 뉴스는 우리에게 묻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정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혹은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더 깊은 야만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영혼의 왈츠』는 바로 이러한 불안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소설이 그려 내는 아포칼립스는 먼 미래의 공상도,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도 아니다. 사회를 지탱하던 믿음이 무너지고, 이성이 증오의 도구로 쓰이며, 공동체가 서로를 밀어내는 순간들이 겹쳐질 때가 바로 종말(아포칼립스)이다. 베르베르는 지금 우리가 뉴스 속에서 매일 목격하는 균열이 종말의 시작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렇기에 『영혼의 왈츠』의 위기는 낯설지 않다. 독자는 소설 속 파국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오늘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은 〈인류는 왜 폭력과 퇴행을 반복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베르베르 특유의 거대한 상상력을 지금 이 시대의 가장 가까운 불안과 연결한다. 『영혼의 왈츠』가 단순한 종말 서사가 아니라, 오늘의 세계를 비추는 소설로 읽히는 이유다. 이 이야기는 12만 년 전부터 시작됐다 전생을 따라 인류 문명사의 비밀을 추적하는 거대한 시간 여행 『영혼의 왈츠』는 세상에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에서 시작된다. 외제니 톨레다노는 쓰러진 어머니에게서 믿기 힘든 말을 듣는다. 다가오는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여러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외제니는 내면 여행 체험을 통해 이전 생의 기억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 경험이 단순한 환상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현재에서 출발해 무려 12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가 불을 발견한 선사 시대의 동굴, 문자가 태어나고 기록이 쌓이던 문명의 초창기 수메르와 이집트, 그리고 〈수학〉과 〈철학〉이 탄생한 그리스로 이어지는 고대 세계가 하나씩 펼쳐진다. 외제니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풍경이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만들었고, 어떤 지식을 남겼으며, 또 무슨 힘이 그 세계를 무너뜨리려 했는지에 대한 거대한 단서들이다. 베르베르는 이 방대한 시간의 여정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전생 체험이라는 흥미로운 장치를 통해 독자를 과거의 한복판으로 데려가고, 모험과 미스터리의 리듬으로 인류 문명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통과하게 만든다. 과연 외제니는 과거의 삶들 속에서 현재를 구할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파국의 흐름을 멈추고, 인류는 다른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파국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기록과 지식, 기억과 자유 의지에 관한 베르베르식 문명 서사 『영혼의 왈츠』가 끝내 묻는 것은 종말이 실제로 닥칠 것인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문명은 왜 어렵게 쌓아 올린 것을 스스로 무너뜨리는가. 그리고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이 작품에서 문명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이나 거대한 도시를 뜻하지 않는다. 불을 지키고, 문자를 만들고, 기록을 남기고, 다음 세대에게 지식을 전하려는 노력 전체가 문명이다. 반대로 문명을 무너뜨리는 것은 무지와 폭력,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 기억을 지우고 역사를 끊어 내는 힘이다. 베르베르는 이 두 흐름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반복되어 왔는지를 한 개인의 전생 여행과 종말의 미스터리 안에 엮어 낸다. 독자가 『영혼의 왈츠』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소설에는 세계의 끝을 막아야 한다는 강한 서스펜스가 있고, 12만 년을 넘나드는 압도적인 스케일이 있으며, 전생과 문명사와 아포칼립스가 맞물리는 베르베르 특유의 지적 상상력이 있다. 동시에 그 모든 장치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무엇을 다음 세대에 남겨야 하는가. 세계가 무너져 가는 것 같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희망을 꿈꿀 수 있는가. 그래서 『영혼의 왈츠』는 거대한 모험 소설이자, 오늘의 독자에게 건네는 문명의 경고다. 종말을 상상하게 만들지만, 끝내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임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