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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상식을 바꾸는 환상 예술 그림책이 책을 펼치다 보면 수수께끼 같은 장면을 발견합니다. 똑바로 있어야 할 글자가 거꾸로 적혀 있습니다. 왜 작가는 첫 문장인 ‘나무는 흐른다’라는 이 한 문장만 빼고 모두 글자를 거꾸로 적어 놓았을까요?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글과 그림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나무는 잎과 줄기와 뿌리의 구분이 뚜렷합니다. 잎이 줄기가 될 수 없고, 줄기는 뿌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볼품없는 나무는 줄기도 잎도 없이 그저 밑동뿐입니다. 그러나 이 밑동에 그 다음 글인 ‘나무는 흐른다’는 몸짓이 더해지면 나무에는 보이지 않는 곳부터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움틉니다. 단비 같은 기운이 ‘흘러’ 나무는 뿌리인지 줄기인지 잎인지 모르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명을 낳습니다. 이 생명들은 서로서로 만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바로 ‘나무는 만난다’가 뜻하는 어울림입니다. 그런데 이 글부터 거꾸로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남’을 내 안에 들이는 일입니다. 그 낯선 남과 ‘나’가 조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작가는 그 뜻으로 ‘나무는 만난다’에서부터 책을 돌려 읽기를 바란 건 아닐까요? 박쥐를 그려 넣어 이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로 남겨둔 건 아닐까요? 이렇게 책을 돌리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넘기던 책은 곧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넘기는 책이 됩니다. 이 작은 변화에 ‘남’의 모습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마음을 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참 아름다움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래 바라보고 오래 얘기 나눌 때 깊이 다가옵니다. 부디 이 알쏭달쏭한 그림책에 담긴 그림에 보는 이의 눈이 오래 머무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것들이 수없이 다가옵니다. 이제껏 보지 못하던 것들이 우리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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