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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꽃 겨울
속수무책 봄 초록화살 여름 아름 앓이 가을 걷다, 상처 난 길 나무 그곳에 뜬 낮달 그날 새벽 익숙한 동행 쓰디 쓴 문학 서툰 삶 |
劉容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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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지나자 시골 사람들 바깥출입이 눈에 띄게 빈번해졌다. 벌써부터 논밭에 나가 꼼지락거리는 사람이 많다. 농로에서나 밭가에서 만나면 모자부터 눌러 쓴다. 그들을 보면 그냥 고백하고 싶어진다. 죄 많은 인생 무릎 꿇고 빌고 싶어진다. --- p.35
갈아엎고 써래질하여 물 넘실넘실 받아놓은 논을 지나간다. 잠방잠방 모내기를 앞둔 논배미에는 비추지 못한 것이 없다. 하찮은 소금쟁이에서 산 그림자나 구름 하늘까지 다 담고 있다. 논배미 하나의 우주, 논배미 하나의 평등세상이다. --- p.39 뒤돌아보면 너무 느슨하지 않았던가. 오래 입다보면 저절로 느슨해지는 속옷 고무줄처럼, 스스로 그냥 늙어버린 것 아닌가. 그 험한 세월을, 얼마나… 그래, 이렇게 비 오고 바람 불어도 신문배달은 어김없이 오듯 삶은 빈틈없이 저렇게 오는데. --- p.54 하루를 열면서, 하루를 마감하면서 걷는 자만이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빗줄기 앞에서 고개 숙인다. 걷는 자는 도달할 수 있으며, 되돌릴 수도 있다는 것! 땀이 말해준다. --- p.77 세상의 모든 인연은 상처이지만 그 인연을 쉽게 끊지 못하듯이 세상의 모든 길은 상처투성이지만 집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어떤 더위도 땡볕도 이 발걸음을 이기지 못한다. --- p.83 비가 내려 산길 푹푹 패였다. 패이면서 낮아지는 산, 사람도 마음이 패어야 낮아진다. 성질 죽인다. 저 수미산이 평평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려야 하나. 나무와 풀이 없는 길이 먼저 패인다. 길이 곧 상처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많이 다닌 곳이 먼저 패인다. 사람이 상처다. --- p.87 똥을 정면으로 볼 줄 알아야 밥이 정면으로 보인다. 나무를 정면으로 볼 줄 알아야 땅이 정면으로 보이고 땅을 정확하게 들여다보아야 벌레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풀을 정면으로 볼 줄 알아야 하늘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고, 길을 두려워 않고 걸어봐야 사람을 정면으로 볼 수 있다. 너무 가까운 건 극명해서 제대로 못보고 중간은 어슴푸레해서 자세히 못보고 멀리 떨어진 것은 짙어서 눈이 흐려진다. --- p.140 망치 잡았던 손으로 삽을 잡는다. 망치 하나로 지상의 무수한 집들을 심어 올렸지만 내 집 한 채 없이 연장가방 달랑 들고 이 빈집으로 들어왔다. 집을 짓는 대신 나무를 심는다. 해체작업 대신 씨앗을 뿌린다. 심는 사람이 거둘 일을 생각하겠는가. 심는 자는 오직 심고 가꿀 뿐, 거두는 자가 누구인들 상관없다. 망치 잡았던 손으로 삽을 쥐고 나무를 심는다. 지상에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집 한 채를 심는다. --- p.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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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삶을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며 성찰한 시와 단상들,
‘작은것이 아름답다’에서 펴내는 유용주 시문집 세상이라는 숲을 건너며 풀어낸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 넘어지고 다쳐도 보다 낮은 곳에서 견디며, 거친 길 한편에 자리 잡은 푸릇한 들꽃에서 희망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전합니다. 걷다가, 세상의 길가에 넘어져 피 흘리고 있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바칩니다. “눈길에 걸어간 사람의 발자국을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생애가 고스란히 찍혀 나온다. 눈보라 속 허허벌판을 건너기 위해서는 몸을 구부리거나 가볍게 해야 한다. 날아가는 저 새를 보아라. 무거운 몸으로는 이 겨울을 날 수 없다.” (본문 18쪽)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2013.12)은 생태환경문화 월간지 [작은것이 아름답다]에 연재한 글,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와 《쏘주 한 잔 합시다》 가운데 일부, 그리고 일상과 삶을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며 성찰한 시와 단상을 엮은 것이다. 씨앗 품은 삶 자연 닮은 사람들의 월간지 [작은것이 아름답다]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환경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생태감수성을 깨우는 문화예술 지상전시, 지구별 푸른 소식과 지구를 살리는 초록빛 소식과 정보들, 이웃과 함께 행복한 삶을 일구는 현장을 전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을 쓰며, 고운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2013년 2월 200호를 발간했고, 2014년 창간 18돌을 맞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나무 한 그루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창간호부터 재생종이로 잡지를 펴내며 우리나라 재생종이운동을 이끌며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생복사지와 재생종이 문구 보급, 숲을 살리는 녹색출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