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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기억
제1장 루카 제2장 헬렌 제3장 엠마 제4장 마트료시카 제5장 헬가 제6장 너서리 제7장 젤리피쉬 제8장 렌필드 제9장 로라 킹 제10장 카미야 미나 제11장 레이디버드 제12장 생명 제13장 뱀파이어 옮긴이의 말 |
Shunji Iwai,いわい しゅんじ,岩井 俊二
이와이 슌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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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 순백의 고치다.
거미의 알일까? 아니면 거미줄에 걸려 먹이가 된 곤충일까? 아무튼 알 수 없다. 거기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모른다. 거미 스스로 고치가 되어 나중에 날개가 돋은 모습으로 변해 비상한다면……. 불쾌한 상상을 떠올리는 사이, 확인해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된 나는 줄을 헤치고 고치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 p.8 원래부터 뱀파이어란 그런 자를 말하는 것이며, 관 속에서 자고 있다거나 십자가에 약하다거나 태양빛을 쬐면 재가 된다거나 하는 황당무계한 설정은 픽션 세계의 것이다. 그런 픽션들만이 범람하여 어느새 인간은 우리들 뱀파이어를 가공의 존재로 간주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한 가공의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 p.13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얼굴도 모르는 내 아버지는 살인범이고 지금 형무소에 복역하고 있다는 식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매우 관심을 보이던 아이들도 냉정을 되찾고 나면 께름칙해하며 나를 무시하거나 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산 제물이 필요할 때면 억지로 나를 끌어들였다. 예컨대 모래에 파묻는다거나. --- p.29 대학시절에는 꽤 많은 책을 읽었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 카프카의 『변신』, 카뮈의 『이방인』, 대니얼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드는 책은 죄다 이단의 서(書)였다. 흡혈귀에 대한 책들도 섭렵했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읽긴 했지만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시점이 지나치게 인간 쪽에 기울어 그려져 있다. --- p.41 여자는 다리 난간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뭐야? 죽고 싶은 거 아니었어? 여자는 죽고 싶어 하지만, 그 피와 뼈와 살은 아직 죽음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건가? 근데 안됐지만 그 피만은 내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죽을 거면 아가씨 피를 주지 않겠어?” “네에?” “나는 뱀파이어거든.” 그녀는 잠시 어안이 벙벙하여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 인간은 뭐하는 놈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짐작도 가지 않는군. 그런 표정이었다. 무언가 말하려 한다. 하지만 머뭇거린다. --- p.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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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레터] [4월 이야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지극히 특별한 뱀파이어 이야기! 8년 만에 장편영화로 돌아온 이와이 슌지 감독의 [뱀파이어]의 소설 원작!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러브레터],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등의 영화로 꽤 두툼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와이 슌지 감독이 8년 만에 만든 장편영화 [뱀파이어]를 소설화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과 분위기는 그 이전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고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뱀파이어] 이전까지 저자는 서정적이면서도 감수성 짙은 내용을 대중의 정서에 호응할 수 있는 감각적인 영상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한 ‘마이너리티’의 복잡한 내면 심리와 성장사를 다뤘다. 그리하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연약한 느낌의 뱀파이어가 탄생했다. 그 뱀파이어가 만난 사람들, 주로 젊은 여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저자는, 저자 특유의 세계관과 미의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내 이름은, 사이먼 윌리엄스. 지난주에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고등학교 교사. 생물 담당. 취미는 피를 빨아먹는 일. 분류적으로는 뱀파이어.” 한 남자가 담담히 고백한다. 자신의 취미는 피를 빨아먹는 일이라고. 그걸 무어라 이름지을 수 있을까? 바로 ‘뱀파이어’라 정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뱀파이어는 픽션 세계의 그것처럼 “낮 동안 관 속에서 잠을 잔다거나, 십자가를 만지면 피부가 문드러진다거나, 태양빛을 쬐면 재가 되어버린다거나, 애당초 이미 죽어 있다거나 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렇지만 “피를 원하고, 피를 마시고 싶고, 마실 수 있다면 뒤집어쓸 정도로 마시고 싶고, 남자의 피는 필요 없고, 젊은 여성의 피가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존재이다. 마이너리티 중에서 극단적인 마이너리티 이야기! “죽을 거면 당신 피를 주지 않겠어?” 그렇다. 이 소설은 흡혈 충동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흡혈 충동을 해결하는 방식은 기존의 뱀파이어물처럼 아주 거칠고 폭력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 사회의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지 않는 방식으로, 가능한 한 부드럽게! 이를테면, “죽을 거면 당신 피를 주지 않겠어?”라고 주인공 사이먼 윌리엄스는 흡혈 대상자들에게 묻는다. 또한 사이먼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으며, 자살하려는 한 여고생을 설득하여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참여한 자살 지원자 모임 중에 유명인이 껴 있으면 긴장해서 떨기도 하고, 뱀파이어를 자처하는 다른 살인범이 여성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뱀파이어의 모순된 행동을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소설엔 기존 우리가 품고 있던 잔인하면서도 강인한 이미지의 뱀파이어는 나오지 않는다. 나약하고 섬세한 새로운 유형의 뱀파이어를, 이와이 슌지 감독은 그 특유의 세계관과 미의식으로 그려냈다. 세상 끝에 선 고독한 영혼들의 지극히 특별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섬뜩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특유의 담담하고 담박한 문체로 풀어낸 이 뱀파이어 청년의 고백서를 통해, 독자들이 ‘익숙하고도 낯선 이와이 월드’를 새로이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소설을 흥미롭게 보신 독자에게는, 이 작품을 토대로 이와이 슌지 감독이 캐나다에서 만든 영화 [뱀파이어]도 추천하고 싶다.” (옮긴이 강민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