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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무늬
035 오래전 애인이 안부를 물을 때 063 관계의 지정학 091 아름답다 117 복수가 이쯤은 되어야지 143 오십 번지 서쪽 171 비밀 197 그럴 리가 없습니다 221 침몰 243 작품 해설 김대현 문학평론가 사랑, 입니다 264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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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겨놓은 그는 겉으로 보기에 말끔해 보였다. 그러나 옷으로 가려놓은 그의 몸 곳곳에는 내가 만들어놓은 무늬들이 자라나고 있다. 그것들은 나의 이 모양을 따라 붉은 꽃을 피우기도 하고, 나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멍울멍울 검푸른 자국을 남겨놓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가족들이 그의 옷을 들춰 그의 몸에 찍힌 현란한 무늬들을 볼 확률은 0에 가깝다. 그의 가족들이 그가 빨리 죽기만을 바란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몸에 무늬를 남겨놓은 것은 아니지만, 안심은 된다. 그의 마지막 순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무늬」중에서 오십 번지에는 한 명의 노인과 두 명의 노파가 살고 있었다. 한 명의 노파는 한 명의 노인을 ‘여보’라 명명했다. 또 다른 한 명의 노파는 한 명의 노인을 ‘아빠’라 불렀다. 그리고 이 노파는 다른 한 명의 노파에게 ‘언니’라고 했다. 당연하게도 언니라 불린 노파는 또 다른 노파를 ‘동생’이라 불렀다. 한 명의 노인은 한 명의 노파에게는 ‘당신’이라고 했고, 또 다른 한 명의 노파에게는 ‘이쁜이’라고 했다. 여보이기도 하고 아빠이기도 한 노인이 이쁜이이기도 하고 동생이기도 한 노파를 이쁜이라 부를 때마다 당신이기도 하고 언니이기도 한 한 명의 노파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이건 옛날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얼핏 보면 대단히 복잡한 것 같은 이들의 관계를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간단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건 옛날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가 간단히 정의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독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그들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그렇지만 이 이름들은 모두 가명이다. ---「오십 번지 서쪽」중에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그 날이 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죄가 되던 그 시절에 우린 모두 죽은 듯이 살았습니다.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서로를 경계하고 눈치를 봤지요.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예의를 지키는 일이란 그렇게 자연스러운 이치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부서진 시간을 바라보며 똑같이 자신의 시간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 놓고 아파할 수 있도록 시간을 굴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노엽게 들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누구도 아픈 기억의 나이테를 그리지 않아도 되게 말이지요. 또 바람이 부네요. 아까 속엣것을 게우고 났더니 이제 좀 괜찮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계속해서 불어 올 것이고, 그럴 때마다 울컥울컥 욕지기가 나겠지요. 그러면 당신, 아무 말 말고 조용히 나의 손을 잡아주세요. 그리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아주 충분해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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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 「무늬」는 파격적인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사람을 죽이려 한다. 이 세상 단 하나의 사람. 나의 사랑.” 아내가 있는 옛 애인의 간병인으로 들어간 ‘나’의 심리 묘사가 탁월한 이 작품은 욕망의 상호성이 결여된 비극적인 결말을 향하고 있다. 타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한 나의 실존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의식이 없는 옛 애인의 몸에 ‘무늬’를 남기려 한다. 이로 물어뜯거나 손톱으로 할퀴는 등 타자의 감각을 깨우기 위해 가학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장면은 근래 한국문학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장면이다. 욕망의 상호성을 재현하는 것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실험이다.
결핍된 욕망의 서사는 「오래전 애인이 안부를 물을 때」에서도 이어진다. 대학 시절의 ‘나’와 선배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동성동본’과 학생회의 ‘연애금지’라는 강령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어떤 욕망은 결코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 ‘나’의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배’밖에 없는 것이다. 요컨대 누구에게나 사랑이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은 단 하나의 ‘그’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관계의 지정학」도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 주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앞서의 작품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불가능에 대한 배경은 다르다. 전자가 그 충족이 가능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망으로 인한 후천적 불능이라면 후자는 애초에 욕망의 대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원시적 불능에 해당한다. 사랑이 가지는 최악의 부조리도 여기에 있다. 사랑은 자신이 포섭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해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랑의 끝이 파국으로 향하는 건 아니다. 사랑은 어떻게 결여된 주체를 승인하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가. 이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 「아름답다」에 있다. 엄마에게는 ‘나’와 공유하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나’와 함께 외간 남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것이 그러하다. “정연아.” 그 남자의 목소리는 달콤했다. 이제는 아무도 부르지 않는 엄마의 이름을 그 남자는 마치 제 것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불렀다. 나는 처음 들어본 것처럼 엄마의 이름이 낯설기만 한데, 그 남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엄마의 이름을 불렀다. 정연아, 그 남자가 부를 때마다 엄마의 머루빛 눈동자가 점점 깊어졌다. 인용한 이 문장들에서 우리는 결여된 주체가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수의 아내이자 사모님, 그리고 ‘나’의 엄마라는 것 등이 모여 엄마라는 존재를 이루는 것이다. 이 관계들에서 엄마는 그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부분적으로 승인될 뿐이다. 하지만 “정연”은 다르다. 이 지칭은 관계가 아닌 존재를 직접 호명한다. 엄마의 욕망이 온전히 충족되는 순간이다. 도구나 수단으로서의 관계가 아닌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누군가의 사랑의 대상이 될 때 인간은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욕망하는 대상의 고유성을 발견하는 것이 사랑의 가장 주요한 요건임을 확인하는 것은 「비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노인들의 생애를 구술을 통해 채록하는 공공 프로젝트의 일원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종으로서의 특성이 아니라 단 하나의 고유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비밀’이다. 그래서 「오십 번지 서쪽」은 사랑의 모순에 대한 하나의 우화처럼 들린다. 오십 번지에 있는 집에 유성식, 김간난, 이입분이 살고 있었다. 김간난과 혼인 관계인 유성식이 이입분을 첩으로 들인 것이다. 유성식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서사는 이후 애증관계에 있는 김간난과 이입분의 대화로 이어지고 있다. 전치된 사랑의 욕망은 동일한 결여에 대한 통각의 공유를 통해 새로운 사랑을 가져오게 한다. 이러한 우연에 의해 사랑은 미움으로, 미움은 사랑으로 전화한다. 「침몰」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애도와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작품이다. 언제까지나 함께하리라 믿었던 대상의 상실은 우리의 일상을 결여된 상태로 멈춰놓는다. “거대한 슬픔의 반석 위에 정의의 집을 짓고 젖은 영혼들을 건져내어 그들과 함께 진짜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라는 목소리는 슬픔 속에 결여된 일상을 다시 채우려는 의지에서 솟아오른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에서도 공감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공감의 힘은 그 어떤 권력보다 강합니다.”라는 진술도 동일한 맥락이다. 반복되는 사랑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애도와 애도하는 사람에 대한 공감을 통해 우리의 삶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복수가 이쯤은 되어야지」는 남겨진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모든 자산과 부채를 승계하여 마지막까지 함께 나아가는 것이 그러하다. 그렇게 사랑은 영원히 지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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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응답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의 담론을 이야기한다. 어림하기는 어렵지 않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알려 하는 것이 그렇다. 자신의 생래적 결핍을 인지하고 언제나 지혜를 갈급하는 애지자(愛智者)로서 에로스의 속성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단정하는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자신이 기술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하여 『사랑, 입니까?』라고 묻는 이 소설집은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다. 인식을 위해 형체를 갖추는 순간 그 존재를 잃고 사라지는 ‘혼돈’의 우화처럼 사랑 또한 그 현상을 규정하려고 애쓰는 순간 반드시 실패하고야 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 김대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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