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제1부 상식이 무너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박근혜 정권의 거짓공약,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사회적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삼성을 욕하면서도 삼성에 열광하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까? 대선 결과와 통진당 사태, 진보 세력에게도 책임이 있다 현실에 관심을 갖고 지평을 넓혀 나간다면 이석기 사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제2부 경제민주화, 99%를 위한 변화와 실천 경제민주화,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부터 고민해야 사회 복지, 증세 때문에 힘들다고? 사회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방안은? 경제민주화, 근본적인 문제들부터 해결해야 가능하다 교육 혁명으로 시민의식을 성숙시켜야 한다 제3부 사회복지와 교육, 새로운 변화를 위해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했지만 커져만 가는 불행 진보 세력, 어떻게 해야 대중의 지지를 받을까? 몰상식한 언론이 주류가 된 세상 질문하고 사유하는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유와 실천을 공유하는 시민 교육을 위해 제4부 사회개혁,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위해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겠다지만 4대 권력기관은 국민 위에 통진당 사태, 진보 진영의 나아갈 길은? 시민을 위한 눈과 귀, 언론이 바로 서기 위해 아가리가 열려야 민주주의가 열린다 |
김민웅의 다른 상품
Hong Se-hwa,ホンセファ,洪世和,
홍세화의 다른 상품
|
>> 대선 결과와 통진당 사태, 진보 세력에게도 책임이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선언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등 권력기관의 대선 공작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시민들의 각오와 행동, 의지와 용기가 여기저기서 줄을 잇고 있다. 집권 세력이 불통(不通)으로 버티고 이런저런 구실을 걸어 진압하면 자연스럽게 지치고 조만간 꺼져갈 줄 알았던 촛불시위는 중단되지 않았고, 도리어 그 저항의 힘은 더더욱 단단해졌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목표로 한 종교계의 순교자적 자세는 거대한 기폭제가 되었으며, 대학생들에게까지 번져나간 시국인식의 불길은 지금 우리가 어떤 지점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그대로 일깨워주고 있는 사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의 과정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실상은 아직도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진보의 존재는 소멸되었다 싶기조차 한 것이 현실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열정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데도 진보의 공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집권 세력의 ‘종북몰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일차적인 책임은 진보 세력 자신에게 있다. 진보 세력의 정치적 미숙과 오판, 그리고 무지에 의해 진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진보 세력은 지난 두 차례의 민주당 집권을 거치면서 민주화를 완성했다고 착각했는데,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해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외면하고 말았다. 시민사회 활동이나 정치 운동을 해온 진보 세력까지도 의회주의의 틀 속에 갇히게 되면서 변색되었고,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는 가운데,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는 여당을 이겨야 한다는 이유로 진보 세력이 통합되었다. 자신들이 지켜내야 할 기본적인 가치와 의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놓지 못한 채 오로지 통합만이 강조되면서 대중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과 당면과제에 관해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박근혜 정권은 대선 공작 등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자 이석기 사태로 국면 전환을 꾀했다. 그런데, 검찰이 문제 삼은 그동안의 이석기 관련 행적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녹취록 하나밖에 없다. 녹취록과 녹음자료 내지는 동영상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내란음모’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있다. 하지만 진보 세력은 이석기 사태의 유탄이 날아오는 것을 막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그 누구도 제기하지 못했다. 또,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이석기 의원이 무기 사용 등의 말을 한 것은 당시 모임 현장에서 나온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에게 충격과 실망만 안겨주었다. 결국 통진당은 정당해산이라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대중의 엄호가 별로 없다는 것은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정의를 복구하는 작업 못지않게 진보 정당은 시민이 처한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여러 사회 문제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자본이 중심이 된 정치는 공공의 권리를 끊임없이 박탈하고 그것을 자신의 사적 소유로 만들어버리며, 부담과 책임은 공동체로 전가한다. 한마디로, 이익은 사유화하고 책임은 사회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여기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만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만다.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불법이 되고, 이에 저항하면 생존의 기반을 부숴버리고 만다. 진보 정당은 이러한 자본주의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제를 정면으로 내걸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으로 가는 길을 뚫어내야 한다. 공공성이 중심이 되는 제도와 정책, 그리고 이를 관철할 국가의 정체성을 만들어내야 시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 아가리가 열려야 민주주의의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정권은 경제민주화를 외쳤지만 일부 대기업 총수의 비자금을 수사하고, 전두환에게 추징금을 받아내는 것이 마치 경제민주화의 전부인 듯 행동하고 있다. 여당은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를 탄압하고 있는데, 정치적 자유까지 억압하는 최근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또, 박근혜 정권은 사회복지 공약도 외쳤지만 이 공약들을 하나둘 없애고 있다. 박근혜가 정권이 내세웠던 ‘국민행복 시대’는 허울뿐인 것이 되고 말았다. 정말로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되려면 분배와 재분배를 어떻게 균형 있게 이룰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자신들에 반하는 세력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는 데만 몰두하느라 민생이 어려워지고 있다. 진정한 국민 행복 시대를 열려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은 교육과 양육, 주거 공간, 건강 유지, 노후 대비, 노동자로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가와 관련된 불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구 선진국에 비해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했는데, 사회구성원들의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공공성을 파괴하는 가장 중요한 경제 정책이 바로 민영화이다. 민영화는 흔히들 민간이 경영하는 방식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여기에는 ‘자본에 의한 공공재산의 사유화’라는 본질이 내포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정부는 의료보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병원과 보험회사, 법률시장의 변호사들이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려는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치열하게 봉쇄하고 있다. 의료보험 제도가 도입되면 필연적으로 이들이 사유화할 수 있는 토대가 줄어들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부자 증세를 피할 수 없게 되므로, 의료보험 제도를 철저히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영리병원의 확대라든가 철도, 전기, 공항 등 공공서비스를 민영화 정책에 따라 거대자본에게 넘기고 공공성을 파괴하려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철도나 의료보험 제도 같은 것이 한번 거대 독점자본의 사적 소유로 되면, 이윤추구라는 목적 아래 공공서비스는 훼손되고 다수의 대중들은 시장 논리에 따라 희생되고 만다. 지금 지배 세력은 이러한 사회 현실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교육을 펼치고 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친일파를 역사적인 뿌리로 해서 서 있는 박근혜 정권은 일본의 “침략”을 “진출”로, 의병 “학살”을 “소탕과 토벌”로 적고 있고, 쌀 “수탈”을 “수출”로 둔갑시키는 것도 모자라 지배 세력의 통치 이념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려 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民)이 주인(主)’인 정치 체제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국민이 성숙해져야 한다. 국민들의 시민의식이 성숙해지려면, 무엇보다도 교육 혁명이 필요하다. 단지 입시 정책의 변화를 통해 교육을 바꾸자는 정도가 아니라 교육에 대한 근본적 성찰, 교육을 통해 이루어내고자 하는 인간형에 대한 논의가 깊어져야 한다. 아가리가 열려야 민주주의의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이 책은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거나 침묵당했던 입을 열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민주광장 아고라에서 터뜨리는 시민들이 더욱 많아지면 민주주의의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