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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eko Kawakami,かわかみ みえこ,川上 未映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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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끝나가는 어느 날, 필통을 열자 연필과 연필 사이에 작게 접힌 쪽지가 세워둔 것처럼 꽂혀 있었다.
펼쳐봤더니 샤프로 적은 글이 보였다. ‘우리는 한편이야.’ 물고기 잔가시 같은 연한 글씨였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 p.5 “기빠민.” 고지마는 웃는 얼굴 그대로 한숨을 섞어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발치를 봤다. 기빠…? 나는 속으로 짧게 따라 말하며,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건 어느 타이밍에 어떤 식으로 물어야 할지 몰라 결국 잠자코 있었다. --- p.17 “봐. 사팔뜨기는 거기 있기만 해도 모두의 의욕을 꺾는단 말이야.” 나는 줄넘기 줄로 손을 묶이고 걸레로 입이 틀어막힌 채 청소 도구함에 들어갔다. “너, 그거 떨어트리지 마. 떨어트리면 일주일 동안 계속할 거야.” 니노미야가 그렇게 말하자 부하 중 하나가 나를 떠밀었고, 느긋한 소리를 내며 철제문이 닫혔다. 청소 도구함에 갇힌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먼지 냄새로 가득한 옅은 어둠은 오히려 내가 잘 아는 것이라는 기분조차 들었다. 이럴 때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숫자를 세고는 했다. --- p.28 “…우리가 이대로, 누구에게 무슨 짓을 당하든 아무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지금처럼 쭉 이야기하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언젠가는 진짜 물건이 될 수 있을까?”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서 나는 잠자코 바닥으로 시선을 떨궜다. 빛이 모든 창문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와 넘치는 전철 안에서 고지마의 운동화는 때가 타 시커멨다. 하얗게 보이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 p.55 아무리 학교생활이 끝나봤자, 환경이 바뀌어봤자 내 눈이 사시인 이상 본질적인 것은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더욱 비참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고, 지금 내가 모를 뿐이지 어쩌면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텔레비전에 나온 중학생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죽임당할 수도 있다, 실은 벌써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해갔고, 그러다 보니 내가 이제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어져서 두려움과 구역질만 치밀어 올랐다. --- p.90 “너 말이야, 반드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집에 가. 우리가 여기서 나가고 나면… 그렇지, 30분쯤 뒤에 나가. 아직 회의 중이겠지만 조심 또 조심하라고.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가족들한테도 안 들키게 주의하고. …참, 그보다도.” 니노미야는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 pp.148~149 “나뿐만이 아니야. 너희는… 고지마도 똑같이 괴롭히잖아. 지저분하다고 깔보면서 계속 괴롭히잖아. 그게 우연이라면 왜 나랑 고지마야? 우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째서 우리가 그런 꼴을 당해야 하는데?” 나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고지마?” 모모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봤다. “아아, 그런 애가 있지.” 바람이 세게 불어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 p.198 “너희들 더러워. 사팔뜨기랑 음식물 쓰레기.” 나와 고지마는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밝았지만 천둥소리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이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일까? 나는 생각했다. --- p.264 고지마는 단 하나뿐인 내 소중한 친구였다. --- p.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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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고립감, 희망을 모두 무너뜨릴 만큼
놀랍고 솔직한 이야기 이 소설은 4월의 어느 날 주인공인 ‘나’가 필통에서 “우리는 한편이야”라고 적힌 쪽지를 받으며 시작된다. 남들과 다른 눈, 사시를 가진 ‘나’는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쪽지가 왕따인 자신을 괴롭히려는 새로운 시도가 아닌지 의심한다. 그런데 쪽지를 보낸 건 더럽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는 같은 반의 또 다른 왕따 ‘고지마’다. 이로써 두 사람 사이에 마음의 교류가 시작된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첫날, 고지마는 ‘나’에게 ‘헤븐’을 보러 미술관에 가자고 제안한다. ‘헤븐’은 미술관에 걸린 어떤 작품을 보고 “슬픔과 고난을 극복한 후에 도달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하며 고지마가 새롭게 붙인 그림의 제목이다. 고지마는 ‘나’에게 ‘헤븐’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보복이 두려워 반항할 생각조차 못 하던 ‘나’에게 맞닥뜨린 고통을 견뎌내면 ‘헤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고지마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방학 내내 왕따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빌었던 ‘나’의 바람과 달리 개학해서 마주한 반 아이들의 괴롭힘은 버티기 힘들 만큼 거세진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방적인 학대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절망 속에서 ‘나’는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과연 ‘나’는 폭력과 고통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학교 폭력’ 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의 규범과 도덕, 개인의 윤리적 가치를 조명하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이 근절해야 한다고 외쳤음에도 학교 폭력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더 악질적이고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아이를 괴롭히기 위해 반 아이들을 폭력에 가담하게 하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만 때리며,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는 협박까지 하는 ‘니노미야’는 실제 사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가해자의 전형이다. 또한 니노미야가 성적이 우수하고 인기도 많아 가해자로 의심받지 않는다는 설정은 작품 속의 잔혹한 교실 풍경을 더욱 현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간결하고 명료하지만 치밀하게 구성된 문체 역시 작품에 사실성을 더해준다. 소설은 일방적인 폭력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그 대상이 ‘왜 나여야만 하는지’를 고민하는 중학생의 시각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담아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노출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가해자를 이해하려고까지 하는 주인공 내면의 목소리는 실제 중학생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절절하게 와닿는다. 나아가 소설은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인 고지마와 가해 학생인 모모세를 통해 우리가 사회의 규범과 도덕, 개인의 윤리적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벌어지며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모모세의 논리에도, “모든 약함에는 이유가 있으니 자신의 약함을 유지하며 존재하는 것으로 싸워야 한다”는 고지마의 논리에도 공감하지 못한다. 궤변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타당해 보이는 두 아이의 논리는 작품 안에서 대치하며 독자에게 약자와 강자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를 탁월한 문장으로 밀도 있게 들려주며 다채로운 실험을 하는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 초경을 시작한 초등학생, 딸을 홀로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싱글 맘, 친부모를 알지 못해 괴로워하는 의사, 술의 힘을 빌려 타인과 교류하는 프리랜서, 먹고살기 위해 범죄에 손을 대는 가출 청소년…. 가와카미 미에코는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약자들을 내레이터로 삼아 그들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펼쳐 보인다. 그녀는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내겠다고 치열하게 분투하는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를 탁월한 문장으로 밀도 있게 들려준다. 아쿠타가와상, 와타나베 준이치 문학상, 나카하라 주야 상 등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인정받은 그녀는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 선정 인터뷰에서 “열네 살짜리 내레이터에게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보여주고 싶어서” 『헤븐』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약자를 괴롭힌 이에게 똑같이 갚아주는 ‘사이다’ 같은 보복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인 헤븐을 그리워하는 두 아이의 모습을 통해 가와카미 미에코가 열네 살의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주인공 ‘나’와 같은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날카로운 심리적 통찰, 뛰어난 감수성과 동정심으로 독자를 비인간적이고 타락한 행동의 심연으로 끌어들인다.”_『퍼블리셔스 위클리』 “우아함과 명확함으로 학교 폭력의 파괴적인 본질과 공감이라는 우정의 힘을 탐구한다.” _『밀리언스』 “일본에서 빛나던 별 중 하나가 세계 문학의 하늘에서 폭발한다!”_『재팬 타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