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며# 우리 같이 영화 볼래요?
#1. 조조할인 우리는 기적이 되기에 충분하다#우리집#정현주 기, 생, 충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해#기생충#홍애리 ‘헤픈 가족’은 어떨까요#가족의 탄생#자일리 쿨한 게 아니라 노력하는 중입니다#보이후드#김은희 둘이어도 괜찮은 가족#우리의 20세기#쑤리 오늘도 머리에 꽃을 달고 출발선에 선다#결혼이야기#단단 이 세상 낡은 벽지를 무지개색으로#톰보이#살구 어느 ‘B급 시어머니’의 고백#B급 며느리#블랑 #2. 심야 영화 출산한 몸에 관해 말하기#툴리#성소영 엄마는 강하다는 말#펭귄 블룸#안성은 모래사장에 빠진 유아차를 옮기려면#박강아름, 결혼하다#나비 아름다운 추억 속에 숨겨진 그늘#남매의 여름밤#하지현 나에게는 날개가 있다#레볼루셔너리 로드#이민영 은희가 숙자를 원망하지 않은 이유#벌새#민보영 어디 사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소공녀#홍하언니 독박 돌봄은 사양합니다#욕창#유유 너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 나의 사랑#케빈에 대하여#은주 #3. 주말의 명화 엄마들이여, 사치하자#82년생 김지영#이성경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찬실이는 복도 많지#랄라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한 여자들#디 아워스#구성은 나는 날마다 내 안부를 묻는다#마나나의 가출#유보라 오늘도 활짝 문을 열었습니다#안토니아스 라인#엘리 둘은 둘인 채로 잘살았답니다#비포 미드나잇#인성 세상 속 아줌마 요원들의 세계#블랙 위도우#김수현 느슨하지만 단단한 울타리#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이효정 다시 시작되는 마법, 영화#크루엘라#심지 |
엄마페미니즘탐구모임
부너미의 다른 상품
유유의 다른 상품
김수현의 다른 상품
이효정의 다른 상품
|
내 인생의 빙하기와 해빙기가 지나간 모양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영화에 푹 빠져들었지만, 아프고 슬프기보다는 묵묵하고 애틋했다. 길 잃은 아이들이 종이 집을 밟으며 목 놓아 우는 장면에서는 속이 후련했다. ‘얘들아, 잘했어! 집은 무겁게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게 아니야. 그것도 집에서 가장 어린 너희들이 짊어지면 안 돼. 그럴 필요 없어. 그깟 집 좀 구겨지면 어때. 중요한 건 너희들이야. 누구도 너희를 구길 수 없어.’
--- p.21 자녀들에게 매달릴 시간이 없다. 내게 주어진 인생 2막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B급 며느리’ 진영처럼 ‘B급 시어머니’로 살려 한다. ‘따뜻한 무관심’과 ‘연대하지 않는 연대’를 통해 평상시에는 무심하게 지내려 한다. 도움을 청할 때 도울 수 있는 여건이면 돕고, 상황이 안 되면 ‘노’라고 대답하면 된다. 비급 며느리만 있는가? 비급 시어머니도 있다. --- p.77 '나는 결국 쓸모없는 인간인가?' 수없이 되묻는 동안 방안 곳곳에서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박완서, 폴 오스터, 아니 에르노의 매혹적인 책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까맣게 멍든 집이 나를 좀먹고 있었다. 반포자이에 다녀온 그날 밤, 컴퓨터 속 시나리오 폴더를 지웠다. 그때부터 나는 국회도서관에 틀어박혀 부동산과 재테크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고, 저녁에는 학원 강사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취향이나 적성에 상관없이 오라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시키는 일을 했다. --- p.130 남편은 회사 생활을 우선하다가 퇴근 뒤 한두 시간 또는 주말에 아이들하고 신나게 놀아주면 ‘아빠 최고!’라는 말을 들었다. 꾸준히 경력을 쌓았고, 연봉도 올랐다. 경제력과 돌봄력을 다 갖춘 매력적인 삶이었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주 양육자 구실을 하면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밤낮없이 일해도 수입은 불안정했고, 집에서 일하다 보니 아이들하고 갈등이 자주 생겼다. 체력과 인내심은 바닥났다. 간식 달라는 말에도, 색종이 잘라 달라는 말에도 짜증이 났다. --- p.158 결혼을 하고 남편 고향으로 귀농을 했다. 그곳에서 아이 넷을 낳았다. 반복된 임신과 출산은 자발적 선택이었다. 몸은 고되지만 웃으면서 육아를 해냈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자꾸만 타인의 자유를 힐끗거리며 혼자인 나를 상상했다. 그렇지만 ‘엄마’를 빼고 나면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막 백일이 된 넷째를 등에 업고 설거지를 하다가 눈물이 툭 떨어졌다.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최선이었을까. 덜그덕 덜그덕 마음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설명할 수 없는 설움이 밀려왔다. 그날 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소매가 늘어난 낡은 티셔츠, 뒤로 질끈 묶어 올린 부스스한 머리, 푸석한 얼굴 뒤로 까마득한 시간이 흘러갔다. 더는 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 p.179 무엇보다 큰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났다. 부너미 샘들이 일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배움과 자극이 일어난다. 그런 배움과 자극 덕분에 이제 나는 일상의 벽 앞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설익은 초록빛 토마토이던 나는 부너미 샘들을 만날 때마다 튀김옷 입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처럼 조금씩 달라진다. ‘엄마에게도 언어가 필요하다’며 남성 중심 사회에 작은 균열을 내고 싶어하는 우리는 우리들에게 잇지와 루스이면서 니니와 에블린일지도 모른다. --- p.217 영화관하고 멀어진 이유는 아이 탓도 아니고 남편 탓도 아니었다. 티켓 가격을 보면서 생활비가 먼저 떠올랐고, 후줄근한 나를 단장하고 동네를 벗어나 시내 영화관으로 가기도 귀찮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하는 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과정도 모두 번거로웠다. 아이 데리고 시가에 가면서 간만에 혼자 영화도 보고 쉬고 오라며 남편이 권해도 집에서 냉장고 정리를 한 사람은 나였다. 나만을 위한 작은 지출도 사치라며 내 욕구나 취향을 가볍게 밀어낸 사람도 나였다. 문득 영화 보러 영화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22 |
|
밤 열 시,
‘육퇴’하고 시작하는 같이 혼자서 영화 보기 모두 잠든 시간, 집안일과 돌봄에서 겨우 벗어난 엄마들은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져도 쉽게 잠들 수 없다. 귀하디귀한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일상에 쫓겨 희미해지는 진짜 나를 또렷이 마주할 순간이다. 고립된 엄마들은 혼자서 동영상 서비스에 접속해 같이 영화를 본다. 그러고는 영화 이야기인 듯한 내 이야기, 내 글인 듯한 영화 에세이를 쓴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면서 ‘B급 며느리’와 ‘B급 시어머니’가 만나고, 맞벌이 부부의 주 양육자라는 자각에 힘들어하고,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마음으로 영화관으로 향하고, 나만을 위한 작은 사치를 부리기로 결심한다. 부너미가 쓴 엄마들의 영화 이야기는 세 가지 해시태그로 갈무리된다. 1장 ‘조조할인’에서 엄마들은 〈우리집〉, 〈기생충〉, 〈가족의 탄생〉, 〈보이후드〉, 〈우리의 20세기〉, 〈결혼이야기〉, 〈톰보이〉, 〈B급 며느리〉를 본다. 2장 ‘심야 영화’에서 만나는 엄마들의 영화는 〈툴리〉, 〈펭귄 블룸〉, 〈박강아름, 결혼하다〉, 〈남매의 여름밤〉, 〈레볼루셔너리 로드〉, 〈벌새〉, 〈소공녀〉, 〈욕창〉, 〈케빈에 대하여〉다. 3장 ‘주말의 명화’에 담긴 목록은 〈82년생 김지영〉, 〈찬실이는 복도 많지〉, 〈디 아워스〉, 〈마나나의 가출〉, 〈안토니아스 라인〉, 〈비포 미드나잇〉, 〈블랙 위도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크루엘라〉다. 구호보다 공감으로 가부장제를 흔들고 나를 찾아가기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웹툰 〈송곳〉에 나온 이 대사처럼 같은 영화도 결혼, 임신, 출산, 양육이라는 경험을 통과한 뒤에 다시 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영화관 스크린에서 거실 텔레비전이나 서재 노트북으로 보는 장소까지 바뀐 지금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날 선 구호보다 느린 공감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우리 같이 볼래요?』는 부너미가 지금까지 낸 두 책처럼 강하고 도발적인 주제를 담고 있지 않다. 온라인으로 좀더 많은 엄마들이 모여서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엄마들의 일상에 좀더 깊이 파고들어 누구나 고개 끄덕일 만한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영화는 공감을 끌어내는 힘을 지닌 예술이고, 공감에 바탕한 이야기들은 좀더 쉽게 전달되리라 믿은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짧은 글들이 가부장제에 제기하는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영화가 아니라 삶을, 내 삶에 스며든 영화 이야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같이 볼래요?』는 기혼 여성의 관점으로 영화를 보려 노력한 결실이다.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아내, 엄마, 딸, 며느리 같은 ‘정상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기혼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다양한 영화를 매개로 느낀 감동과 기쁨, 혼란과 좌절, 희망과 실천적 노력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엄마의 모습은 여전히 단편적이고, 영화 평론가나 학자가 엄마의 삶을 분석한 글은 뭔가 불편한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 같이 볼래요?』를 함께 쓴 우리의 목표는 결혼 제도 바깥에 서 있는 여성들까지 포함해 영화 이야기를 우리들의 이야기로 계속 이어가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