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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 사랑한다는 말 대신_엄명자 - 이제 굳이 달래 된장찌개가 아니어도_송은주 -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엔 코티분 뚜껑을 열었다_엄서영 - 이렇게 해서라도 흙을 밟아야겠습니다_황경희 - 할머니의 정원에는 봉숭아가 피었습니다_이윤지 - 아플 때만이라도 내게 밥을 해주면 좋겠어_우정숙 - 아들, 밥 먹었어?_허필우 - 골목 어귀에서 밥 냄새가 날 때면_심미경 - 장지갑을 꺼내며_박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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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공허하거나 서글퍼지기 쉬운 가족의 마음도 구수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밥 냄새로 채워주고, 따뜻한 사랑을 표현하면서, 언젠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래,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오늘도 슬슬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저녁은 집에서 먹나요? 먹고 싶은 반찬 없어요?” “오늘은 날씨가 너무 차니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개 끓일게요. 이따가 봐요.” ---「사랑한다는 말 대신」중에서 가족이 요리할 때 집은 둥지가 되나 보다. 엄마 새를 향해 입 벌리고 있는 새끼 새들이라니, ‘함께 먹는 입’을 뜻하는 식구(食口)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장면이다. 식구란 함께 먹을 밥을 향해 입 벌리고 팔 벌리고 부둥켜안는 존재들이다. 이래서 식구들과 부대끼며 함께 만들고 냄새 켜켜이 쌓이는 집밥이 어떤 음식보다도 우리 식구와 가장 잘 어울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굳이 달래 된장찌개가 아니어도」중에서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기억은 파나 마늘 같은 양념 냄새가 아니라 코티분 향기에 담겨 있었다. 나는 익숙하지 않던 엄마 냄새로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의 엄마 향기. 나는 여전히 엄마의 코티분 향기가 아프고 그립다.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엔 코티분 뚜껑을 열었다」중에서 바쁜 도시 속 네모난 아파트에 살지만, 일주일에 한 번쯤은 계절에 너무나도 정직한 흙냄새를 졸졸 따라다녀야겠다. 사소하고 평범한 장면에, 살랑살랑 오후의 바람에 재채기처럼 숨길 수 없는 웃음을 머금고. 시간 내어, 돈 들여 흙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식과 예의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건강은 보너스 선물이 되겠지? ---「이렇게 해서라도 흙을 밟아야겠습니다」중에서 우리 할머니는 손녀를 만날 때만은, 손녀에게 용돈을 주실 때만은 부자였다. 본인을 위해서는 10원짜리 하나도 아끼시는 분이 중한 돈을 자꾸 내게 주셨다. 부자 할머니 덕분에 나는 20만 원짜리 수학 과외도 받았고, 386 컴퓨터도 샀다. 엄마는 할머니의 만 원 한 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할머니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다. 나도 그 마음을 알기에 졸음을 참아가며 기를 쓰고 공부했다. ---「할머니의 정원에는 봉숭아가 피었습니다」중에서 남편이 나를 위해 백만 년(?) 만에 끓인 김치찌개와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퍼서 식탁에 앉았다.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먹으려는 순간, 둔해진 코에 달근하고 구수한 냄새가 스며든다. 익숙하지만 낯선 냄새. 남편이 해준 부드러운 밥 냄새는 나를 절로 미소 짓게 했다. 며칠 동안의 마음고생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 정도, 이렇게 아주 가끔 해주는 밥 한 번에 감사했다. 나에게도 힘들 때 나를 돌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때 위로가 된다. 힘을 낼 수 있다. ---「아플 때만이라도 내게 밥을 해주면 좋겠어」중에서 어느 해, 부모님은 수박을 재배하셨다. 논두렁에 쑥 냄새가 퍼지는 계절에 수박 농사가 시작되었고, 나는 수박이 탱글탱글해지는 늦은 봄쯤 부모님 댁에 들렀다. 농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니 곳곳에 1.8리터짜리 물통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물을 많이 드시나?’ 하고 의아했는데, 금세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박을 위해 꾸려놓은 비닐하우스 안은 한증막 같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물을 마시지 않으니 금방 어지러워졌다. 그날, 차 트렁크에 실린 수박 한 덩이는 세상 어떤 돌덩이보다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눌렀다. ---「아들, 밥 먹었어?」중에서 골목 어귀에서 밥 냄새가 날 때면 눈을 감고 걸어도 집으로 가는 골목을 알 수 있었다. 생선구이, 불고기, 김치찌개……. 맛있는 냄새를 모두 지나면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집이 하나 나왔다. 나는 거기 살았다. 밖에서 일하시는 엄마는 저녁 먹으라고 나를 부르는 일도, 찾으러 나오는 일도 없었다. 불 꺼진 우리 집에선 당연히 밥 짓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골목 어귀에서 밥 냄새가 날 때면」중에서 광고에서 말한 시트러스 향 같은 것은 맡지 못했지만, 내 기억 속 돈 냄새에는 그보다 향기로운 사람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디지털 머니는 편리하기는 해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0과 1, 생존 아니면 아웃이라는 디지털 관계로 치환되는 느낌이랄까. 아들에게 덕담을 건네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세뱃돈을 송금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따스해지기는커녕 낯설고 서늘하기만 하다. 그럴 때면, 설날 아침부터 바쁜 와중에 시장까지 가서 돈을 거슬러오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에 밀려 돈 냄새와 함께 사라진 사람 냄새가 유독 그리워진다. ---「장지갑을 꺼내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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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펀딩 509% 달성한 화제의 에세이,
모든 소중한 기억은 냄새와 함께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홍차와 마들렌 냄새를 맡는 순간, 마치 어린 시절의 한가운데로 돌아간 것처럼 당시를 생생하게 회상하는 경험을 했고, 그 일을 토대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썼습니다. 이렇게 특정한 냄새를 통해 무의식 저 너머의 기억이 되살아난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눈을 감고 아무리 돌이켜보려 해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던 풍경이나 상황이, 코끝을 스치는 약간의 냄새만으로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하지요. 이처럼 후각은 오감 중 가장 강렬하고, 우리는 냄새에 단순한 감각 이상의 무엇을 담아 간직합니다. 잊고 지냈던 소중하고도 가슴 시린 기억들이 오늘의 나를 조금쯤 더 따뜻하게 해줍니다 여행을 떠났을 때, 좋은 사람들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든 그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으로 남기려 합니다.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를 꺼내며 “남는 건 사진뿐이야.”라는 단골 멘트까지 덧붙이지요. 소중한 기억을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만큼 본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시련을 견뎌내느라, 때로는 빛보다도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에 쫓기느라, 하루하루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느라 어느덧 그토록 반짝이던 순간들을 기억과 의식 너머 저 멀리 팽개치기 일쑤입니다. 추억에도 앨범이 있다면 언제든 꺼내볼 수 있으련만, ‘현실’이라는 삶의 냉혹함 앞에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하지요. 가끔, 아주 가끔 옛 친구를 만나 그간 잊고 지냈던 기억을 돌이켜보고 잠시나마 그 순간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얼마큼 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러니 잠시 눈을 감고, 가장 돌아가고 싶었던 그 순간의 기억을 생생히 되살려보는 건 어떨까요? 그 순간의 ‘냄새’를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아홉 작가가 말하는, 너무도 그립고 가슴 먹먹한 돌아갈 수 없어서 더 애틋한 기억 속 냄새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엔 코티분 뚜껑을 열었다』의 아홉 작가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애틋할 만큼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그 시절을 그대로 담아낸 그리운 냄새가 있노라고. 우연히 그 냄새를 맡은 순간, 그 시절로 생생히 돌아간 기억이 있노라고. 손녀를 누구보다도 아껴준 할머니의 정원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봉숭아 냄새, 따사로운 4월 서로를 식구로 이어준 달래 된장찌개의 풋풋한 냄새, 어린 시절 지천으로 널려 있었지만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쳤던 정겨운 흙냄새, 노을이 질 무렵이면 유년기를 오롯이 보낸 골목 어귀를 가득 메우던 밥 냄새, 아버지께 건네받은 세뱃돈에서 맡았던 짙은 사랑의 냄새, 항상 음식 양념 냄새와 함께였던 엄마를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기억하게 해준 코티분 냄새까지. 돌아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기에 더욱 그립고 소중한 아홉 작가의 기억 속 냄새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