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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강
문학철
책과나무 202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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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내며
황산강 지도
등장인물

아수라장
코피
모순
내 속에 하나의 우주
더덕 냄새
한없이 가벼운 붉은 사랑

저자 소개 1

시집 『그곳, 청류동』, 『지상의 길』, 『사랑은 감출수록 넘쳐흘러라』 장편소설 『황산강』 시 감상집 『관광버스 궁둥이와 저는 나귀』 《백전白戰》, 《목요시선》 동인 (전) 《주변인과문학》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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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77쪽 | 362g | 130*210*20mm
ISBN13
9791167522245

책 속으로

눈을 뜨니 낯선 방 안이다. 조금 어둡다.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천정엔 한지가 발라져 있다. 창호지를 바른 한옥 완자살창문이 보였다. 벽에도 한지가 발라져 있다. 방바닥도 콩댐한 한지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 때문인지 코끝이 간질거려 손으로 코를 만지다 보니 꼬맹이 손이다. 무명적삼에 무명속곳, 무명치마를 입고 있는 꼬맹이가 나였다. 꿈속인 게 틀림없다. 일어나 앉으려고 하는데 심한 현기증이 났다.
--- p.24

“와~. 대박. 너희 아빤 고2 남학생한테 체벌도 하냐? 진짜 대박이다.”
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최고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말이. 우리 아빠는 모순덩어리, 구제 불능이야.”
최고운이 책상에 얼굴을 대며 머리를 감쌌다.
“그래도 어쩌겠니. 강스 쌤 말처럼. 민주주의나 인권은 최악을 면하는 방향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잖아.”
“그 말이 왜 여기서 나와? 진작에 나왔어야지.”
최고운이 머리를 들며 나를 바라본다.
--- p.31

머릿속으로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금 풀밭에 엎어져 있는 나는 고2 최고운이 아니다. 일곱 살, 이만중이다. 등을 두드리는 까까머리는 열세 살 만줄이 행님이다.
이 몸의 엄마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다.
“줄아, 중이 괘안체?”
“야. 물 좀 먹은 것 같은데 별일 없을 것 같아요.”
“얼굴도 그렇고 입술이 새파랗다. 마이 놀랬구나. 업히라. 집에 가자.”
엄마가 업으려는 것을 줄이 행님이 나를 업고 집으로 왔다. 이내 어지럼증이 가라앉았다.
--- p.96

결성한 농민조합에서 이제는 조합의 성과를 보일 때가 되었다는 말들이 마을에 돌고 있었다. 아버지가 농민조합 남부리 간부로 곧 군내 남부조직부장이 될 거라고 했다. 행님은 야학당 어린 선생님이면서 농민조합 남부리 소년 부장이라고 했다. 지세 포함해서 소작료가 7할이나 되어서는 더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말들을 어른들은 모이면 수군거렸다. 일제가 들어오기 전 옛날에는 가을걷이하면 소작인 몫이 반타작은 넘었다. 화학비료와 농법 개량으로 단위면적당 소출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소작인 몫이 이제 3할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농지에서 쫓겨나 유리걸식해야 할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수군거렸다.
--- p.118

아버지는 도망간 엄마와 내가 빼다 박은 듯이 닮았다고 했다. 술 먹고 돌아온 밤이면 밤새도록 계속되던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행. 나는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그렇게 새벽이 오면, 뽑힌 머리칼과 멍 자국 가득한 몸으로 웅크린 내 앞에 무릎 꿇고 빌며 아버지는 한없이 울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더 무섭고 끔찍하게 싫었다. 아버지 눈물이 내 멍든 몸에 떨어지는 것이 진저리나게 싫었다. 연고를 발라주는 손이 사포로 내 껍질을 벗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또다시 시작될 폭행이 두려워서였다.
--- p.136

백상덕은 머리가 터지고 멍든 곳들도 아팠지만 탈골될 것처럼 억세게 묶인 줄 때문에 터져 나오는 신음을 삼키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팔이 저리다 못해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이러다 피가 돌지 않아서 양팔 다 죽어버리는 것 아닌가 싶었다. 고통 때문에 이만중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예 들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왕창 한 번 뒤엎어질 때 그 잘난 대가리로 또 윗줄에 앉자는 거잖아. 하하, 아니라고? 아나, 세상이 그리 쉽게 뒤엎어질 거다. 저런 것들은 그저 모조리 총살해서 한 무더기에 묻어 버려야 해. 평생 햇살 한 번 볼 수 없는 지하 감옥에 처넣어 뒈질 때까지 가둬두든지. 전기혁이나 너 같은 놈은 이렇게 가둬도 잘 빠져나가겠지. 하지만 끝까지 추적해서 처단할 거다.”
백상덕이 눈을 똑바로 뜨고 대답하려 하자 이만중이 꿇어앉아 있는 백상덕 가슴을 구둣발로 내질러 찼다. 백상덕이 포승줄에 결박된 채 뒤로 벌렁 넘어졌다.

--- pp.243~244

출판사 리뷰

현실과 소설, 2020년대와 일제강점기,
두 개의 세계를 핏빛 서사로 엮어낸
문학철 장편소설 『황산강』


평범하게 보이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문학 수행평가 과제를 하면서 소설 속 서사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현실을 넘나들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같은 반 조아라, 고정식, 최고운, 김유나, 박초롱, 엄민아 여섯 명은 현실에서는 진로 문제, 부모와의 갈등, 부모의 폭력, 학교 내 보이지 않는 폭력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다. 수행평가를 위해 소설을 읽은 후 까무룩 정신을 잃고 소설의 세계로 빠지게 되는데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한국전쟁이라는 한국 근대사가 배경이라 역경과 고난의 삶을 살게 된다. 소설은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한민족이 겪은 부조리를 그리면서 거기에 닿아 있는 2020년대 현실 세계의 부조리를 함께 형상화했다.

소설은 여섯 편의 독립된 소설이면서 전체적으로 한 편의 소설이다. ‘아수라장’, ‘코피’, ‘모순’, ‘내 속에 하나의 우주’, ‘더덕 냄새’, ‘한없이 가벼운 붉은 사랑’은 여섯 명의 고등학생들이 각 편마다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소설 속 인물이 되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황산강』은 소설 속 소설의 이중구조, 각 편마다 독립된 소설구조, 또 각 소설의 배경이 되는 소설이 따로 있다는 특징이 있다. ‘아수라장’은 일제강점기 낙동강 연안의 농촌 양반 가문의 가야부인이 겪는 수난과 투쟁의 역사를 담은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修羅道)[《月刊文學》(1969)제8호]를 배경으로 했다. 이외에도 ‘코피’에는 김정한 소설 ‘그물 ?’(1932), ‘모순’에는 김정한 소설 ‘길벗’(1948), ‘내 속에 하나의 우주’에는 김정한 소설 ‘사밧재’(1971), ‘더덕 냄새’에는 김정한 소설 ‘산서동 뒷이야기’(1971), ‘한없이 가벼운 붉은 사랑’에는 조갑상 소설 ‘병산읍지 편찬 약사’(2016)가 바탕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한국전쟁과 그 이후까지 근대사를 다룬 작품들이다. 일제강점기의 농민운동,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때의 보도연맹 사건 등 힘없는 민중의 비극이 소설 『황산강』에도 주요 사건으로 등장한다.

‘황산강’은 소설이 전개되는 현대와 서사 속 공간이다. 한반도에서 압록강 다음으로 긴 강으로 영남지방 대부분을 수계로 하는 낙동강의 옛 이름이다. 배경이 된 소설들 모두 낙동강이 주 무대다. 인물들의 대화 속 사투리와 표현들도 향토색이 짙다. 현실과 소설을 오가는 중에도 낙동강 지역이 중심 배경이 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2020년대까지 서사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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