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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은 스님
시작하며: 사소한 것이 인생을 바꾼다 일주문_ 들어올 땐 업장소멸 나갈 땐 복덕구족 찻잔_ 차향을 머금은 찻잔 도반_ 도반은 수행의 전부다 탑과 부도_ 수행자의 시작과 끝 의자_ 참외와 호박한테도 앉을 자리를 내줘야지 차안과 피안_ 여기 또는 거기 발_ 맨발과 양말 나무_ 나무(木)와 나무(南無) 와불_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선재동자_ 어린왕자와 지구별 친구 바람_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출가_ 틀을 깨고 나와야 다다를 수 있다 노을_ 해 질 무렵, 여운을 남기는 삶 길과 암자_ 길 위에서 여행_ 내 인생의 ‘초우따라’ 감성과 이성_ 알고 보면 각자의 입장이 있을 뿐이다 스승_ 스미고 번져나가 피어나는 것 꽃_ 어제는 우화(雨花), 오늘은 금화(今花) 출퇴근_ 스쳐간 일상에 부처 아님이 없다 노년_ 늙어가는 것에 대하여 마치며: ‘인생 호흡’의 타이밍 * 진광 스님 시작하며: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일주문_ 그르쳐 가지 않는 마음 찻잔_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도반_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영웅입니다 탑과 부도_ 큰 이름은 애써 새길 필요가 없나니 의자_ 좌복에서 보낸 한 철 차안과 피안_ 여기든 거기든 모두가 이 한마음 속에 발_ 맨발의 정신 나무_ 자작나무 숲에서 와불_ 무릇 당신도 등짐 속의 한 짐 선재동자_ 〈은하철도 999〉를 다시 보다 바람_ 바람(願)과 바람(風) 출가_ “이 좋은 걸 왜 못하고 계세요?” 노을_ 다시 살아야겠다 길과 암자_ 내가 만행을 하는 이유 여행_ 매일매일 나그네로 여행 중 감성과 이성_ 다만 몸으로 익힐 뿐 스승_ 은사님께 보내는 편지 꽃_ 꽃들을 위한 시가(詩歌) 출퇴근_ 아침저녁으로 부처를 만나다 노년_ 세 가지 소원 마치며: 안녕(goodbye) 하니 안녕(hello)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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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찻잔’은 사소한 것이고, ‘출가’는 위대한 것인가? 흔히 출가를 가리켜 ‘위대한 포기’라는 표현을 쓴다. 그 위대한 포기가 지리산 토굴 시절 작은 찻잔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난 아마 지금의 수행자로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찻잔’ 하나가 수행의 의지처가 되고 위대한 포기의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6쪽, 동은, ‘시작하며’」중에서 천 리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자 할진댄 누각을 한 층 더 올라가야 하고, 백척간두에 서면 한 걸음 더 내딛어야 한다. 그때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를 것이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다시 보고, 듣고, 느껴보자! ---「7쪽, 진광, ‘시작하며’」중에서 산사 일주문에 매달려 있는 풍경들은 그 절의 온갖 애환을 간직한 타임캡슐과도 같다. 바람결에 그 절절한 사연들을 모두 풀어내며 무상법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나의 가슴 아픈 추억의 한 장면도 월정사 일주문 밖 어디쯤에선가 서성이고 있을 게다. ---「11쪽, 동은, ‘일주문’」중에서 좌복은 단순히 좌복만이 아니다. 하나의 좌복은 수좌의 의자이자 침구이며 또한 진리를 드러내는 법구이자 수좌의 정진을 상징하는 표상과도 같다. 즉 좌복은 진리의 자리인 연화대이자, ‘선의 황금시대’를 향한 꿈과 희망 그리고 깨달음의 증거인 것이다. ---「33~34쪽, 진광, ‘의자’」중에서 ‘여기’에 사는 중생들은 늘 고된 삶을 부지하며, ‘거기’에 있다는 행복을 얻기 위해 죽을 때까지 애를 쓴다. 그러나 그렇게 애를 써도 결국에는 다 이루지 못하고 거기로 간다.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 자체가 ‘여기’에서 ‘거기’로 지향하는 원을 세우고 하나씩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39쪽, 동은, ‘차안과 피안’」중에서 운주사 와불 옆에 가만히 누워 생각한다. 민초들의 벗이 되고 그들을 하늘로 알고 섬기노라면 운주사 와불은 어느 날 시나브로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라고. 새날, 새 세상, 새 사람만이 오늘과 내일의 희망이자 깨달음이라고. 나 역시 운주사 와불처럼 이 세상과 중생의 짐을 이고 진 채, 세상과 중생에게로 당당히 걸어가고 싶다. ---「59쪽, 진광, ‘와불’」중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사람은 존재가 아니라 바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문득 바람 냄새를 맡게 될 때 가슴 아린 그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 내 삶에서 ‘어제의 바람’은 병든 한 청년이 고뇌하던 질풍노도의 바람이었다. ‘오늘의 바람’은 불보살님의 가피로 다시 태어난 행복한 수행자의 바람이다. ‘내일의 바람’은 따뜻한 훈풍으로 중생들 곁으로 다가가는 바람이다. ---「70쪽, 동은, ‘바람’」중에서 나는 지금도 매 순간, 매일매일 또 다른 출가(出家)를 꿈꾼다. 출가는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와 나 자신으로부터 ‘버림’과 ‘떠남’이 참 출가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 법이다. 그렇게 우리는 본래 내 집으로 돌아가려는, 귀가도중(歸家途中)의 영원한 나그네다. ---「76쪽, 진광, ‘출가’」중에서 ‘황금’이란 꽃이 지나간 시간이라면, ‘지금’이란 꽃은 내가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금이다. 살다가 문득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게 준 꽃을 소환하고 싶을 때는 잘 생각해야 한다. 언젠가 ‘지금’이라는 꽃도 다시 소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 순간순간들이 모두 내 인생의 꽃봉오리였던 것이다. ---「109쪽, 동은, ‘꽃’」중에서 저 먼 곳의 정토나 극락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 우리 주위의 부처를 자비와 친절로 대한다면 그곳이 바로 불국정토가 아닐는지.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부처이자 보살이고 선지식이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길벗(도반)이 아닌가 싶다. ---「115쪽, 진광, ‘출퇴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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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하나에도 시방세계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티끌 같은 사소한 일들이 우리 삶을 바꾼다 〈법성게〉에 따르면,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세계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一微塵中含十方)’고 했다. 즉 진리는 깨달은 자의 큰 뜻에만 있는 게 아닌, 티끌 같은 사소한 것들 어디에나 있다는 말이다. 저자인 동은 스님과 진광 스님은 사소한 것들을 깊이 바라볼 수 있으면 저마다 삶이 소중하다고 느끼게 되고, 거기서 인생의 의미가 특별해진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정답이 따로 없으며,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깊이 바라볼 수 있어야 내 삶이 풍성해진다는 이야기일 테다. 이를테면 ‘와불’이란 주제에서 동은 스님은 오래전 인도 순례길에서 친견한 와불을 떠올리며, 45년간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다가 쇠약해지고 지친 몸으로 사라수 아래 누워 다시 일어나지 못한 마지막 모습을 들려준다. 동은 스님은 이렇듯 ‘가장 인간적인 삶이야말로 가장 수행자적인 삶’이라는 생각을 와불을 통해 자연스레 펼쳐놓는다. 한편, 진광 스님은 운주사 와불을 떠올리며, 우리가 민초들의 벗이 되고 그들을 하늘로 알고 섬긴다면 누워계신 부처님이 어느 날 시나브로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으며, 자신도 중생의 짐을 나누어 짊어지고 세상과 중생에게로 당당히 걸어가고 싶다고 다짐한다. 와불뿐 아니라 출퇴근길, 여행의 풍경, 노을, 길 등 다양한 주제에서 두 스님은 각자가 경험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마치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자기만의 경험이 있지 않느냐고 격려하는 듯. 결국 이 책에서 두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나’만의 시각으로 존재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자기 삶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다. 저자는, 이 책이 ‘사소함’에서 시작했지만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사소함이 결코 사소하지만은 않았음을 회고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런 식의 시도들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두 저자는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의 목소리를 전한다. “‘사소함’이라는 주제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사소함의 기준이 무엇인가? ‘찻잔’은 사소한 것이고, ‘출가’는 위대한 것인가? 흔히 출가를 가리켜 ‘위대한 포기’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위대한 포기가 지리산 토굴 시절 작은 찻잔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난 아마 지금의 수행자로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찻잔’ 하나가 수행의 의지처가 되고 위대한 포기의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_동은, ‘시작하며’ 중에서 저마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 이 책은 한 주제에 대해 두 저자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의 질문에 접근해간다. 그리고 그 진지한 사유가 독자들에게도 오롯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두 저자의 글을 독립적으로 배치했다.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종국에는 하나의 길 위에서 만난다는, 어떻게 보면 이 책이 품고 있는 주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어떤 방식으로든 두 스님의 글을 모두 읽었을 때 좀 더 의미가 깊다. 실제로 동은 스님과 진광 스님은 글을 쓰는 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서로 다른 면모를 발견하면서 더욱더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두 저자의 이런 배려가, 처음 출발점은 다르지만 도착점은 가장 가까이서 만난다는 이 책의 구성과도 잘 들어맞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이 책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읽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동은 스님과 함께 같은 주제에 서로 다른 생각을 펼쳐나가면서 때론 스님의 멋진 글에 절망해서 붓을 꺾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스님과 함께하며 참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주제 회차가 거듭될수록 무거운 중압감은 기분 좋은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그 자체로 큰 보상을 받은 기분이다. (…) 길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어김없이 길은 다시 시작된다. 이 길 위에서 배고픈 채로 우직하게 다만 가고 또한 갈 따름이다.” _진광, ‘마치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