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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모두들 꿈을 꾸었다 _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비껴나 개인으로서 이야기하다『광화문 골목집에서』은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1947년 미군정 시절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에 일어났던 많은 사건 ? 사고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위대가 격렬히 맞부딪치고, 정치적 테러도 서슴지 않게 일어났던 때이지만, 주인공들에겐 이 시기의 서울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시간이자 공간이다. 혼란스러운 사회에 대한 걱정과는 별개로 주인공 십대 소년 ? 소녀 영선과 나비, 그리고 을수는 각자 자신의 방식과 방향으로 삶을 꾸려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광화문 골목집에서』는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비껴나 그 당시를 살아가는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담아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민족이라는 경계에서 벗어나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과거의 역사는 독자에게 역시 새로운 시선을 건넨다. 나를 귀하고 중하게 만드는 것 _인물 간의 관계『광화문 골목집에서』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인물 간의 관계다. 유복하게 자란 영선과 식모 을수, 그리고 고아 나비는 우연한 기회에 광화문 골목집이라는 공통의 공간에서 지내게 되면서 서로가 서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인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서도 성장한다는 점이다.그런데 나비를 보면서 깨달았다. 을수는 그냥 식모가 아니었다. (...) 자신을 보살피고 위로하고 보듬는 언니였다. 벌써 7년째 따로따로 각자의 인생을 살면서도 둘의 인생은 저절로 얽혔다. 노릇하게 잘 익은 꽈배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영선은 제대로 얽힌 자기들 둘의 인생이 이왕이면 더 쫄깃하고 더 고소한 것이 되길 바라게 되었다. _본문 중에서“나비나 나나 너무 어릴 적부터 다 큰 어른처럼 살았어. (...) 다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하잖아. (...) 넌 몰라, 그거. 얼마나 힘든 건지, 얼마나 외롭고 지치는 건지 넌 알 수가 없어. 나는 나비가 남 같지를 않어.(...)”‘을수 얼굴에 저런 처량한 표정도 있었구나.’ / 영선은 속으로 생각하며 을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_본문 중에서영선은 나비와 을수의 관계를 보고 겪으면서 오래되어 미처 소중한 줄 몰랐던 자신과 을수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나비도 편안하고 익숙한 영선과 을수를, 을수도 어딘지 모르게 설레고 들뜬 영선과 나비를 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각자가 맺고 있는 관계를 재건한다. 이는 개개인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건 우리 모두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나의 삶’은 ‘당신의 삶’과 엮여 만들어 진다.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_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과의 교집합시대는 다르지만, 작품 속 세 아이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족함 없이 자라 큰 꿈이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영선은 요즘 보통 아이들의 모습에, 사회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며 주체적인 여성이 되기를 소망하는 을수와 자신의 목표와 운명을 어른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는 나비는 현재 시대가 원하고 바라는 청소년의 이상적인 모습에 빗댈 수 있다. 또한, 신분과 계층, 환경을 넘어서 알싸한 사랑을 주고받는 영선과 나비의 풋풋한 로맨스도 청소년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끈다.(...) 영선은 마치 허공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나비가 자기를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요즘 나비는 자주 그랬다. 말랑하고 투명한 손이 뺨에 가볍게 와 닿는, 말로는 또렷하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희한한 느낌에 돌아보면 거기에 영락없이 나비가 있었다. (...) / 나비가 그럴 때마다, 영선은 자신이 아주 소중하고 귀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비의 눈동자 안에서 점점 더 근사해지고,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_본문 중에서이처럼 『광화문 골목집에서』는 세 주인공을 통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의 모습을 대변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이상적인 면면을 제시하고,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과 같은 또래들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가슴을 두드리는 아름다운 문장들최은규 작가는 쉽고 편안한 문장들로 인물들의 심리와 생각을 때론 싱그럽게, 때론 절절하게 표현했다. 인물들 간의 대사에 느껴지는 말맛이나 사건과 배경을 보여 주는 촘촘한 묘사도 일품이지만, 일상의 작은 풍경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장면에서 작가의 문장은 특히 빛난다.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나란히 창문 너머로 코끝을 살짝 내밀었다. 바람이 얼굴에 끊임없이 부딪쳤다. 그 바람결 사이사이에서 새로운 시간이 태어나고 있었다. _본문 중에서잎을 잔뜩 매달고 있는 나무들은 생기가 넘쳤고, 나뭇잎 사이로 은은히 파고드는 햇살은 낭만적이었다. 영선은 감격했다.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하루’라는 것이 이렇게나 빛이 나고 짭조름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_본문 중에서『광화문 골목집에서』가 혼란스럽고 난폭한 시대를 그리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련함과 애틋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영선과 나비, 그리고 을수의 마음이 섬세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광화문 골목집에서』는 거창하지 않지만 소소하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차곡차곡 쌓여 독자들의 마음에 진하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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