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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Part 1. 이상한 날 바보 같은 날 사라지고 싶은 날 왕따가 되기로 한 날 예고 없이 쓸쓸한 날 나를 의심하는 날 무기력해지는 날 이유 없이 화가 나는 날 Part 2. 슬픈 날 사랑하기 힘든 날 나조차 미운 날 악몽이 시작되는 날 혼자 남았다고 생각되는 날 그만두고 싶은 날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하는 날 잠적하기로 한 날 Part 3. 좋은 날 외로움을 견디는 날 나만 봐도 좋은 날 마음껏 그리워하는 날 익숙해서 반가운 날 오지랖이 터지는 날 그냥 좋은 날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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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니. 언제 어디에서 와서, 여기 뿌리내리고 살결을 드러낸 거니.
난 화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어. 미안해. 다시 천천히 말했어. 네가 거기에서 나오려고 그렇게 오랫동안 애쓴 걸 몰라서 미안해. 살아있는 너를 의심해서 미안해. 가려진 시간을 몰라봐서 미안해. ---「프롤로그」중에서 작은 앨범을 만들어 가끔 들어가 쉬려던 것뿐이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도달했을 때, 나는 고민 없이 SNS 문을 닫았다. ---「사라지고 싶은 날」중에서 ‘별일 없지’, 라던 말은 ‘잘 지내’라는 잔소리였다. ‘그냥 산다’, 라던 말은 ‘보고 싶다’라는 그리움이었다. 그제야 친구가 전해준 막연한 쓸쓸함이 어느 밤의 꽃향기처럼 다가왔다. 그리움이 울컥 남았다. ---「예고 없이 쓸쓸한 날」중에서 “그때 왜 친구들을 용서했어?” 조카는 눈을 끔벅이며 대답했다. “게네들이 찾아와서 용서해달라고 했어요. 펑펑 울면서. 그래서 그땐,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조카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땐 사과를 받은 거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혼자 남았다고 생각되는 날」중에서 일을 그만두고 거리로 나오면서 나는 서둘러 단톡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메시지 알림에서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그렇다. 나는 이제 나만 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잠적할 것이다. ---「잠적하기로 한 날」중에서 가끔 내 손이 쓸모없게 느껴지는 날, 나는 원고를 쓰기도 하고 청소를 하기도 한다. 걸레질하고 설거지하면서 나의 쓸모를 찾는다. 가족이 먹을 음식을 하면서도 내 손을 쓸모 있게 쓴다. 그러다 전화를 걸기도 한다. 나의 쓸모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보고 싶었어, 잘 있는 거야, 라고 묻는다. 맞다. 외로우니까, 사랑한다. 그렇다.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 사랑받고, 사랑하도록. ---「외로움을 견디는 날」중에서 어떤 이유로든 나를 기억해주는 후배와 동생들에게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필요하다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던져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더 단단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다짐할 뿐이다. ---「오지랖이 터지는 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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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지만, 결국은 위로』 정화영 작가의 신작 에세이!
지치고 초라해진 마음을 달래줄 또 한 번의 위로 “말해줄게. 오늘은 나에게 어떤 하루인지.” 책과 영화 그리고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서툴지만, 결국은 위로』를 통해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었던 방송작가 정화영이 신작 『그런 날, 어떤 하루』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독특한 차례 구성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목차 전부가 ‘바보 같은 날’, ‘그만두고 싶은 날’, ‘오지랖이 터지는 날’ 등과 같이 어떠한 ‘날’들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서 정화영은 “만약 나한테 단어 사전이라는 게 있다면 맨 앞줄에 쓰이는 말은 ‘어느 날’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놀라게 만드는 사건은 항상 ‘어느 날’ 일어나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일상에 불쑥 찾아온 무언가가 마음을 들쑤시는 날. 기운을 빠지게 만들기도 하고, 지독하게 초라한 기분에 빠지게 하고, 아니면 불같이 화를 내게 만들기도 하는…… 그러면서도 “딱 하루”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위로가” 되고 괜찮을 수 있는 그런 날, 어떤 하루. 그 기억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 최선을 다해 일터를 지킨다. 그렇게 채워진 하루가 자부심이 되어 왔다.” (본문 66쪽) 『그런 날, 어떤 하루』에서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떼어놓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직장에서의 갈등이나 고민으로부터 촉발된 ‘어느 날’이 지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친구에게 “너는 왜 먼저 전화하지 않느냐”며 타박을 받은 뒤 어쩌다 전화를 힘들어하게 됐는지 되짚어보는 부분이 그렇다. 그는 업무 특성상 과도한 통화량을 소화해 내야 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휴가를 낸 날에도 업무 전화를 걸고 또 받아야 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전화에서 벗어날 방법은 일을 그만두는 것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업무 외에는 전화하는 것을 피하게 됐고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이 힘들어진 것이다. 이외에도 SNS를 삭제하게 된 계기나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된 사연, 늦은 밤 하염없이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이유 등에서도 볼 수 있는 저자의 ‘현실 직장인’ 면모는 현시대의 초상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삶을 꾸려나가는 일의 고단함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자신의 것과 똑 닮아 있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너도나도 다를 것이 없는 이 현실에 씁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자신의 초라하고 주눅 든 내면을 담담히 살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저자의 태도를 발견하고 그가 다짐하듯 새겨둔 문장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매회 서두에 배치된 짧은 글들이 유난히 긴 여운을 남기고 곱씹을수록 위안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맞다. 외로우니까, 사랑한다. 그렇다.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 사랑받고, 사랑하도록.” (본문 149쪽)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이 단지 삶의 고난에 대한 서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줄곧 위로와 공감을 전하기 위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런 날, 어떤 하루』 역시 그러한 주제 의식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화려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사소하면서도 유의미한 변화에의 추동.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이 단정한 자기 돌봄의 의미가 독자에게 가닿을 때 비로소 이 책은 완성된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서로를 돕고 지킬 수 있기에 서로의 기적이 될 수 있다.’는 문장에서 드러나듯이, 저자는 사람과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그 다정한 믿음에서 비롯된 따스하고 가만한 위안이 책을 덮인 후에도 잔향처럼 남아 독자의 곁에 머무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